|
국군이 창군(創軍) 과정에서 독립군(광복군)·중국군·일본군·민간인 출신 등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적 자원을 수용했는데도 출신별로 심각한 갈등이 없었던 것은 이범석 국방부장관 같은 광복군 원로들이 군 수뇌부에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이범석 장군처럼 창군의 정통성을 가진 원로가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인적 자원을 한데 묶어 건군의 기초를 잘 다진 덕분이었다. 일본군의 육군대학 졸업자는 주장(主將)까지 진급하는 것이 관례인데 한국인으로는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일본 육사29기)과 홍사익 장군 두 명만이 육군대학을 나와 중장까지 올라갔고 만주군에서는 정일권(丁一權)장군(군영·대장 예편·작고)만이 육군대학 과정을 거쳤다.
아래는 김석원 장군에 대해서...
이재전 예·육군중장·前 전쟁기념사업회장·現 한자교육진흥회장
김석원 장군은 그때 “진짜 장군 노릇하려면 김부대로 오라”고 호언할 정도로 무공이 뛰어나 일본 최고 무공훈장인 금지(金 至鳥)훈장을 받았는데, 한국인이 금지훈장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
6·25전쟁 초기 민간인 신분으로 피난길에 오른 김석원(金錫源·육사8-1·소장 예편)장군은 전세가 위기로 치닫자 현역으로 복귀, 수도사단장으로 부임했다. 대부분의 사단장이 30세 전후의 청년층이었던 데 비해 56세의 노령이었지만 지휘자세는 숙연하고도 확고부동했다. 특히 수도사단장 부임 당시와 3사단장으로 포항이 북한군에게 떨어졌을 때 영덕 일대 전투에서 칼(일본도)을 빼들고 지휘, 미군 고문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김석원 장군은 전선에서 늘 왜정 때 차던 일본군 군도를 부관이 갖고 따라다니게 했다. 김석원 준장이 수도사단장에 취임한 것은 대전이 적의 손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즈음 수도사단은 충북 진천 바로 남방에서 전투 중이었다. 김장군은 부관과 함께 지프를 타고 충남 조치원을 거쳐 진천방면으로 북상하다가 국군과 경찰관들이 섞여 있는 피난민 행렬을 만났다. 완전히 사기를 잃고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병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지프에서 내려 군도를 뽑아들고 하늘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국군 장병과 경찰관들은 들으라! 내가 이번에 수도사단장으로 부임한 김석원이다. 국군 장병과 경찰관은 생명을 바쳐 싸워야 하겠거늘 지금 너희들이 가는 곳은 어디냐. 쫓기고 밀려 현해탄 물속으로라도 뛰어들 생각이냐. 지금 총을 든 너희들이 여기까지 쫓겨왔기 때문에 뒤에 있는 너희 부모·형제·자매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 줄 아느냐. 돌아서라, 어서. 대한의 아들아, 돌아서서 북으로 가자. 이 김석원이가 앞장서 갈 테니 너희들도 같이 가서 나와 함께 싸우자.” 그의 힘찬 웅변을 들은 군인과 경찰들은 만세를 외치며 힘을 내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김석원 준장의 수도사단장 부임길은 도망치는 패잔병들을 돌려세우는 길이기도 했다. 그는 수도사단장에 부임하자마자 사단지휘소가 전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지적, 공산군이 맹공격을 가하고 있는 문안산 코앞에 사단 CP를 옮기고 장병들에게 “누구든지 사단장의 명령 없이 후퇴하면 총살이다. 나와 너희들이 죽어야 할 자리는 이 문안산·봉화산 고지다”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때 사단 CP 근처까지 적군이 쏘아대는 포탄이 떨어지자 잔뜩 겁먹은 미 군사고문관은 “사단장께서 최전선까지 이렇게 나오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만약 사고가 생기면 사단 지휘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2㎞ 후방으로 물러서서 지휘할 것을 권했다. 중일(中日)전쟁 당시 일본군 대대장으로 중국군 1개 사단을 섬멸하는 신화를 남긴 김석원 장군이지만 6·25전쟁 당시 무용담(武勇談)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진천 전투다. 문안산·봉화산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벌인 진천 전투는 6·25 개전 이후 계속 무인지경을 달리듯 남진(南進)만 해온 공산군이 최초로 국군에 의해 저지돼 퇴각한 전투였다. 그리고 7월12일 육군본부는 1군단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2군단을 창설하고 같은 날짜로 준장에 진급한 김백일을 군단장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한국군은 2개 군단과 1개 직할 사단으로 지휘체계를 정비하고 미군이 급히 계획한 금강 방어선과 연계해 새로운 전선 형성에 임하게 됐다. 그리하여 7월14일부로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에게 이양됐다.
2003.07.05 정리:김당오마이뉴스기자 dangkim@empal.com
문득 찾아보니 자료가 이거밖에 없네요... 김석원 장군은 가장 용맹했던 장군으로 알려진 장군입니다.... |
첫댓글 다움박님, 이렇게 따로 자료를 올려주시니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천만에요..좋은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