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에 정성을 다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영화 '역린'에 나오는 중용(中庸) 23장이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역린'은 정조 재위 원년(1777년) 음력 7월 28일 임금의 거처인 경희궁 존현각에 도둑이 든 변고(정조 암살 미수 사건)를 소재로 했다. 실록에는 정조가 자신을 암살하려는 자객들과 맞서 칼싸움을 벌이는 영화 속 장면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도승지 홍국영의 말을 빌려 흉얼(凶孼)들이 화심(禍心)을 품고서 변란을 도모한 것으로 당시 사건을 기록한다. 임금을 죽이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중용 23장은 죄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현빈)가 자신의 비좁은 정치적 입지를 돌파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고 정적을 공격하는 데 중요한 장치로 쓰인다. 영화 속 정조는 경연(經筵·임금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공부할 것을 강조하며 임금의 입지를 좁히려는 신하들에게 중용 23장의 내용을 아느냐고 반격한다. 신하들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서책 담당 내관인 상책(정재영)이 관련 구절을 읊는다. 이 구절은 영화 끄트머리에 주인공(현빈)의 목소리로 내래이션이 흐르며 다시 한 번 관객을 사로잡는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여객선 세월호 참사와 겹쳐지면서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정조 반대파인 노론 벽파와 정순왕후를 절대악으로 설정한 이분법은 정치를 윤리적 선악의 공간으로 끌고 갈 위험성이 있다. 정치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상대와 타협과 토론을 통해 더 나은 공동체를 실현해야 하는 지난한 노력이란 점은 쉽게 간과된다. '정치가 정조'를 쓴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노론 세력도 나름의 정당성이 있었다. 개혁의 실상 없이 적대심을 확산해 급속한 변동을 일으키는 정조의 행위는 백성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역린'은 정치 세계의 주요 측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왕(정치 지도자)이란 신하 위에 편안히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반대 세력과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끌어안아야 하는 위태롭고 어려운 자리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정조는 군권을 장악한 반대파 무장인 구선복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편에 설 것을 종용한다. 반대파를 설득하는 일이 작은 일은 아니지만, 이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지도자의 큰 덕목이다. 동양고전 서경(書經)은 정치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려는 여섯 마리 말을 썩은 동아줄로 이끌어 함께 달려가게 해야 하는 일에 비유했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정성을 다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1777년 7월 28일 하루가 2014년 봄에 던지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