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고려내에 최씨정권에 대한 나쁜 강점은 황제부터 노비까지 갖고 있었다 연개소문은 당시 고구려를 대당전쟁에 깃발을 들고 있어설수 있는 이념과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최씨정권의 집권이념은 이의민을 참살할때 황제를 시해한 자가 어찌 조정에 있을수 있냐 하면서 기존의 무신집권자들을 부정 비약하면 무신정권을 부정으로 등극하였다 그래서 봉사10조등을 올리고 문신을 우대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집권한 최충헌은 무신집권자의 장점만 쏙 빼서 더욱더 이상하고 끈질긴 신 무신정권만 창립했다 즉 자신이 이념만 간판에 올리고 자기자신도 지키지를 못하였다 이러한 정통성의 부재는 언제든지 무너질수 있었고 더우기 외세에 대한 대한 이념도 아니다 게다가 이 전쟁으로 명성을 얻는 장군이 등장하면 자기 자신의 정권을 위협하는 결과가 된다
최우가 1249년 사망하고 그 후계자들은 최우를 능가하는 정치력을 갖고 있지를 갖고 있지를 않았다 문제는 강화도에 경제 붕괴였다 전라도가 2년간 유린당하고 추수기에만 침입하여서 수확을 못하게 하자 강화도에는 관리의 녹봉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최항과 최의는 어머니가 천민출신이다보니 최씨가문의 약화는 피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백성들의 저항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고려의 산성들은 다 파괴당하고 동굴에 피신하다가 입구가 봉쇄당하여서 몰살당하는 일이 비일 비제하고 섬에 갖친 백성들은 물이 없어 죽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속 세금을 걷어가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최씨정권의 반감은 극도에 달하였고 어떤 지역은 몽골군을 환영하였다
강화도에 대한 봉쇄 한계에 부딪친 백성들의 저항 최씨 정권의 약화로 결국 최씨 정권의 마지막 집권자 최의는 김준에 제거 당하고 최씨정권은 몰락한다
하지만 나는 정말 아쉽다 고려가 만약 하나로 뭉처서 몽골과 전쟁을 치루얻다면 이길수는 없다해도 더욱 좋은 조건에서 강화체결을 할 수 있지를 않을까 원래 고려와 몽골 모두 싸울려고 하는 뚜렷한 의지가 없었다 몽골군은 마음먹으면 무너뜨릴수 있는 상황에서 너무나도 어이 없는 이유로 매번 군을 돌렸다 고려사신의 애걸복걸 또는 몽골군의 내부 갈등 고려 황제와 만남(몇번 몽고군을 육지에 올라와 만났다 전쟁중에)(물론 이 견해에는 유목민의 특유의 전쟁방식에 있을수도 있다) 게다가 주력군은 중국이나 유럽 이란에 있었다 고려에서 아무리 수탈해도 남송한번만 지나가면 수배의 이윤을 남긴다
고려는 당연하게 싸울맘이 없었고
대몽항쟁사에 고려만큼 끈질긴 저항을 한 국가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백성들의 영광이지 당시 집권자들에게는 아무런 공이 없었다(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대외항에 매번 아쉬운 것은 지배층이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하여 백성들이나 국가의 치욕은 있어도 상관없다는 태도인것이다 더욱 아쉬운 것은 이때이후 우리민족은 제후국으로 격하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