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새벽 5시. 청도천 너머로 동이 틀 무렵, 청도군을 대표하는 청도장이 북적대기 시작한다. 재래시장 전매특허인 활기찬 분위기에 기분도 덩달아 업!
한바탕 소란스러운 수다의 정체는 무얼까? 청도에서 나는 싱싱한 산나물, 약초, 과일 등을 수집하기 위해 새벽 번개시장에 모인 중간
상인들의 시원한 목청이 첫 번째 이유요. 청도 명물을 구경하러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소비자들이 흥정에 재미 붙인 소란이 두 번째 이유. 오고
가는 푸짐한 덤에 한바탕 쏟아지는 인사치레가 마지막 이유다.
예로부터
인심 좋기로 소문난 청도인들의 후덕함은 청도장을 안 찾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가운데, 산 좋고 물 맑아 신선한 농산물이 많은 것도 빠질 수 없는
청도 5일장의 특징!
어느새 새벽 번개시장이 얼추 마무리될 때쯤이면 청도역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인파들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슬그머니 뒤를 쫓으며 세상 사는 이야기며, 청도 지역의 구수한 억양에 미소 짓는 것도 잠시. 꼭두새벽부터 마실 나온 어르신들이 이토록 정정하신
비결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청도 5일장에 들른 구경꾼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추어탕집! 산세 좋은
운문산 자락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추어탕 간판 숲은, 주린 배에 어서 오라 손짓하는 듯하다. 양기 보충에 그리 좋다는 추어탕 덕분일까? 청도
새벽장에 들른 사람들이 더욱 활기차게 느껴진다.
청도의 추어탕은 뭔가 다른 특별함이 숨어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온 바. 맛집 헌터는 40년
넘게 청도식 추어탕 전문점의 명맥을 이어왔다는 한 식당에 자석처럼 이끌린다.
드르륵. 식당 문을 열자 코 끝에 닿는 추어탕의 고소한
향기. 절로 식당 안에 들어서게 만든다.
‘어서오이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굶주린 여행객을 반기는 그곳. 곧이어 주인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가 뒤따르면, 이윽고 여기저기서 ‘추어탕 한 그릇이요!’
외치는 목소리가 식당 안에 메아리 친다.
드디어 메인요리 등장! 추어탕을 전해주는 주름진 할매의 손이 뜨신 밥 한 술 더 먹이고
싶어하시는 어머니의 손과 겹쳐 보인다. 입에 떠 넣기도 전에 울컥한 감정을 전해주는 청도 추어탕. 그러나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산해진미를 놓칠 순
없다! 일단 시식 시작!
한국인들의
자양강장제 추어탕! 평소 몸이 허하다고 느낄 때마다 즐겨먹던 음식이라고 해서 추어탕을 다 안다고 섣불리 재단하지 말지어다! 청도의 추어탕은
색다른 맛이 가미되어 있으니.
맛집 헌터가 그 동안 맛봤던 추어탕은 걸쭉한 국물이 일품인 요리. 그러나 청도의 40년 된 추어탕은 맑은
국물에 푸성귀 무성한 모습이다. 게다가 따로 내오는 양념장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그렇다. 청도의 추어탕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맑은
국물이 특징. 거기에 식객 입맛에 맞춰 양념장을 덜어 넣으면 ‘내 취향에 딱 맞는
추어탕’
제조 완료! 마지막으로 독특한 향을 지닌 제피 가루 반 술 풀어헤친 뒤, 푸짐한 건더기까지 수저 가득 퍼 올리면… 시속 200km로 돌진하는
뜨거움이 정신 없이 식도를 타고 흐르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벽부터 장터에 나온 수고를 잊게 해주는 청도 추어탕! 어느새 꾹꾹 눌러 담은
공기밥이 바닥을 드러내고야 만다.
푸짐했던
뚝배기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 한 술 한 술 음미하다 보면 사뭇 조용해진 식당 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왁자지껄했던 장터 손님들은 벌써 제 갈
길을 찾아 떠났다.
청도 추어탕이 이토록 입소문을 탄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 맛집 헌터! 결국 주방 앞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주인
할머니께 조심스레 여쭤본다. 그리고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청도 추어탕의 레시피는 오로지 미꾸라지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청도
지역에서 잡히는 자연산 잡어를 섞어 쓴다는 비법을
은근슬쩍
흘리시는 할머니. 맛집 헌터는 순간 불그레해지는 얼굴을 감출 수가 없었다. 20년 경력에도 맞추지 못하는 재료가 있다니… 역시 요리의 세계는
왕도가 없는 것인가.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다. 왜 청도에서는 추어탕에 잡어를 섞어 쓰는지 궁금해졌기 때문. 그런데 그 연유 또한
부끄러움의 연속이었다.
예전 청도는 논두렁에 통발만 갔다 대면 순식간에 미꾸라지들이 가득 들어찼던 청정 지역이었다고.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독한 제초제가 개발되고, 깨끗했던 자연이 더럽혀지고, 자연히 우리나라의 토질도 바뀌어 미꾸라지들도 사라지기 시작한 것. 그리하여
미꾸라지 흥성하던 옛 시절이 그리워, 잡어를 함께 갈아 만든 탕을 하나같이 추어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맛집 헌터는 그 동안
함부로 버렸던 쓰레기며, 마구잡이로 사용했던 프레온가스들이 떠올랐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도시인의 생활 일부가 청도의 추어탕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 시간.
타고난 자연환경 덕분일까. 마음씨 고운 청도인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새로운 추어탕을
만들어냈다. 서로 다른 고기가 섞여 한 그릇의 탕을 이루듯이, 사람들의 마음도 한데 모여 큰 그릇의 인심이 되는 청도 추어탕. 색다른 맛이 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비결이 아닐까?
한
그릇의 추어탕이 배고픈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넉넉하게 만들어 주고 있던 찰나. 인심 좋은 주인 할머니께서 청도에 왔으면 꼭 맛봐야 할 게
있다며 미나리 무침을 내 오신다. 청도에서 나는 깨끗한 물로만 재배한 한재미나리다. 향긋한 미나리 무침까지 푸짐하게 해치우고 가슴 속에 청도라는
그릇 하나를 가득 채워 가게 문을 나서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우리나라의 70년대 풍경을 고이 간직한 풍각동. 옛 정취와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풍각시장에는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있다. 시장 한 켠, 간판도 없이 현수막만 내걸고 장사하는 식당 안.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늘 북적대는 그곳을 찾아가면 장터음식의 진수인
소머리국밥을 맛 볼 수 있다.
큰 솥에서 오랜 시간 우린 만큼 진하고 얼큰한 육수부터, 투박하지만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 국밥 한
그릇까지. 소머리국밥 특유의 향기가 조금 거북할 수 있지만, 시원한 맛과 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이 곳의 깍두기와 함께라면 여유롭게 소머리국밥을
즐길 수 있다.
동곡시장을 대표하는 음식은 구수한 막걸리다. 동곡시장을 품고 있는 동곡리에 들어선 동곡양조의 명품 막걸리가 장터대표음식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것. 쌀 함유량이 높아 담백한 첫 맛과 달디 단 끝 맛은 동곡막걸리만의 특징!
소 울음소리 그치지 않는 동곡시장의 낯익은 풍경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 이게 진짜 재래시장의 제 맛 아닐까?
동곡막걸리는 품질관리를 위해 생산량을 제한하고, 100% 국산 쌀과 동창천 상류의
맑은 물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기특한 술이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동곡막걸리는 아직도 대부분 옛 제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