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저녁 7시 회현지하철역 5번 출구에서 나의 4년 후배이자 전번 제주도에 같이 간 순천향의대의 황교수와 제일 기린약품의 강이사, 그리고 남대문시장에서 시계포를 하고 있는 나의 환자이며 강이사의 숙부의 초청을 받아 만났다. 이 사람은 H대학에서 위암절제술을 받고 따라 온 빈혈로 나에게 소개되어 왔을 때는 혈색소가 7g%이었는데, 지금은 10g%가 넘어 한달에 한번씩 나에게 오는 환자이며 벌써 몇년째 돌봐주고 있다.
전부터 이들과 남대문시장의 포장집을 구경하고 맛있는 걸 먹기로 한 약속도 있었고. 그런데 만나자 말자 지하도로 길을 건너 예약해 둔 집인 일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시장구경이 좋은데 초청한 환자가 모시겠다니 따라 갈 수 밖에.
연조가 있어 보이는 간판.
들어가며 주방을 한번 살펴보고.
다행히 아주 비싼 집이 아니라 부담스럽지는 않다.
강이사가 얼마전 일본 출장갔을 때 사왔다는 다이긴조급 사께.
역시 일식에는 사께가 어울리는 술이다.
startfragment한번 제주도의 롯데호텔에서 모임이 있어 내려갔다가 점심을 혼자 먹으러 모모야마에 들러서 도시락을 시켰다.
차례로 나오는 음식은 훌륭하였는데 마음에 들지 않은 음식이 있어 주방장을 보자고 하였더니 서울 소공동 롯데 일식집 “벤케이”에 있던 친구이다.
다이꽁(大根) 오로시(무간 것)를 기계로 갈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이는 손으로 강판을 밀어야 혀에 닫는 감이 좋다.
흠잡은 우메보시는 그렇지 않아도 다른 걸로 바꾸려고 하였다고 하며 쩔쩔맨다. 한번 약점을 잡아 나의 단골로 만드는 것이 나의 특기,
이 식당에서도 발휘를 할까 하였으나 초청을 받은 자리라서 점잖을 빼기로 한다.
다음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 옥돔구이를 시켰더니 엄청 큰놈으로 잘 구워 나왔고 식후에 다른 테이블에는 귤 반쪽이 나왔으나 귤을 광주리에 담아 나왔다.
그 후로 롯데호텔에 갈 때마다 전화를 걸어 "나왔다"하면 특급대우를 해주었는데. 재작년 피닉스 아일랜드에서 휴가를 보내며 레스프랑 "민트"의 제주출신 소믈리에에게 그 주방장에 대해 물었더니 한라대학교 관광학부 일식부로 자리를 옮겼다는데 "뛰어 봐야 벼룩"이지 이 대학의 이사장이 우리 서울의대 선배이고, 그 아들이자 나의 제자가 원장인 병원이 한라병원이다.
광어와 도미회, 위에는 금가루까지 뿌려 놓았고.
먼저 가벼운 전복죽을 먹고.
이런 곳에서 쓰는 고추는 아싹고추로 크게 맵지는 않다.
그러나 조심해서 우선 조금 깨물어 맛을 보고는 먹어야지요.
마늘쫑은 먹질 않는다.
너무 냄새가 강해서 부드러눈 술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꿈틀거리는 산낙지회가 나오고.
장어구이도.
이때 주방장이 새로 회를 한접시 가지고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가재가 살아서 움직이니까 강이사가 쌍추로 덮어 준다.
가이바시라, 새우, 멍게, 전복과 개불까지도 등장.
개불은 생긴 모양은 흉칙하여도 상큼한 맛이고 그 집 생선의 선도를 보장하는 셈.
사께가 끝나고 다음에 남대문시장에서 샀다는 호주와인을 한병 딴다.
마개가 콜크마개가 아니고 돌려서 따는 시라 Barossa Valley산이다.
내가 몇년전에 본 영화 Australia에서 일본 공군의 공습으로 불타는 다윈 항구에는 격침된 배이름이 Barossa Valley에서 따 온 Barossa호.
이 영화는 감독이 바즈 루어만으로 호주인, 잭 휴먼과 니콜키드만 두 주인공 등 모두 호주사람이고, 호주 관광청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일종의 호주홍보영화이다. 픽션과 논픽션을 적절하게 짜깁기한 할리우드식 호주영화라는 평이 있고, 勸善懲惡의 만화 같은 스토리이나 나는 아직도 이런 스토리를 좋아 한다.
사진도 못찍고 와인을 다마셔 버렸네.
메로구이가 나오고.
startfragment음식이야기 중 신장학회에도 채식바람이 불어 내가 잘 아는 후배 둘이 채식주의자로 되었다고 황교수가 말한다.
한때 우리나라에 불은 연대출신 LA의 이 모박사의 채식 때문에 항암요법을 받은 환자들의 영양상태가 나빠져서
우리병원 oncologist가 불평을 한 사실이 기억난다.
이때 강이사가 어느 냉면집에서 주문을 받고 “스님 고기는 어떻게 할까요?
아래로 깔아 이놈아”.
사찰 음식에도 고기 맛을 내는 재료는 표고나 송이 같은 버섯, 고사리와 두부튀김 등이다.
대구 대가리구이가 나올 때쯤 청하를 또 시키고
홀수로 끝내자고 황교수가 우겨 결국 홀수, 즉 청하를 세병까지 마셨다.
튀김도 나오고
마지막으로는 남은 가재로 끓인 탕과 데마끼 하나씩.
화제로는 취미이야기가 최고이다.
startfragment강이사와 황교수는 몇 년전 여름 지리산 뱀사골 산행도 나와같이 한사이.뱀사골은 여름 산행의 적지이다.
표고 650미터에서 출발하고 올라가는 내내 나무그늘과 한쪽은 시냇물
화개재로 하여 반야봉을 들러 하루 20km를 산행한 적이 있었다.
뱀사골 산장 직전에 옆으로 살짝빠지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계곡이 있고 여기에서 완전나체로 몸을 씻고 옷은 바위에 말리면서 처가 싸준 세가지 주먹밥을 먹은 적이 있어 그때 참 맛있었다며 군침을 삼킨다.
국립공원감시인한테 들키면 노인네가 일사병으로 쓰러져 치료 중이라고 둘러대면 되겠지.
강이사는 내가 신장학회 숨은벽 등산에 데리고 갔던 이야기를 하며 거기에 가보고는 왜 숨은벽(백운대와 인수봉의 용골역할을 하는 북한산의 후면)이란 이름이 붙었는지를 알았다하니, 황교수도 이어 같이 간 女性峰은 바위의 틈과 그 위에 나있는 풀과 나무는 보는 각도에 따라 여자의 생식기를 그대로 닮은 꼴이라 곁든다.
바깥에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저녁시간을 보내다 일어섰다.
나올 때 황교수와 나에게 선물한 왕만두.
집에 와서 풀어보니까 하나 먹으면 한끼가 해결될 커다란 왕만두가 10개,
만두바깥에 붉은 표가 있는 건 매운왕만두, 그냥은 고기왕만두이다.
첫댓글 난, 일본 술은 상표를 아는 것이 하나도 없네요.... 내가 잘 가는 편인 역삼동 횟집에서 주는 정종은 맛이 없어서, 백세주를 시켜 먹습니다. 내입에는 그게 낫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