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그림자 아래서 색(色)을 봅니다"
1층부터 4층까진 숨 가쁜 의상제작의 현장이다. 1층은 쇼룸, 2층은 한복제작실, 3층은 디자인개발실, 4층은 자제실이다.
28일 찾아간 이영희 사무실. 직원 20여명은 의상을 포장하고 그림을 맞추고 모델 피팅 작업을 마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오는 7월 6일 프랑스 파리 뫼리스 호텔(Meurice Hotel)에서 열리는 오트쿠튀르 쇼를 위한 마지막 준비 때문이다. 29일 출국하는 이영희는 "그렇게 오래 준비했는데도 오늘까지 급한 불 끄느라 바쁘다"며 "여긴 정신 없으니 5층으로 가자"고 했다.
- ▲ 비스듬히 기운 천장 아래로 햇살이 그늘을 만드는 5층 작업실에서 이영희는 그윽한‘한복 드레스’를 빚어냈다. 오래된 책장과 테이블, 전국 각지에서 모은 옷감들. 어느 하나 추억이 깃들지 않은 물건이 없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그의 말대로 5층 작업실은 삼각 지붕과 맞닿은 탓에 천장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삼각 천장 한가운데 난 오각형 창(窓). 왼편엔 둥근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하나 더 있다. 창 아랜 커다란 탁자와 책장. 그 곁엔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옷감 원단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영희는 "이렇게 그윽한 그늘을 만드는 천장이 좋아 일부러 삼각지붕으로 사무실을 지었다"고 말했다.
"같은 옷감도 여기서 보면 빛깔이 좀 더 은근하게 보이지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아한 회색이나 먹자주, 그늘을 입힌 듯 어둡게 빛나는 빛깔도 다 여기서 작업하면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네."
이영희는 한복은 원색의 옷이란 고정관념을 깬 주인공.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연 첫 패션쇼에서 그가 선보인 것도 회색과 와인 자줏빛깔의 오묘한 치맛자락이었다. 은은하면서도 강렬하고, 눈부시지만 아련한 색채. 이영희가 꿈꾸는 동서양의 만남도 여기에 있다.
그는 "요즘엔 특히 충남 서천 한산 지방에서만 나는 한산 모시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며 한산 모시 옷감 한 필을 꺼내 쫙 펼쳐들었다.
"이것 좀 보소. 촉감이 나비 날개처럼 가벼워요. 중국에서 아무리 모시 종자를 바꾸고 개량을 해도 이 빛깔과 결은 따라갈 수가 없다 안 합니까. 그래서 올해 파리 오트쿠튀르 쇼는 한산 모시를 주요 소재로 삼았어요. 일이 안 풀릴 때면 여기서 옷감을 펼쳐놓고 온종일 바라만 봤지요. 그러다 보면 가슴 속에서 무대에 올리고 싶은 옷과 색깔과 문양이 어룽대요."
- ▲ 커텐처럼 늘어뜨린 모시 조각보 앞에 선 디자이너 이영희.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5층 공간의 또 다른 특징은 다른 층과 달리 의자와 커다란 탁자를 놓은 입식(立式)이다. 1층과 2층이 마루에 방석을 깔고 앉는 좌식(坐式)인 것과는 좀 다르다. "이 집 처음 지을 때 목표가 있었지요. '우리나라의 멋과 요즘 문화가 적절히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자'는 것. 온통 전통적인 동양 문화로만 채워도 요즘 세대가 보기엔 답답하고, 서양에서 들여온 값비싼 물건으로만 채워도 매력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난 적절히 합치고 싶었지. 전통 마루와 문살은 남겨놓지만, 필요하면 의자도 놓고 벽난로도 두고."
현관문 위쪽엔 '예나(倪拿)'라고 한달음에 내려쓴 족자가 한 점 걸려 있다. 2002년 도올 김용옥씨가 써 준 액자다. "TV에서 보니 그 선생 어머니가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랑 분위기가 참 닮은 거에요. 그래서 내가 전화해서 우리 어머니 같아서 그런데 옷 한벌 해주고 싶다 했소. 죽어도 공짜 옷은 안 받겠다시더니, 나중에 이렇게 글씨 하나 써주시더이다. '하늘에 있는 구름을 잡아챈다'는 뜻이라나. 마음껏 뜻을 펼치라고 하대요."
콧대 높은 파리 프레타포르테·오트쿠튀르 홍보담당자들을 섭외해 그녀의 파리 진출을 성공하게 한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그는 "이 작업실을 보고 여기서 동·서양 문화의 조화를 체험한 프랑스인들이 '당신의 옷을 꼭 파리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말할 때 뿌듯함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각보처럼 엮은 삶…, 내 꿈도 아직 엮을 게 많아"
벽마다 커튼 대신 모시 조각을 엮은 커다란 조각보로 걸어놓고 공간을 꾸민 것도 이영희답다. 그는 "누구는 자식 때문에, 누구는 벌어놓은 돈 때문에 죽기 어렵다던데, 난 이곳에 쌓인 옷감 때문에 차마 눈 못 감는다"며 웃었다. "저 귀한 옷감들, 우리나라 전통 소재들, 다 한 번씩은 옷으로 지어주고 떠나고 싶다 이거지요. 조각조각 옷감을 이어서 저렇게 걸어놓은 걸 보면 내 꿈 같아요. 아직도 엮을 게 많은 내 꿈. 일흔이 넘어도 아직도 새파랗게 창창한 내 꿈 말입니다."
그래서 이영희는 7월 6일 다시 무대에 선다. 이번 쇼의 주제는 동양 예술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송죽매란(松·竹·梅·蘭)을 형상한 '꿈의 정원(Le Jardin des Reves)'. 충남 서천에서 난 한산 모시에 수채화를 그리고 수를 놓은 그녀의 대담한 작품이 또 한 번 프랑스 파리 컬렉션 무대를 휘감을 것이다.
●이영희는
1936년 대구 출생. 성신여대 대학원(염직공예) 수료. 스무살에 염색을 배웠고, 명주솜·이불장사로 시작했다. 1976년 마흔살 되던 해, 한복 가게 ‘이영희 한국의상’을 열었다. 출발은 늦었지만 1993년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한국인 디자이너 최초로 참가했다. 2004년 뉴욕 맨해튼에 ‘이영희 한국 박물관’(Leeyounghee Kor ea Museum)을 개관하면서 한복 복식사를 새로 써내려 갔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땐 21개국 정상들이 입는 두루마기를 제작했다. 남은 꿈은 한복을 동서양의 미(美)를 결합한 ‘융합’의 옷으로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