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 40대 남자도/ 황지우
#1. 마침내, 그 40대 남자도 정수가아아-- 목놓아 울어 버린다. #10. 남자 아나운서와 여자 아나운서가 그를 다시 카메라 앞으로 끌고 왔을 때 그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계속 머리를 주억거리면서, 케이에스 감싸함다, 정말 감싸함다, 이 은혜 죽어도 안 잊겠음다, 한다.
- 시집『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민음사, 1985) ........................................................................................
1983년 6월30일 시작된 KBS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이 장장 5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처음엔 TV로만 내보내다가 7월 6일 부터는 라디오로도 동시방송하여 당시 KBS의 모든 공간과 자원은 오로지 이 방송을 위해서만 기능했다. 황지우 시인의 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는 그 재회의 현장을 방영한 TV 화면을 그대로 포착해 옮겨 놓은 것이다. 장면을 나눈 것 말고는 별도의 공정 없이 곧장 시가 되었다. 사실 이 극적 장면들은 달리 수식이나 가공이 필요치 않을 뿐 아니라 어설프게 손을 댔다가는 오히려 시를 베릴 판이다. 절경은 그 자체로 이미 시를 압도할 것이므로. 이 장면들 하나 하나가 한국 현대사의 명장면들이고 국민 모두가 그들과 함께 통곡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어디 그뿐이랴.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의 빛나는 눈/…/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패티김의 애잔한 목소리는 그 여름 내내 국민의 귀를 맴돌았고, 전쟁으로 33년간 헤어진 가족을 찾아 KBS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이들의 모습은 전부 우리들의 눈과 가슴에 박혔었다. 단일주제의 깨지지 않을 최장생방송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78%란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 그해 여름은 정말 뜨거웠고,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이 ‘특별생방송’은 실로 거대 담론이었으며 일대 사건이라 할만 했다. 다른 노림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전두환이 잘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이 사태를 방치한 거였다. 더러는 가만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고 선정일 때가 있다.
방송과는 별도로 여의도 KBS본관 벽과 광장에는 이산가족을 애타게 찾는 이들이 붙인 벽보가 수도 없이 펄럭였다. 나붙은 벽보의 행진은 피와 눈물로 그린 집단 초상화였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퍼즐을 맞추고서는 "맞다, 맞아" 소리치고 통곡했던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우리가 흘렸던 눈물은 기름통으로 몇 드럼은 되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32년이 흘렸다. 어쩌면 그때의 눈물과 월드컵의 응원 함성과 세월호 참사때의 비통까지 모두 한 통속 같은 뿌리에서 솟구쳤던 세포의 비늘들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슬픔이 아닌 벅찬 기쁨으로 한마음되어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릴 큰 건수를 소망하건만, 우리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오기는 오겠는지...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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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詩하늘 통신 원문보기 글쓴이: 제4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