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7) 유교의 혼백과 기독교의 속사람과 겉사람은 같다.
혼백(魂魄) : 제사할 때 백을 생각해서 땅(모사그릇)에 술을 붓는다. 하늘에는 혼을 생각해서 향불을 피운다. 하늘은 양(陽)이고 땅은 음(陰)이다. 무형과 유형이다.
사대봉사(四代奉祀) : 고조, 증조, 조부, 아버지까지 네 대의 신주를 집안의 사당에 모시는 것, 대략 120년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천(天) => 혼(魂) => 펼쳐질 신(伸) => 신(神) => 양(陽)
=> 열자에서는 이것이 하늘에 속한 것이라고 한다(도올의 말).
지(地) => 백(魄) => 돌아갈 귀(歸) => 귀(鬼) => 음(陰)
=> 땅에 속한 것이라고 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혼백과 기독교의 속사람과 겉사람은 같다
임마누엘 스베벤보리의 책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속사람은 영계에 속한 것이고, 겉사람은 자연계에 속한 것이라고, 즉 속사람은 천국으로부터 생성된 것으로 영적인 것이라는 것이고, 겉사람은 이 지구로부터 생성된 것으로 자연적인 것이라고 한다는 것, 따라서 사람은 하늘과 땅 또는 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결합체다라고 말한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도 이와 같이 해석할 수 있다. 하늘(父)과 땅(母)의 결합으로 생긴 것이 인간(자녀)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영혼과 육체 또는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구성된 존재이고, 이 둘의 결합으로 생기는 것을 자아라고 하고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에 대응하면 인간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것과 어머니의 것이 결합해서 생겼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부모 또는 부모와 같은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고유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자아다. 자아와 천지인의 인(人)이 상응한다. 자연적으로는 부(父)의 정자와 모(母)의 난자의 결합으로 우리의 육체가 탄생하는데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로 음양(陰陽)의 조화로 구성된다. 양(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겉사람은 물질이 아니다. 영혼의 속과 겉을 말한다. 육체가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지듯이 영혼도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아버지로부터 영혼을 받고 어머니로부터 육체를 받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육체의 유전에서 보듯이 영혼도 양자로부터 받는다. 즉 영혼의 속은 아버지로부터 이고 겉은 어머니로부터다. 육체는 모(母)의 원리가 지배적이나 영혼은 부(父)의 원리가 지배적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혼백이란 사실상 영혼의 속과 겉을 일컫는다. 육체는 육체일 뿐이다.
영혼과 혼백도 같은 말이다.
혼백은 속사람과 겉사람이고, 속과 겉은 영혼이므로 영을 혼에 상응시키고, 혼을 백에 상응시킬 수 있다. 즉 영혼에서 영은 속사람, 혼은 겉사람으로 말할 수 있다. 혼백으로 하면 영은 혼이고 혼은 백이 되는 것이다.
영혼은 영적인 것이지만 혼은 자연으로부터 왔다. 혼과 육체는 한 쌍이다. 죽으면 둘은 분리된다. 사람이 지상에서 혼 중심적으로 살면 지옥으로 가고, 영 중심적으로 살면 천국으로 간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영과 혼이 있다. 혼백이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사후 혼백의 분리가 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지상에서 혼으로 산 사람들은 영이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영이 잠들어 있거나 왜곡된 세상인 지옥으로 간다. 반대로 영으로 산 사람들은 죽으면 혼과 분리되어 천국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혼백이 영과 혼 양자가 있는 것이 사람이다. 천국으로 가는 사람도 지옥으로 가는 사람도 혼백(魂魄)이 있다. 따라서 천국으로 가는 혼(魂) 또는 신(神)에게는 새로운 백(魄)이 주어진다. 이 백의 기원은 자연계가 아니다. 음(陰)적인 것이 아니다. 양(陽)적인 백이다. 천국에서 생성된 양(陽)적인 백(魄)이다. 기독교 성경에는 희고 깨끗한 세마포나 혼인예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은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 잔치에서 쫓겨난다(마태 22:11-13, 묵시록 19:14). 이 옷들이 상징하는 것이 부활체이다.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아난다. 영혼(혼백)으로 말이다. 성경에서는 말한다. 생명의 부활과 사망의 부활이 있다고, 후자는 지옥으로 가는 것을 말하고 전자는 천국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천국으로 가는 자들에게는 천국에 일치하는 새로운 몸 즉 겉사람이 주어진다. 지옥으로 가는 자들에게는 지옥에 일치하는 몸 즉 백을 가지고 가지만 혼이 잠들어 있고 왜곡되고 일그러져 있기 때문에 그 백도 그것에 상응해서 더 상태는 나빠진다. 즉 추악해지고 사나워지고, 짐승처럼 되거나 심지어는 괴물과 같은 모습을 형성한다. 사람이 천국으로 가고 지옥으로 가는 것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 단계 또는 상태를 지나서 이루어진다. 중간영계가 있다. 천국과 지옥 중간이면서 이 세상하고 영계의 중간지대가 있다. 거기서 선악이 선별되어 천국행과 지옥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천국으로 가는 자들에게는 영혼에서는 혼이 혼백에서는 백이 박탈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지지만 속사람은 박탈되거나 교체가 될 수 없으므로 다만 왜곡되고 일그러지는 변형을 경험하고 그 변형에 상응해서 겉사람은 더욱 악화(惡化)된다.
예수님의 인성영화와 천국으로 가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
예수님의 인성영화는 이런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셨다. 그 사람이 되는 방법은 성모 마리아에게서 인간적인 것을 취하는 것이다. 인간을 취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두 인격이 존재하게 된다. 하나님의 인격과 사람의 인격 이 둘이 있게 되는데, 이런 것은 빙의나 신내림과 유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용납이 안 되고, 예수님이 취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의식이 없는 인간 즉 인성만을 취한 것이다(그리스도의 일위성, 무위격의 교리).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 사람인 것이다. 신인양성론(神人兩性論) 말이다. 어쨌든 하나님에게서 마리아로부터 취한 인간적인 것은 이질적인 것이다.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왔다가 다시 하나님으로 돌아가는 것이 주님의 운명이다. 고로 그 인간적인 것은 버려야 한다. 하나님인데 인간으로 유한하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그 인간적인 것을 벗었다. 그 인간적인 것을 모계적 인성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은 성육신 이전의 여호와와 같은 상태로 있게 된다. 무형의 하나님, 사람이 볼 수 없고 보면 죽는 존재로 있게 된다. 이것은 성육신을 무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버린 인성에 상응하는 완전한 인성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부활체다. 이 부활체는 마리아로부터 받은 것을 버렸다가 다시 고쳐서 입은 그것이 아니다. 이 부활체의 기원은 예수님 안에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이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다. 새로운 겉사람이다. 주님의 이 인성영화 또는 부활을 보면 이것이 우리가 사후에 겪게 되는 즉 백을 버리고 새로운 백을 입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니깐 천국으로부터 그 백을 받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므로 아버지로부터 그것을 받은 것이다. 주님의 부활체는 우리와 같은 영적인 부활체가 아니라 신령 본질적인 부활체다. 즉 신령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신분과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첫댓글 불천위는 나라에 큰 공훈을 남기고 죽은 사람의 신주를 오대봉사가 지난 뒤에도 묻지 않고 사당에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조상의 기제사는 4대까지만 지내고, 5대부터는 혼백을 무덤에 묻는다. 그러나 불천위는 신위를 계속 사당에 모시고, 기제사는 물론 묘사(墓祀)나 시제(時祭)를 지낸다. 종헌관(終獻官)은 세 번째 잔을 올리는 헌관으로, 연장자나 귀한 손님이 담당한다
예기에 혼기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기술이 있다 제사시 술은 백에 대한 것이고 향기는 혼에 대한 것이다 영육이원론 혼은 불멸하지 않고 흩어져 소멸한다 영혼은 귀하고 육은 천하다는 것보다는 육신도 귀하게 여기게 된다 신체발부수지부모 신체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부모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주역 계사전에 천지지대덕일생 즉 천지의 가장 큰 덕은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예기 악기편 작자위성 즉 창조하는 자가 성인이다
이율곡은 혼기가 흩어져 사라졌을 지라도 리는 불멸이라 후손이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드리면 감통을 계속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