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보급의 최전방에 선 기사들을 꼽으라면 그중 한 명이 천풍조 8단 아닐까. 샤샤 3단, 스베타 3단 등 러시아 출신의 프로기사가 배출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미국ㆍ캐나다ㆍ호주ㆍ우크라이나 등에 바둑을 보급하는 데 힘써 온 그가 이제 남미를 향해 전진했다.
칠레ㆍ브라질ㆍ아르헨티나 등 남미 3개국을 돌고 온 천풍조 8단이 총 3편에 걸쳐 뜨거운 남미 바둑계의 현장을 전한다.
------------------------------------------------------------------------- 남미 3개국의 바둑계를 돌아보고… 글ㆍ천풍조 8단
내가 외국에 바둑보급을 시작한 지 어느덧 25년이 지났다. 참으로 세월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아름다운 추억도 있었지만 수없는 고통을 받으며 칭찬보다 질시와 견제, 평가절하를 당했던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신념을 견지해 왔다. 회상하니 참으로 감회가 깊다.
1985년 제1회 US바둑콩그레스(U.S. Go Congress)에 공식 초청을 받아 처음 태평양을 건너 미국 땅을 밟은 후 바둑문화를 외국인들과 교민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신념으로 이후 미국ㆍ캐나다 각 지역을 일년에 한 두 번씩 10년 이상 돌아 다녔다. 1987년ㆍ1989년 두차례에 걸쳐 한-미 친선바둑교류전을 주선하여 미국 바둑협회 주요 회원 10명을 한국에 초청했다. 서울ㆍ부산ㆍ대구ㆍ광주ㆍ대전을 순회하며 교류전을 가졌다.
1991년에 러시아 바둑협회 초청으로 볼가 강 유람선 바둑대회를 참관하면서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방국(구 소련)의 바둑계 발전에 기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곧 바로 우크라이나에도 다녀왔다. 1992년에는 한국이 후원한 바둑대회를 모스크바에서 최초로 열어주었다. 1996년부터는 예산 규모가 상당한 LG배 소련 바둑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힘을 기울였고, 1997년에는 러시아 소년ㆍ소녀(샤샤, 스베타)를 장학생으로 한국에 초청해 바둑선생 겸 보호자 역할을 했다. 나중에 이들은 프로기사가 됐다.
1995년 이후는 유럽 각국들을 여행하면서 각종 바둑대회를 참관하며 지도다면기와 강의를 했고 2000년에는 호주ㆍ 뉴질랜드에도 바둑 여행을 다녀왔다. 이제 러시아는 유럽에서 바둑최강국이 되었다. 바둑 인구도 늘어 극동에서 유럽까지 러시아의 주요 큰 도시에는 바둑클럽이 생겨났다.
프로기사가 외국에 바둑보급을 하고자 하면, 단순한 여행정도로는 바둑 인구를 늘린다거나 기력향상을 시키는 데 미흡하다. 영어를 비롯해 현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상주한다면 더욱 효과가 있다. 마치 종교를 전파하고자 현지에 거주하는 전도사ㆍ선교사를 파견하든가 태권도처럼 도장을 개설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남미 대륙은 밟아보지 못했었다. 브라질ㆍ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교민들이 나를 초청하곤 했지만 너무 먼데다 여행경비 문제ㆍ비자 등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이제는 정부에서도 바둑 보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재정적 지원을 해주어 한국의 위상도 높아지는 한편, 대륙의 각 나라들도 대부분 비자 면제 체결이 맺어져 여행이 수월해졌다.
드디어 이번에 남미 바둑계를 돌아 볼 기회가 왔다. 제12회 이베로(Ibero) 아메리카 바둑대회가 10월8일~11일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열렸다. 문화관광부와 대한바둑협회 그리고 한국기원에서 이 대회를 참관하도록 나를 파견해주었다. 나는 내친김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바둑계도 돌아보았다. 지금부터 남미 3개국 바둑계를 돌아본 소감을 각 나라별로 나누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 1편 - 쌈바 바둑, 브라질(Brasil)
그동안 바둑계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남미 중에서 가장 큰 나라이며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는 중에 있는 브라질을 향해 나는 대한항공 061편으로 9월24일 오후 9시경에 출발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9월 25일 오전 11시 경에 상파울루(São Paulo) 시의 과룰류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미국 LA공항까지 비행시간은 약 11시간이다. 미국 입국자들을 내려주고 비행기 연료를 다시 채우며 LA에서 상파울루로 가는 승객을 다시 태우기 위해선 약 3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미국의 경우는 통과 여객이라도 입국심사를 다시 받아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장장 26시간이 걸려 상파울루 공항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 중이던 남미 한국기원의 박세동(60세ㆍ아마3단) 원장과 교민 권오웅(60ㆍ아마초단) 사장 그리고 원주민 바둑선수인 브루노 보차트(25ㆍBruno Bochartt) 씨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브루노 씨는 아마2단의 기력으로 2년 전 한국에 와서 강원도 횡성에 설립된 킹스 바둑교실에서 3개월 정도 바둑수업을 했다. 나는 그와 이메일을 주고 받다가 박세동 원장을 소개해 주었다. 박 원장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브라질에 올 때 강의용 좌석바둑판ㆍ기원용 바둑알과 얇은 바둑판을 부탁했는데, 이를 운반하느라 애를 먹었다.
상파울루 북쪽 한인들이 밀집해 상가를 이루고 있는 봉 헤치로(Bom Retiro) 거리는 코리아 타운이었다. 이곳에 한인기원이 남미 한국기원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하고 있었다. 권사장은 승용차로 공항에서 루스 프라자 호텔까지 나를 태워다 주었다. 루스 프라자 호텔은 박 원장이 예약해 두었다.
이후 박원장과 권사장은 체류 기간,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중남미 20개국 중에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은 러시아ㆍ캐나다ㆍ미국ㆍ중국에 이어 5위 큰 면적을 지녔다. 851만㎢나 되는 큰 나라이다. 26개주 1연방자치구에 총 인구는 약 1억9천2백만명이며 상파울루가 최대도시로 1천3백만명이 살고 있다. 그중 한인 인구는 약 5만 명이며 이 중 약 90%가 상파울루에 있다 한다.
“봄 레티로를 왜 봉 헤치로로 말합니까?” “포르투갈어로 M은 NG로 R은 H로 발음합니다.” “그래서 브라질 화폐 이름 Real 이 레알이 아니고 헤알이군요.” 나는 권사장과 대화하면서 포르투갈어도 조금씩 배웠다.
프라자호텔에서 기원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거리인데 한글 간판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약국, 식료품점, 식당, 미장원 등이 눈에 띄었다. 남미 한국 기원은 허름한 건물의 반 지하에 20평 정도 크기였다. 그곳의 바둑판도 낡았다. 그래도 이곳은 교민 애기가들의 휴식처였고 수담을 즐기며 우의를 다지는 만남의 광장이었다. 내가 온다는 소문을 듣고 환영해주려고 많은 애기가들이 찾아 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다면 지도기를 시작했다. 3ㆍ4명을 상대로 두세번 대국을 하고 나니 어느덧 오후7시가 넘었다.
브라질 한인 기우회 회장이며 가장 영향력이 있는 윤 준(69ㆍ아마6단) 씨는 한국 식당에서 연 환영 만찬에서 브라질 이민 역사와 바둑 역사를 대략 알려 주었다. “요즘은 한국의 위성방송이 들어와 바둑과 뉴스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윤 회장이 말하며 한국 바둑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한국인의 브라질 이민사는 1956년 반공포로(anticommunist prisoner of war) 55명이 중립국이던 인도를 거쳐 브라질로 이주했으며 1963년 2월에 17세대 107명이 부산항을 출발하는 네덜란드 화물선박을 타고 아프리카를 경유해 산투스(Santos) 항구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었고 1976년까지 6차례나 진행되었다.
브라질 한인 동포 수는 현재 약 5만명으로 불어났으며 영농 이민에서 기술 이민 그리고 가내공업ㆍ의류제품업에서 가전제품ㆍ여행사ㆍ식당업 등 다양한 업종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2세들이 교수ㆍ변호사ㆍ판사ㆍ의사ㆍ공무원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브라질 한인 기우회는 교민 수가 불어나던 1987년에 창립되었다. 기원도 생겨 교민바둑대회를 열고 이후 10여 년간 활발하게 지속되다가 차츰 열기가 식어졌다. 기원 건물도 여러 차례 옮겨야 했고 집세도 내기 곤란한 상황에서 독지가들의 협조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왔다 한다. 회원 수는 1백 명에 육박하다가 타국으로 역이민을 떠나는 회원들이 많아져 현재는 5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브라질 한인 기우회에서 최고수는 수원 출신의 김철수7단이었다. 그 밖에 김창하ㆍ장인건ㆍ이상우 7단, 윤 준ㆍ송무용ㆍ심경섭ㆍ길상흥 6단 등이 고수들이고 40대 중년 이원희5단 조휘영3단 등 20여 명이 단골 애기가들로 알려져 있다. 브라질 바둑계에서 김철수7단은 일본 이주민 고수들보다 더 강해 명성을 떨쳤으며 회장직도 맡았고 현지인들에게 바둑을 가르쳐주기도 했으나 2006년경 한국에 잠시 사업차 들렸다가 심근경색으로 50대 초반의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한다.
현지 교포신문에 나의 방문 소식이 알려져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응했다. 나는 인터뷰에서 ‘바둑은 이제 스포츠로도 인정받아 위상이 높아졌고 곧 열리는 2010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교민들의 차세대들도 바둑을 배워야 하는 필요성도 강조했다.
남미 동포들로 이뤄진 바둑계는 본국의 바둑계와 소통을 못해서 흥미를 잃어 대부분 골프로 여가를 보낸다. 한국 본국의 바둑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후원해 주어야 하며 프로기사를 파견해서 교민들에게 바둑 모임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고 대회도 자주 열어서 흥미를 가지게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브라질 교민 바둑인 중에 비교적 젊은 40대 초반인 박윤석 씨는 아마4단 정도 기력으로 현지인 대학교 교수들 또는 학생들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바둑을 최근에 가르치고 있다 한다. 나는 그를 격려하면서 앞으로 바둑 소식이나 사진을 나에게 메일로 보내주라고 했다. 또 바둑 교재나 용품이 필요하면 내가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다 . 브라질 바둑협회(www.abrago.org)는 한인 기우회와 별도로 현지인들이 1982년 세계바둑연맹(International Go Federation)이 결성될 때 만들었다. 회원들은 일본기원의 이와모도 가오루( 岩本 薫) 9단이 세계바둑 보급을 위해 기부한 기금으로 1989년 상파울루에 생긴 중남미 위기회관에서 모임을 가지며, 현재는 히오 데자네이로[Rio de Janeiro] 브라질리아[Brasilia] 시에도 바둑 클럽이 형성되어 있다. 현지인의 바둑 인구는 초보자들을 포함해 약 2천명이며 바둑시합이 열리면 약 70명이 참가한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는 중국ㆍ대만인들도 이민을 와서 이 중에서도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있으나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왕센펑 아마6단이 강자로 알려져 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그렇지만 21세기에 와서 인터넷으로 바둑을 둘 수 있게 되어 젊은 세대, 어린이들에게 보급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9월 27일 오후에는 일본기원 중남미 회관을 방문해 일본 애기가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관리책임자인 무라이 오사무(75세ㆍ아마2단) 부이사장의 안내로 2ㆍ3층 특별대국실 및 강의실도 살펴 보았다. 1989년 회관이 설립된 이후 1993년 1월에 기성전 도전1국(가토 마사오9단 대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을 유치했고 15년이 경과한 2008년 1월에도 기성전 도전1국(조치훈 9단, 야마시다 게이오 9단) 행사가 있었다 한다. 일본 출신 현지인 중에는 우야마 히사오(77세ㆍ아마6단) 씨가 최강자이다.
상푸울루에 사는 일본인 중에 5백명이 정회원으로 평일에 약 30여명 바둑을 둔다한다. 나는 1층 대국실에서 일본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지인들 브루노3단ㆍ티아고2단ㆍ알렉산드르 3급에게 지도대국을 해주었다. 티아고(Thiagoㆍ2단)은 이후 10월 22일부터 창원에서 열린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대회에 브라질 대표선수로 참가했다. 회관 설립을 도와준 이와모토 9단(1902~1999)은 정말로 내가 존경하는 표상의 기사이다.
일본인으로 한국 부산에서 태어나 11살까지 살다가 1930년대에는 브라질로 이민 갔으며 30대 후반에 일본으로 돌아와 1945년 7단 때 본인방전 도전자가 되어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이 떨어지던 날 하시모토 우타로 8단(당시)과 대국했으며 본인방 타이틀을 차지한 특이한 경력이 있다.
이와모토 9단을 존경하는 이유는 단순히 시합성적을 올렸기 때문이 아니라 바둑의 진정한 의미를 알렸기 때문이다. 바둑은 승부를 가르는 게임이면서도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훈을 주는, 유익하고도 심오한 이치가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외국인들에게 가르치고자 자신의 소유 재산을 일본기원에 기증해 브라질과 네덜란드, 미국(동부ㆍ서부)등 4개 지역에 위기회관을 설립했고 바둑을 국제화하는 데 기여했다. 작금, 인기 있는 프로기사들 중 많은 이가 정글의 법칙에 익숙한 승부사들이다. 돈은 많이 벌지 몰라도 이렇게 이와모토 9단처럼 거금을 기증해 봉사하는 기사들은 거의 없다.
이와모토 9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일본의 프로기사 중에는 나까야마 노리유끼(中山 典之) 7단(금년 작고), 사이조 마사다카(西條 雅孝) 9단(은퇴) 등 외국에 바둑을 보급하는 기사가 많았고 지금도 여류기사인 고바야시 치즈(小林 千寿)5단 시게노 유끼(重野 由紀)2단과 엔다 히데끼(円田 秀樹) 9단 등이 활동 중이다. 엔다9단은 일본 문부과학성 후원으로 2008년에 남미 각국을 순방하며 약 1년간 바둑 보급을 했다. 그럼에도 중남미는 유럽과 북미에 비해 바둑 인구나 기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나는 체류 일정이 짧아 여러 도시의 바둑클럽을 찾아갈 수 없었고 상파울루와 가까운 산투스 시를 9월 28일에 이훈(60ㆍ아마4단) 사장의 차로 김창하(55ㆍ아마7단) 사장과 함께 방문했다. 산투스는 항구 도시로 47년 전 한국사람들이 선박 편으로 처음 도착했던 곳이다.
이 사장과 친한 고은덕(58세ㆍ아마초단) 사장이 아름다운 남대서양 해변이 있는 이곳에 별장을 가지고 있어 찾아 갔다. 고 사장은 나와 고향이 같은 부산 출신이었다. 그는 이민 1.5세대로 사업으로 성공한 이다. 바다낚시에도 일가견이 있어 얼마 전 참치 2백 킬로 짜리를 직접 낚은 일화을 들려주면서 사진도 보여 주었다. 고 사장은, 이곳이 얼마나 경관이 좋은지 마치 부산 태종대 같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이곳 토지를 매입해 건물을 지었다. 심심할 때 여기서 인터넷 바둑을 둔다고 한다. 고사장이 생선회와 동태 매운탕을 차려놓았다. 이곳에서 한식을 먹게 될 줄은 몰랐다.
9월29일과 30일에도 한인기원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는 중년 여성과 아마2단 실력을 갖춘 일본 여성 그리고 교민들과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냈고 약 1년 전에 인터넷으로 가르친 현지인 마르틴 길헤름(Martins Guilherme) 씨도 만나 직접 지도 대국을 했다.
체류하는 마지막 날 저녁에는 10여 명이 모여 송별연을 가졌으며 내년에는 좋은 장소로 기원을 옮겨 다시 만나기를 기약했다. 정이 많은 동포 바둑 팬들의 환대를 받아 고마웠고 교민 바둑계 재건의 희망을 볼 수 있어 정말 보람 있는 6박7일이었다.
※ 사진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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