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금 제품, 995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글: 오대규 순금제조자협의회 회장
저는 40년 전 종로에서 일하던 친구의 권유로 주얼리 업계에 입문하여 서울시 월곡동에 위치한 삼원상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명동과 남대문을 거쳐 1988년 고향인 예지동에서 대한사를 창업했고, 현재는 황금세상이란 상호로 순금 제품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주조(캐스팅)로 시작해 액세서리, 은 제품, 순금 제품, 합금 제품 등 주얼리 완제품과 관련된 제조는 거의 다 해본 것 같습니다.
2012년 MBC 불만제로라는 프로그램에서 귀금속 제품의 순도 문제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전국의 금은방을 상대로 제품을 구매하여 순도를 조사하고 매입 시세를 비교하는 고발성 방송이었습니다. 물론 고발 프로그램의 특성상 기획 의도가 있었겠지만, 주된 내용은 정상 제품 1개와 순도 미달 제품 9개를 부각시키는 쪽으로 방영됐습니다. 게다가 순금 행운의 열쇠와 동물 모양의 제품에서는 합금 조각과 이물질이 나오는 충격적인 장면 또한 고스란히 노출됐습니다.
당시 자녀들과 함께 방송을 시청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 눈치만 보는 애들 앞에서 창피하고 낯 뜨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특히나 저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가끔 종로에 나와 제가 공장에서 제품 만드는 것을 보고 자랐기에 창피함과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선량하고 정직한 업계 분들이 더 많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양심을 버리고 불법 및 편법을 일삼고 부당한 이익을 편취하는 사람이 버젓이 존재하고, 이들이 갈수록 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에 큰 우려와 분노를 느낍니다.
그동안 협회를 중심으로 회의와 많은 간담회와 공청회를 거쳐 (사)한국귀금속보석단체장협의회는 귀금속 순도에 대한 필요성을 정부에 건의하여 2011년 국가기술표준원에서 KS D 9537 ‘귀금속 및 그 가공제품’이라는 고시를 제정하고 2013년에 개정 확정했습니다.
본 고시는 단일 금속인 순금의 함량을 Zero Base(오차 없음)로 결정하고, 99.9%(무땜 제품)와 99.5%(땜 제품) 두 가지로 표시를 분류했습니다.
기술표준원 회의에 참여했을 때 저는 순금 제품을 99.9%로 단일화하며 대신에 ±0.2%의 허용오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는데, 회의에 참석한 10명 중 8명이 허용오차는 없어야 하고 가공 공정상 땜의 유무에 따라 99.9%, 99.5%로 구분해야 한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현재의 순도가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40여 년간 귀금속 제조공장을 운영했고 귀금속 가공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 주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답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순금 순도의 KS 고시가 제정된 이후 저는 본업인 순금 제품을 현재까지 유통해왔고, 주로 99.9% 제품을 제조·판매했습니다. 현장에 있으며 현재의 제조 기술과 환경을 보았을 때 다른 분들도 순금 제품의 경우 100개 중에서 99개는 충분히 99.9%로 제작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만 몇몇 제조공정이 복잡한 장신구나 예술작품은 99.9%의 순도를 유지하기가 다소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조공장이라면 양심껏 순도를 준수하여 총판에 납품하고 총판은 제조공장의 상호가 각인된 제품을 소매점에 유통하며, 소매점은 당당하게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그 제품을 다시 재매입해 업계로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요?
국가기술표준원 담당자분께 부탁드립니다. 단일 금속인 순금 제품의 순도를 99.9%로 단일화하는 방안으로 개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업계는 미국(±0.3%)이나 독일. 인도네시아 등 순금 제품 제조 시 땜 등의 공정에 대한 허용오차를 주는 방안과 KS 고시가 아닌 제재 법(처벌 조항)의 제정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런 방안을 추진해야 순도와 중량을 지키지 않고 유통되는 일이 없어질 것으로 사료됩니다. 저 역시 업계의 선후배님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999 표기의 단일화에 이의를 제기하며 단일 금속인 순금 제품의 99.9%를 단일화하지 못하게 한 순금협회 관계자 및 회원분들께 묻겠습니다. 99.9%를 99.5%로 파시는 제품의 차이 0.4%는 어느곳에 가 있을까요?
금은 화폐의 성격을 지닌 재화입니다. 또한 금 제품의 순도는 그 나라의 국격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거주하는 동남아시아나 중국 사람들이 995 제품을 기피하고 있다는 한 소매점 사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많은 생각을 글로 옮기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금속경제신문(www.diamond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