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보살은 자기행복을 돌보지 않는다고?
(자기 행복은 중요하다)
어제까지 장마시즌에 폭우로 하천이 넘쳐 흘렀다
하루가 지나 무더위속에 한 젊은이가 하천에 몸을
담근채 스마폰을 보고 있다.
독서와 피서, 일석 삼조의 실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륵의 후예,행자인 나는
"좋아,좋아! 아주 좋아! 시원해 좋고,자연을 즐기니
좋고,오염되는 비누등 샴푸 소비가 없어 좋고,대낮 무더
위에 천변 휴식은 제격이야,좋아 좋아 아주 좋아"
나는 속으로 되뇌였다.
자기행복이라는 것! 그 어느 것과 바꿀수 없는 지고의
가치다. 작금 많은 노보살님들이 90여년 긴 삶을 오직
오직 자녀와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노구의 육신으로
힘들게 버티시는 모습에 심한 갈등을 겪는다.
좀더 젊으셨을 때,걸어 다닐수 있을 때 많은 자기 행복
을 누리셨어야 하는데, 이제 자신의 꿈과 행복이 무엇인
가를 알고 행하려 할 때 두 다리가 풀려 거동을 못하고
더구나 노환의 종점,치매의 한 복판에서 힘겹게 하루하
루를 보낸다는 것은 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자식 후손들이 그 무덤가에 가 피눈물 흘린들 어찌 그
노부모들의 생전 여한을 보듬어 드릴 수 있을까?
자기 행복은 소중하다
나무기둥이 뽑히고 대거 휩쓸려 내려간 하천에서
"그래 한달간 장마와 일과 스트레스에 힘들었지
오늘 하루 시원한 물속에서 쉬고 육신을 이완시키렴"
하며 자신을 달래주고 보듬는 자기안위와 자기행복이
주춧돌이 되어 대승의 법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그 시작
이 '나의 안위와 행복'이다.혹자는 무아법에 왠 자기행복
이냐 말하겠지만 색즉시공,현실과 육신과 존재의 사유
속에 일심과 해탈을 증득할 수 있으니,무아법이라 해
마시는 물이 공하니 물도 마시지 말고 쓰러저 사라지라
는 어리석음은 필요치 않다.
곧 나와 중생은 하나요
나와 부처님은 둘이 아니다라는 사유
즉 공존과 공생의 사바황야에서 자기 생명의 가치를
분명히 알아 과연 생존의 기간동안 어떻게 불법과 불심
을 구현할 것인가 하는 고매한 의식 역시 나의 육신(법체
)과 사유에서 시작되고 끝맽나니,어찌 자기보위의 거룩
한 나날을 등한시 하랴?
옛 조사나 고승들은 스스로 엄격한 청빈과 금식속에서도
새로운 구법행자가 들어오면 "골고루 맛있게 공양해라
네 육신을 잘 가꿔 법의 그릇으로 삼거라"하는 눈물어린
자비의 말씀을 하셨으니,소납에게도 7~8분의 열반하신
고승들의 고준한 말씀이 있었으니,그 뜻을 새겨 올 여름
도 운동과 섭생에 깊히 주의를 기우리는 바다.
대승보살은 자기행복을 돌보지 않는다고?
불기 2568.8.1 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