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선 네 살짜리 아이들이 벌써 저와 대화할 할 수 있는 언어, 코딩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코딩이란 C언어·자바스크립트처럼 여러분들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입니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벌써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어휴, 어릴 적 너도나도 배웠던 GW-BASIC은 지금 전혀 쓰지도 않는데, 우리 아이들도 C언어를 배우러 컴퓨터 학원에 가야 한다는 소리야?"
저도 강남의 귤이 강북에 가면 탱자가 되듯, 핀란드 '코딩 교육'이 한국에서 강제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변질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핀란드 고등학생을 위한 코딩 교육 프로그램 개발업체 미헤킷의 기술책임자 산나 레포넨이란 분이 그런 말씀을 하더군요. "우린 학생들에게 C언어나 자바스크립트 따위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다. 음악·예술·디자인 등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코딩으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려 한다"라고 말이지요.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는 인재로 살아남으라고 가르치기 보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모습이었습니다.
핀란드의 코딩 교육업체 미헤킷은 MIT공과대학에서 개발한 반도체 기판 '알두이노'를 활용해 고등학생들을 위한 코딩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김도년 기자]
이런 전문적인 교육은 누가 담당하고 있는 걸까요? 여기에는 고등학생들보다 3~5살 많은 핀란드 내 공과대학 학생들이 '실습 교사'로 나서서 고등학생들과 다양한 발명품들을 만드는 작업에 함께 합니다. 2014년부터 핀란드 전역의 383개 고등학교 중 75개교에서 벌써 이런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요. 모든 교육은 무료로 진행되고, 교육을 받고 싶은 학생만 따로 신청을 하면 됩니다. 헤이니 까르삐넨 미헤킷 대표는 "우린 코딩 교육 코스를 일선 고등학교에 팔아 돈을 벌고 이 돈으로 대학생 교사를 교육하는 비용으로 쓴다"며 "교육 콘텐트 개발에는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의 후원금도 활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핀란드 에스푸시의 뽀요이스 타피올란 고등학교 실험실에서 고등학생들이 코딩 교육을 받고 있다. 이날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원격 조종할 수 있는 카메라를 제작했다. [김도년 기자]
학생들의 만족도는 얼마나 될까요? 한창 코딩에 열중하던 고3 학생 엘리자베스 우봐로봐(18)는 입시가 코 앞인데도 여름방학 코딩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코딩은 인공위성 개발자가 되는 꿈을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융합한 신개념 심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고교생 안나 비헤르봐(18)도 "코딩 교육이 꿈을 이루는 징검다리가 돼 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가 꿈이라고 답할 줄 알았지만 저마다 생각하는 꿈을 이루는 데 코딩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단해보였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교육장에 모인 15명의 학생들에게 "앞으로 스타트업 기업을 창업할 생각이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8명이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이런 인재를 가진 나라. 4차 산업혁명에서 핀란드 정부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긴 할까요? 핀란드 정부는 지난해부터 초등학교 과정에서 1년은 의무적으로 코딩을 배우게끔 하고 그 이후에는 학생 자율로 선택해 심화 교육을 받도록 했을 뿐입니다. 심화 과정들은 미헤킷 등 민간 교육업체들이 일선 학교와 손잡고 진행합니다. 방학기간이나 방과후 교실을 활용해 학생들의 자발적인 신청으로 운영되는 이런 '코딩 스쿨'은 이미 200여개를 넘어섰습니다.
코딩 교육뿐만 아니라 고등학생들에게 벌써 기업가로서의 마인드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도 있었습니다. 앞서 코딩 교육 얘기를 잔뜩 늘어놨는데, 왜 난데없이 기업가 정신 얘기로 넘어가느냐. 그것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보편화할 미래 사회의 산업 구조가 소수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로 짜여진 대량 생산의 시대에서, 정확한 소비자를 찾아 맞춤형 상품을 생산하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로 전환할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에서 필요로하는 스펙을 쌓는 데 젊은 시절을 보내고 취직한 뒤에는 조직이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방식은 옛날 얘기가 될 것으로 보는 것이죠. 이젠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인재들이 사회에 필요한 상품이 무엇인지를 찾아, 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헬싱키 시내 핀란드산업협회 건물 내 위치한 이코노믹 인포메이션 오피스는 고등학생들에게 회계와 세일즈·마케팅·글로벌 시장 분석과 협상 기술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이 프로그램도 핀란드 내 50여개 학교가 도입했습니다. 미코 하칼라 이코노믹 인포메이션 오피스 프로젝트리더는 "그 동안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년 동안 수학을 공부했으면서도 기업의 회계장부 하나 볼 줄 모르는 교육을 해 왔다"며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스타트업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핀란드의 이코노믹 인포메이션 오피스는 고등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왼쪽부터 라우리 바라(교사), 미코 하칼라(프로젝트리더), 헤이디 람마싸아리(교사). [김도년 기자]
학생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핀란드식 교육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존 교육 시스템보다 더 진화한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고민을 계속해서 해 나가고 있는 것. 그것도 민간 영역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물론 핀란드 국가 경제가 2012년 이후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 빠지는 등 '유럽의 환자' 취급을 받아온 데 대한 반작용으로 미래를 대비한 교육 혁명에 몰두하게 된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핀란드에서 만난 교육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인공지능이 많은 일자리를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기업가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말입니다. 미꼬 하카라 프로젝트리더는 "공공 부문이 비대한 핀란드에는 스타트업 혁신을 이룰 위험감수자(risk taker)가 부족하다"며 "인공지능 혁명 속에서도 사업을 계획하고, 협상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기업가의 일은 대체될 수 없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에게 미리 이런 교육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원전 7000년 농업혁명의 시대엔 인류가 가축을 농사에 활용하게 되면서 마을에서 힘 꽤나 쓰는 근육질 농부의 일감은 줄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곡식을 생산하게 됐고 부가 축적되면서 더 많은 직업이 생겨났습니다. 가축에게 일자리가 빼앗길 것을 걱정하기 보다, 가축을 더 잘 부려 농사를 더 잘 짓는 방법을 고민했던 인류의 지혜, 4차 산업혁명을 맞은 지금에서도 필요한 게 아닌가 합니다.
헬싱키=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이 기사는 핀란드에서 취재한 내용을 인공지능(AI)의 시점에서 서술했습니다.
[출처: 중앙일보] [퓨처앤잡] 인공지능, 핀란드 코딩 교육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