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유교의 비판주의
결과주의자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여 묵가는 여러 측면에서 유가적 예의 실천에 대해 거부했다. 유가적 장례절차는 부를 낭비한다고 묵가는 주장했다. 왜냐하면 유가는 고인을 위해 특별한 수의와 관과 곽 같은 장의용품을 요구하였고, 제기를 부장품으로 남겨두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유가는 인구를 감소시켰는데, 과도하게 애도를 장려하여 건강을 해치고 생식을 단념시켰다. 마침내 상중에 친척들은 일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사회적 질서는 쇠락하게 되었다. 정부에서 일하는 유족들이 자신의 공적 지위를 포기하였고, 농부들은 자신의 농지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묵가들은 장례의식을 완전히 제거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은 ‘moderation of funerals 적절하게 장례의식을 행하여’, 비용을 덜 들이기를 주장하였다. 묵가는 주장한다. “장례에 있어 장지로 떠날 때와 장지에서 돌아 올 때 반드시 통곡해야만 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재개해야 한다.”(89)
여러 가지 유가적 제례에는 정교한 음악과 무용이 포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묵자가 “제례악은 잘못이다!”라고 거듭 선언했을 때 그는 유가를 비판한 것이다. 음악에 대한 묵가의 입장은 쉽게 오해받을 수 있다. 묵가는 모든 음악에 대해 반대한 것이 아니며, 소박한 가무를 금지하지 않았다. 묵가가 반대한 것은 전문 예인에 의한 오케스트라와 같은 공연이다. 묵가들은 이러한 공연이 최소 3가지 방식에서 자원을 낭비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백성들은 무희의 제례복과 악기를 만들기 위해 세금을 내야만 한다. 그러면 예술가들은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기 위하여 생산적인 활동에서 멀어져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공연에 참여하는 청중들은 자신의 일에 쓸 시간을 버려야만 한다.
아마도 유교에 대한 가장 중요한 도전은 묵가의 보편적 윤리에서 파생한다. 유교가 차별적 대응differentiated caring을 옹호했음을 상기해보면, 유교의 강령은 낯선 이에게 보다는 친구나 친척에 대해 더 강력한 도덕적 의무를 가지며, 더 잘 보살펴야 한다.(논어 13.18 자로편에서 공자가 아버지를 도둑으로 고발한turn in 아들을 비난하였는데 이는 이러한 입장에서의 고전적인 표현이다.) 묵가는 이러한 강령을 강력하게 거부한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 편파적인 사람들이 세계에 가장 큰 피해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스승 묵자가 ‘나는 편파성을 비난한다.’고 말하는 이유이다.”(68) 그러나 묵가는 차별적 대응이 (우리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공통의 상식임을 인지했다. 결과적으로 묵가들은 이러한 결론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주장argument은 논쟁quarrel이거나 자기주장assertion과는 다르다. 자기주장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은 진술statement이다. 논쟁은 일정한 적의를 포함하고 있는 전통적인 것으로서 이견disagreement의 상호 표현이다. 그래서 수잔이 “사형Capital punishment은 살인”이라고 간결하게 주장한다면 그녀는 자기주장assertion을 한 것이다. 만약 존과 수잔이 감옥 밖에 서 있다. 존이 “범죄에 합당한 형을 구형하라”고 외치고, 반면 수잔은 바리케이드의 다른 쪽에 서서 “사형은 살인이다!”를 외친다. 그들은 논쟁quarrel하고 있다. 자기주장과 논쟁 둘 바에 반해서, 주장argument은 특별한 결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훌륭한 변명good justification을 제공한다. 다른 문화와 역사적으로 다른 시대는 훌륭한 주장good argument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사한 모든 문화에서 인간은 논증argumentation에 참여하고 있으며, 하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좋은 주장과 나쁜 주장을 구별한다. 따라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주장으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한마디로 말해 그들의 주장이 정말로 자신들의 결론에 훌륭한 변명을 제공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그들이 설득력이 있는지를 판단함이 없이 다른 문화의 주장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그것을 말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거나 아무 것도 행하지 않으면서 프랑스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논어에는 특정한some 주장이 있다. 그러나 묵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중국 철학에서 명료한 논증argumentation의 광범위한 사용을 창시하였다는 점이다. 묵가가 개발한 논증적인 기술 하나는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 (독일어 명칭 ”Gedankenexperiment"로도 알려져 있다)이다. 사고실험에서 가설의 상황에서 일어날 일을 상상한다. 그런데 그것은 전에 깨닫지 못한 가치나 사실이 현재의 당신의 믿음이나 의지commitments의 결과임을 발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것은 정말 추상적이다. 그래서 묵가들이 공평한 보살핌impartial caring(겸애)의 측면에서 사고실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조사해보자.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한 사람은 차별성을 유지하고 한 사람은 보편성을 유지한다. 그래서 친구가 굶주릴 때 차별적 보살핌을 주장하는 사람은 친구에게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친구가 추위에 떨 때 그는 친구에게 의복을 주지 않는다. 친구가 아플 때, 보살피지 않는다. <하지만> 공평한 보살핌을 주장하는 사람의 친구가 배고플 때 그 사람은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 친구가 추위에 떨면 옷을 제공하고, 친구가 아프면, 보살핀다.......어떤 사람이 완전 무장을 하고 삶과 죽음이 우연인 황량하고 광활한 곳에서 전투를 한다고 가정하자. 아니면 어떤 사람이 통치자나 상관에 의해 멀리 떨어진 제나 정, 위, 파巴에 파견되었는데, 임지에 도달하거나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확실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불확실한 조건하에서 그 사람의 부모, 부인과 아이들의 참살이well-being 좋은 삶을 누구에게 위탁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공평한 사람의 보살핌 속에 두는 것이 좋겠는가 아니면 차별적인 사람의 보살핌 속에 두는 게 좋겠는가? 이러한 환경 하에서 (후자를 선택하는)바보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으리라 믿는다. 심지어 차별성을 옹호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가족을 보편적인 사람에게 위탁하길 틀림없이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로는 차별성을 비판하지만 행동에서는 차별성을 선호한다. 차별성에 들은 세상에 어떤 사람이라도 차별성을 비난하기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어떤 이유도 보지 못했다.(묵자 16; 독서편 pp.69-70)
이는 때때로 직무대행자 주장Caretaker Argument으로 언급된다. 하나의 주장을 문장으로 마주친다면, 그 주장을 당신 자신의 언어로 바꿔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주장이 인식시키려고 노력하는 결론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다음으로 그 주장을 검토하고, 주장이 결론을 위한 좋은 변명(정당화)을 제공하는지 아닌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결정한다.
여기에는 하나의 주장을 바꿔 쓰고 검토하기 위한 하나의 옳은 방법 이상의 것이 있다. (but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이것이 내가 직무대행자 주장을 설명한 이유다. 묵가는 우리를 하나의 상황을 상상하라고 초대했다. (그 상황은)우리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임무에 보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배우자, 아이들, 그리고 연로한 부모들의 돌봄을 공정한 사람 또는 편파적인 사람에게 위탁해야만 할까? (묵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평한 사람은 우리의 친척들을 마치 자신의 친척처럼 돌보아 준다. 반면, 편파적인 사람은 우리의 친척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묵가는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친척을 공평한 사람의 돌봄에 맡기기를 선호한다.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우리 모두는 공정성을 지지하는데 동의한다는 점을 시사 한다고 묵가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