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교회사는
로마제국의 분열과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갈곳을 잃은 교황청이
유럽의 새로운 세력인 독일계와 이탈리아계의 명문가문으로 형성된 신성로마제국과
타협으로 교황청이 명맥을 유지합니다
그이후 신성로마제국지욕의 주교와 프랑스계 주교의 다툼으로
교황이 프랑스 아비뇽에 유폐되는 유수시기의 엄청난 수모를 당합니다
교황이 어떤 특정 가문에서 배출되기도 하고
16세기의 교회가 루터에 의해서 교회가 갈라졌는데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보게되면 다분히 교황의 절대적인 권한에 저항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루터에 이어서 캘빈등 여러 개신교학자들이 나타났지만
오늘날과 같이 성모신심에 대한 공격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들은 성모님을
통한 기도도 바치게 됩니다
가톨릭은 루터의 교회분열이후에 정화작업으로 수도원운동이 일어나서
수많은 수도회가 탄생하기도 하였지만 이를 아주 보수적으로 여겨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가톨릭을 따르지 않는 이들과는 완전히 단절을 선언하였고
모든 교리들을 재정립하게 되어서 그들 스스로가 세상과의 단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시기 즉 프랑스의 나폴레온의 등장으로
전쟁이 일어날 무렵에 교황청의 생각이 변화되기 시작하였으니
제1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한것입니다
즉 트리엔트공의회에서 결정된 것들을 다시 보게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회도중에 전쟁으로 끝마치지 못하고 중단되었다가
교황청은 고립을 면키 위해서 통일전쟁을 하는 이탈리아 무소리니와
협정을 맺었으니 1929년의 라테라노 협정이었다
교황청은 이탈리아 반도내에 있는 여러 교황령의 토지를 이탈리아 정부에게
돌려준대신에 로마시내에 한지역을 활애받고 이를 국가로 인정받는 조약이었지요
지금도 이지역은 중립국가인 스위스에 파견된 이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고
그대신에 전세계의 가톨릭의 본산으로 인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이후에 1960년대에 개혁적인 공의회를 열었으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인것이다
이정신은 요한바오로2세 베네딕도16세에 이어서 현교황에 이르기까지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이어 받기 위해서 여러 교서를 반포합니다
그동안 공의회는 어떤 특별한 문제가 발생되었을떄에 개최하는 것으로 그 공의회의
개최의 텀이 아주 길다는 것인데
이들을 타개하기 위햐서 교황청은 시노드를 자주 개최함으로서 여러 문제를 해결
할려고 하고있고 세상의 여러문제를 시노드등을 통한 세계주교회의의 논의를 거쳐서
교황 반포문이나 권고문형식으로 문헌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현교황에 이르러서 복음의 기쁨이나 아니면 환경문제에 대해서 큰 논의가 있었고
이주민이나 소이된이들을 위해서 전세계가 지역단위 본당 그리고 교구 더 나아가서
대양별로 논의된 의제를 금년에 세계주교대회에서 주교님들이 논의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몇년전에 교황청에서 개최미사를 드리고 각국에서 교구에서 본당에서
이를 실천하라고 하였지만 어떤 곳에서 도무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교황님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아직 항구에 도착조차되지 않고 있다고
하셨듯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된지 60여년이 지났음에도 볼때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티칸공의회에서도 여러 의제를 의결해서 교황이름으로 반포하게 되는데
이들이 결정되는데도 수많은 난관을 거쳐야 했다고 합니다
요즈음 들어서 개혁적인 교황이 등장하였지만
세계의 수많은 주교들중에는 아직도 이탈리아계가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안에 보수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이탈리아계로서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2세와 독일계 베네딕도16세 교황에 이어서
예수회 수도회출신인 남미의 현교황으로 아주 파격적인 선임이었다
현교황은 교황청사를 이용하지 않고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거주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분은 바티칸 광장의 발코니에서 순례객들을 위한 짧고도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강론으로 유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특히 공동체에서는 헌신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즘과 같이 복잡한 산업사회에서 전체가 동시에 변화되기한 어려운일이라는 것인데
이는 구약의 예언서를 통해서 주요 이슈인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수 있는
소외된 이를 돌보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오늘날도 교회를 운영하는데 재정적으로 부담하는 계층 일부로만
운영되는 문제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헌신적인 지도자들을 통해서 이런 소외된계층이 도움을 받는
본당체젤ㄹ 만들어야 하고 이는 공동체를 통해서 반영되어야 하는데
성서형제회에서 지식공유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이런 헌신적인 지도자의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톨릭을 비롯해서 많은 신앙문제에 부딪치지만
이런무네는 결코 지식이 부족하거나 굥유가 되지 않아서 생겨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부만이라도 결코 헌신적이려고 하지 않기 떄문에 생겨난 것이라 여겨집니다
오래된 동화가 있습니다
길을 가는 나그네가 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바람과 햇빛이 있었지요
그들은 나그네에게 누가 먼저 그 의 옷을 벗게 할까를 내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자 바람이 시도합니다 바람이 불어서 그 나그네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 나그네는 옷에 손이 갑니다 자신을 얻은 바람은 더 강한 바람을 불어됩니다
그런데 그 나그내는 옷을 벗기보다는 옷을 꽉 잡고 있던 것입니다
그때에 햇살은 조용히 햇살을 내리 쬡니다 가만히 있던 나그네가
그 더위에 땀을 흘리고 그리고 나서 겉옷을 벗어버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동안에는 좋은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떄로는 난관도 닥쳐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세상에 햇살만 내리 비친다면 세상은 온통 말라죽을것입니다
세상의 4대문명중에는 큰강이 있는 곳에서 발달합니다
중국의 황하와 인도의 갠지스강 그리고 중동지역의 티그리스 유프라데스강이고
이집트의 나일강입니다
그들은 비가 많이 쏟아지는 우기가 분명 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동안에는 강물이 넘치고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논밭이 잠기도
생활터전도 잠기게 됩니다 어려움이 닥치게 되지요
그런데 그들은 그로 인한 풍요로움의 결실을 맛보게 됩니다
황하라는 것은 흙탕물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대도시에는 연립과 단독주택이 점차로 재개발되어서 고층아파트가
됩니다. 이들에는 분명히 모습이 있습니다
5층이라의 연립에 사는 이들은 이웃과 잘 소통되지만 이들이 환경이 좋아지는
고층아파트가 되면서 이웃과 단절됩니다 아파트안으로 들어갈려면 자동문을 통과해야
하기 떄문입니다 고층아파트에는 큰마당이 있지만 그곳에는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고층아파트단지근처에는 대형 쇼핑센터나 배달전문의 음식점은 있지만
재래시장은 없습니다
지난 안산에 원곡동에 처음 이사갔을때에 주변에 5일장과 재래시장이 있었지요
그들중에는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서 직접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사람의 냄새가
났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대구에서 변두리인 이곳에도 재래시장이 있지만
점차 주변 대형마크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대형마트로 몰리기 떄문에 재래시장의 경쟁력이
낮아집니다 점차 모든 생필춤이 공장같은 대단지 시설에서 생산됩니다
아마도 우리들의 소공동체의 신앙들도 이와 같을것입니다
소공동체모임을 지역에서 구역모임이나 아니면 본당내에서도 레지오의 쁘레시디움모임이나
여러형태의 소모임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가장 적합한 형태입니다
그런데 효율적이라는 미명하에 우리는 전체교우를 대상으로 하는 본당신부님의 강의와 교육
전체교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지순례에 익숙해져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본당신부를 중심으로 하는 사목협의회나 평협으로는 우리 본당의
극히 일부분 신자들만을, 이를 따르려는 몇몇이만을 위한 길이라는 것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음에도 이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서형제회내에서도 코이노니아나 지구모임에 열중하기 보다는
전국단위의 회의나 행사에 치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먼저 코이노니아팀이나 지구모임에서 일어난 일들을 서로 공유함으로
서로 위로하고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성서형제회에서도 레지오와 같이 레지오의 쁘레시디움의 단장이 성서형제회에서는
코이노니아말씀선포자인데요 작게는 본당단위나 아니면 지구단위로 팀말씀선포자들만이라도
매달 한번씩 교류를 하거나 어떤 주제를 갖고 팀장인 말씀선포자들의 교육이나 훈련을 할수 있도록
해야 할것입니다 물론 이들을 위해서 전문강사를 초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 할 여건이 안되면 레지오와나 본당내의 유관단체의 봉사자들을 초빙하거나
본당의 수녀님을 초빙해서 경험등을 들어봐도 좋을것입니다
아마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전국월례회의에서 행사의 일정조율이나 시간배정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데요
이를 논의할것이 아니라 일부 몇사람들이 이를 정리하는것이 나을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본당의 일정의 조율을위해서 정식회의가 아니라 물밑의견조율을 통해서 정리해야 할것입니다
요즈음에 들어서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시흥시팀이나 목3동팀이 행사에 잘 나오지 않는것도
의문시되는 부분입니다
이런 주요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성서형제회의 카리시마를 잘 준수하기가 어려울것입니다
결국 성서형제회와 다른길을 걸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교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소식도 공유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