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최후의 만찬과 예수님의 감사”
+ 본 문 : 마가복음 14장 22절 - 25절(신약 80쪽)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멘!
우리 예수님의 일생은 베들레헴 말구유에 나시므로 시작됐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마쳤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사역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음으로 시작되었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
자신의 뜻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의 사역은 세례를,
받으심으로 시작하셨고, 성찬을 나눔으로 절정을 이루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들이 세례와 성찬을 교회의 성례전으로 중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성령이 강림하셨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모여 성찬을 나눕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먹을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시고, 떡을 가지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떡과,
잔을 받아서 먹고 마심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성만찬은 유월절에 이루어졌고,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 흘림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유월절에 행하심으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과 자신의 죽음을 일치시키심으로, 자신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심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죽음을 계시하시는 성만찬을 통해서 지극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성만찬의 감사는 보통 인간으로서는 전혀 불가능한 하늘의 감사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범사에 감사하신 생애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였는데, 그것은 감사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한 하늘의 감사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하늘의 감사는,
물론, 공중에 나는 새, 들에 피어 있는 꽃 한 송이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범사에 감사하셨던 전천후 감사였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대부분이 자신의 행복과 자신의 삶의 기적이 일어나는 났을 때,
곧 나 자신에게 유익이 있을 때에만 감사하는 자기 중심적인 감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감사는 다른 사람의 행복과 축복을 생각하는 하늘 감사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셨습니다. 그 결과 오천 명이 다 배불리 먹고,
남는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의 양식인 말씀을 먹고 돌아가는 배고픈 군중들을 불러,
배불리 먹이셨고, 장차 자기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먹일 것을 생각하면서,
하늘을 우러러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오늘 우리들에게,
성찬을 베푸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감사를 드리고 계십니다.
먼저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고(24절)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자기의 피를,
흘리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여 짐승을 잡아,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에게 세우신 언약의 피라."(히9:20)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자신의 피가 만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흘린,
새 언약의 피라.“ 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이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했습니다.(요 6:38-39). 이처럼 우리 예수님이 드린 하늘 감사는,
자기를 희생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감사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놓고 감사하심으로, 그의 삶을 감사의 축제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믿은 초대교회 성도님들은 로마의 숱한 박해와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예수님이 베푸셨던 것과 같은 성찬을 나눔으로, 찬송하며,
하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하늘의 감사는 사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자신을 죽이는 핍박자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고, 마지막 죽어가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찬송과 기도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고, 하나님의 뜻대로 죽는 것을 한없이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상에서 그는 “다 이루었다” 고 외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죽는 것이라면, 그 죽음을 영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처럼,
내가 죽을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면서, 자신의 몸은 생명의 떡이요,
자신의 피는 생명의 잔임을계시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온 인류를,
살리는 생명의 떡과 잔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자기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나눠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은 하늘의 감사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음으로, 하늘 감사를 드리는 성숙한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유함으로 감사하는 차원을 넘어서,
나를 온전히 희생하고 나누어줌으로 감사하는 하늘 감사를 드리는 멋있는,
예수쟁이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나누어줌으로써 받는 자의,
기쁨을 자기 자신의 기쁨으로, 받는 자의 행복을 자기 자신의 행복으로,
감사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온전히 나누어줌으로, 믿는 우리의 생을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 함께 찬양합시다. /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성찬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밥입니다. 밥은 나누어 먹어야 맛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받을 기적과 축복은 생각하면서도,
나눔으로 이루어질 풍요와 하늘의 감사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땅의 것으로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심 때문에 감사를 잊어버린 채,
불평과 불만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서로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
참 행복이 있습니다. 행복은 나 혼자 독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요,
서로 서로 나누는 데 있습니다. 밥도 혼자 먹으면 밥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나누어 먹어야 밥맛이 납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면, 비록 가난한 밥상이라도 밥맛이 납니다.
그리고 온 성도들이 주일에 함께 먹고 마시면, 별 반찬 없어도 밥맛이 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혼자 먹으려고 밥상 앞에 앉으면 밥맛이 없습니다.
밥맛이 나야 살맛이 납니다. 밥맛이 없으면 살맛도 없습니다.
결국 살맛은 밥맛입니다. 밥맛은 나눠 먹어야 생깁니다.
그러므로 살맛은 나눔에 있고, 행복도 더불어 나눔에 있습니다.
어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김지하의 시)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 하늘을 몸 속으로 모십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나누어 먹는 것.‘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나누어 먹는 밥으로 우리에게 주시면서,
먹고 행복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성전에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나는 널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었느냐? 나는 널 위해 살과 피를 나누어 주었건만,
너는 네 양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주었느냐?“ 이렇게 책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면,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저를 울게 합니다. 저는 한없이,
울면서 나눔을 결단합니다. 나눔은 감사요, 행복이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성만찬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의 감사를 드립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25절)
예수님께서는 이 성만찬 식사가 지상에서는 끝이 난 것을 전언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에서의 새로운 만찬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나타내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만찬을 나누면서, 재림 후에 있을 주님과의 만찬을 기대했습니다.
우리도 성찬을 먹고 마심으로, 천국에서의 완전한 교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늘감사를 드렸던 것은, 부활 축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실 천국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가정과 생업 등, 모든 삶의 환경은 어떻습니까?
비록 지금 살 소망이 끊어진 것처럼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늘 감사를 드리십시오.
구원의 확신과 하늘 나라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하늘 감사를 드리십시오.
유대인의 기도문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뜻이 있는 것으로 믿고 현실을 묵묵히 참고, 하늘 감사를,
드리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합니다." 이 기도문은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무참히 학살할 때, 자신의 죽음을 앞둔 한 유대인의 기도입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늘 주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성찬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늘 감사를 드리게 하는 축복을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늘 감사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늘 감사는,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얻었느냐.
얻지 못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땅에 속한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늘 감사는, 하늘나라의 새것으로 마시는 영원한 생명의 감사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가 행복하면 과거는 다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미래가 확실하면 현재는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늘 후회만 하면서 사는 사람은, 현재의 삶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불만을 터뜨리며, 거기에다가 그 미래까지 확실하지,
않는 사람은,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이 배가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현재가 행복하고, 미래가 확실한 사람은 죽으면서도 하늘 감사를 드리며,
행복하게 죽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아멘! (롬 8:18).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의 새것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고,
장차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는 영광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배설하신 복된 성찬에 참예하는 사랑하는 여러분! 성만찬을 나누시면서,
하늘을 우러러 하늘 감사를 드렸던 우리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죽음에서,
우리 죽음을 보며, 예수님의 생명에서 우리 생명을 보는, 영원한 하늘 감사를,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