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왔던 의림지를 모처럼 거닐었다.
소나무 울창한 뚝방길을 걷다가 문득 아내와 함께 앉았던 자리가 떠올랐다.
물가로 기운 소나무 앞에 빨간 옷을 입고 예쁘게 앉아 찍은 아내와의 사진을 아직도 휴대폰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바로 그 자리에 혼자 앉았다.
며칠전 요양원에 누워 나를 보더니 아내는 뛸듯이 반가와했다.
내 손을 꼭 잡으며, "나 집에 가고 싶어..."라며 말끝을 흐렸었다.
그런 아내를 보노라니 나는 가슴이 턱 막혀 숨도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18살에 시집와 참 지지리도 못난 남편하고 사느라 고생도 언간히 했는데...
탄광마을에서 시작해 온 천지를 다니며 애태우기는 또 얼마나 했던가.
아내에게 참 잘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만 가득하다.
그래도 내 곁에 있고 싶다고 애원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눈이 뜨거워졌다.
아직 아들과 사위를 알아볼 정도이니 아내를 데리고와 예전처럼 내가 수발을 들고 싶었다. 그깟 고생이야 아내가 평생 내 뒷바라지에 쏟은 은공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닌데...
하지만 모두들 요양원에서 지내며 간병을 받는 것이 아내에게도 훨씬 안전하고 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내 마음만 같아서는 오늘이라도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은데...
이제는 나도 의림지 한 바퀴를 걸어서 도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니 언제 이렇게 세월이 갔을까? 그래도 지팡이에 의지해 반바퀴는 족히 걸었다.
한발 한발 걸으며 의림지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을 맛보았다. 아내의 숨결인 양 보드랍고 상쾌하기가 그지 없었다.
적송숲을 지나 낙원에 이르니 아침운동 나온 분들이 나를 반기며 카페를 대접해 주신다. 이 좋은 세상 아내와 함께 오래 오래 잘 지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저런 내 마음을 아는지, 함께 간 이근규 전 시장이 "내가 건강해야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며 손을 꼬옥 잡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