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가장 중요한 것은 비어 있다
“신기하군요. 귀는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고 배꼽은 움푹 들어가 있죠. 말씀을 듣고 보니 귀와 배꼽은 탄생의 블랙홀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엄마 뱃속에서 나온 날을 귀빠진 날이라고 하고, 또 엄마 몸에서 끊어낸 탯줄의 또아리가 배꼽이니까요.”
“오묘하지. 시체 해부하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네만, 검시관들이 시체를 해부할 때는 반드시 배꼽 중심으로 배를 가른다고 해. 똑같은 배꼽이 하나도 없다는 거지. 그런데도 검시관의 눈엔 죽은 사람의 배꼽이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보인다더군. 어머니의 미소로 보인다는 이야기야.”
“쓸모없어 보이는 배꼽도 그런 신비가 있었군요.!”
“재미있지. 배꼽을 만져보게. 몸의 중심에 있어. 그런데 비어 있는 중심이거든. 배꼽은 내가 타인의 몸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물이지. 지금은 막혀 있지만 과거엔 뚫려 있었지 않나. 타인의 몸과 내가 하나였다는 것. 이 거대한 우주에서 같은 튜브를 타고 있었다는 것, 배꼽은 그 진실의 흔적이라네.
혹 배꼽이 아무 쓸모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누워서 몸 위에 찻잔을 놓아보게. 어디에 놓을 텐가? 이마? 코? 아냐. 배꼽밖에는 없어. 비어 있는 중심이거든. 가장 중요한 것은 비어 있다네. 생명의 중심은 비어 있지. 다른 기관들은 바쁘게 일하지만 오직 배꼽만이 태연하게 비어 있어. 비어서 웃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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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비워두어야
여러 가지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
자기 것 이외의 것들을
그곳에 자기성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