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압록강에서의 망원
최금녀
이곳에서 명사십리까지는 몇 킬로나 될까?
망원경을 눈에 바짝 대고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강 건너 북한 땅
그리운 내 고향 영흥
장백산 아래
동해를 가슴에 품은 곳
지금은 북한의 금야군과
정치수용소가 있는 요덕군이 되었다
나, 지금 여기 단동
세상에 태어나
내 태가 묻힌 영흥
나, 아직 죽지 않았다
영흥까지는 몇 킬로나 될까?
큰아버지와 기와집이 있는 곳
평양댁이 사는 곳
과수원이 있는 곳
러시아 군인이 별사탕을 던져주던 철길이 있는 곳
아카시아 꽃길이 있는 곳 산기슭이 있는 곳
큰 마당 작은 마당이 있는 곳 마이크가 있고 축음기가 있고 외갓집이 있고 사촌이 있 고 뻐꾸기 우는 언덕이 있는 곳 용흥강이 흐르는 곳
지금은 누가 살고 있을까?
기차선로는 깔려 있을까?
--- 시터 동인 제9집(근간)에서
서울에서 함경남도 영흥까지, 또는 서울에서 원산의 명사십리까지, 초고속 열차를 타면 2-3시간, 비행기를 타면 30분에서 1시간 이내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1945년 이후, 남북이 분단되어 가고 싶어도 갈 수도 없는 고향땅이 되었고, 따라서 중국의 압록강변에서 “ 눈이 뚫어져라” 바라다 보고, 또, 바라다 본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튼튼한 것은 탯줄이고, 우리 인간들은 영원히 이 탯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탯줄은 밥줄이고, 밥줄은 생명줄이며,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비록, 탯줄을 잘라버렸을 지라도 우리들의 배꼽과는 늘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최금녀 시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 옛날의 추억과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이겠지만, 그러나 “압록강에서의 망원”은 내가 태어났고 그리운 부모형제들이 함께 살았던 함경도 영흥을 바라보고 회상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태어났고, 부모형제들이 살고 있는 고향땅을 갈 수 없는 사람만큼 슬픈 사람도 있을까? 시인은 정치적 망명자도 아니고, 죄를 짓고 추방을 당한 범죄자도 아니며, 다만 영문도 모른채 한국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슬픈 일이며, 하루바삐 이민족의 침략자인 미군을 몰아내고 남북통일을 이룩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불가능은 없다. 큰 꿈을 꾸고 철학을 공부하고 노력하면 누구나 알렉산더 대왕이 되고 나폴레옹 황제가 될 수도 있다. 인간 중의 인간, 즉, 전 인류의 자랑인 문화선진국민으로 거듭난다면 “강 건너 북한 땅/ 그리운 내 고향 영흥”도 가깝고, “장백산 아래/ 동해를 가슴에 품은 곳”도 가깝다. “나, 지금 여기 단동”에 있고, “세상에 태어나/ 내 태가 묻힌 영흥”을 생각하듯이, 철학을 공부하고, 또, 공부를 하면 “큰아버지와 기와집이 있는 곳”에서도 살 수가 있다. 그곳에는 “큰 마당 작은 마당이 있”고, “마이크가 있고 축음기가 있다”. “외갓집이 있고 사촌이 있고”, “뻐꾸기가 우는 언덕”도 있다.
최금녀 시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실향민의 한을 노래한 시이며, 그 환상통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남북분단도 상처이고, 고향산천과 부모형제와의 생이별도 상처이다. 팔과 다리가 잘린 듯이 아프고, 사시사철, 늘, 항상, 총과 칼이 내 몸을 겨냥하고 있는 듯이 아프다. 남북분단의 아픔, 고향상실의 아픔, 참으로 가엾고 불쌍한 자의 자기 연민이 그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한다.
망원, 머나먼 고향땅을 바라보는 마음이 원망이 되고, 소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강대국에 짓밟힌 조국에 대한 처절한 인식이 쓰디쓴 환상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