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는 믿음 (벧전 1:6-7)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이 시간에 “변치 않는 믿음”이라는 제목입니다. 금이 왜 보물일까요? 금의 가치란 금이 희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보물선에서 보듯 금은 해저에서 수백 년이 지나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을 채취할 때 자연상태의 순금은 만나기 어렵고 불순물 가운데서 금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공정을 거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목적도 그렇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로 연단하시는 목적이 나타납니다. 순금보다 더 귀한 온전한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여기서 믿음을 이렇게 정의해 봅니다. ‘믿음은 변치 않는 것이다’
젊음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고, 권세도 변하고, 강산도 변하지만 영원히 변치 않아야 할 것이 믿음입니다. 히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듯이, 우리 믿음도 변치 않아야 합니다.
어떠할 때 변치 않아야 할까요?
1. 비천할 때나 존귀할 때나 믿음이 변치 않아야 합니다.
빌4:11-13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했습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비천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평안하고 살만하면 하나님을 등한합니다. 어느 나라고 일인 당 국민소득이 5000불을 넘어갈 때부터 가장 위기라고 합니다. 살만하니까 세상 일에만 분주한 나머지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도 처음에는 성실하고 겸손했습니다. 그 모습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안타깝게도 왕이 된 후 그만 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거역하는 교만과 독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에게서 하나님의 은총은 떠나고 악신에게 괴롭힘당하다가 왕위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경외했고 그 겸손이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13:22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하신 대로 살았습니다. 이 믿음이 금과 같은 믿음입니다.
2. 환난 때나 복될 때나 변치 않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욥을 보세요. 욥1:20-22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하였습니다.
욥은 7남 3녀 열 자녀를 두고 노비도 많은 당대의 최대 거부였습니다. 그랬지만 그는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욥1:1을 보면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했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대풍에 집이 무너져 사랑하는 열 자녀를 모두를 잃고 그 많던 재산도 외적들에게 모두 빼앗겼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욥의 몸은 심한 악창으로 썩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욥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욥1:22을 보면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2) 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비참했으면 그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변함없는 욥에게 다시 건강과 열 자녀와 갑절의 복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요셉도 열일곱 어린 나이에 이복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요셉의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은 그를 높여 애굽의 총리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이 금과 같은 믿음입니다.
3. 가난할 때와 부할 때의 믿음이 동일해야 합니다.
잠30:8-9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야게의 아들 아굴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일이 없길 사모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기도입니다. 믿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도의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물질과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맞아요. 아무리 믿음 좋다고 큰소리쳐도 물질생활 바로 못한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것만 봐도 알아요. 혹은 진짜 믿음인지 알려면 돈 주거나 빼앗아 보면 압니다. 가룟유다가 그랬습니다. 유다는 그토록 주님의 인격과 말씀과 능력을 경험하고도 돈 때문에 스승을 팔았습니다.
돈과 인간과의 관계는 배와 물의 관계와 같습니다. 물이 없으면 배는 무용지물이지만, 물이 배 안에 들어오면 배는 물속에 침몰하고 맙니다. 이처럼 물질은 필요하지만 그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면 인간은 파선된 배와 같이 희망이 없습니다. 돈 주면 믿음도 팔고 양심도 팔고 의리도 파는 세상이라면 희망이 없습니다.
4. 병들었을 때와 건강할 때도 변치 않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눅 17장에 나병환자 열 명이 지나가시는 예수님 앞에 긍휼히 여겨달라고 외쳤습니다. 불쌍히 보신 예수님께서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고침을 받은 후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사례한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아홉은 어디 있느냐”하시며 서운해 하셨습니다. 건강해지니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혹은 반대로 건강할 때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병들면 하나님을 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늙어갈수록 하나님을 더 붙들어야 할 텐데 하나님을 떠나면 어떻게 합니까? 늙고 병들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그거 예상해야 합니다. 잠시 잠깐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저버리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 들어가는 세 겹의 아치문 위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첫째 문 위에는 “즐겁게 해주는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 문 위에는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도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중앙 예배실로 통하는 큰 입구에는 “영원한 것만이 중요하다”라는 글이 조각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6-18)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고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도 변치 않아야 합니다. 이런 참된 믿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비천할 때나 존귀할 때나, 환난의 때나 복락의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조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참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