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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생몽사(醉生夢死)
술에 취하여 자는 동안에 꾸는 꿈속에 살고 죽는다는 뜻으로, 아무 하는 일 없이 한평생을 흐리멍덩하게 살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醉 : 취할 취(酉/8)
生 : 날 생(生/0)
夢 : 꿈 몽(夕/11)
死 : 죽을 사(歹/2)
정신없이 술에 취해 행동을 멋대로 하는 사람을 욕하여 술 먹은 개라 한다. 천하에 두려워 하거나 어려워 하는 것이 없으므로 취중무천자(醉中無天子)라고 점잖게 따돌린다. 행패도 부리지 못할 정도로 고주망태가 된 사람은 취여니(醉如泥)다.
반면 술을 알맞게 마시면 온갖 시름을 잊게 해 준다고 망우물(忘憂物), 어떤 약보다 좋다고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술에 취한 듯 살다가(醉生) 꿈을 꾸듯이 죽는다(夢死)는 이 성어는 어떤 상태를 이를까. 이 말은 송대(宋代)의 유학자 주희(朱熹)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정호(程顥)의 말이라며 소학(小學)에서 인용한 것이 처음이라 한다.
정호는 동생 정이(程頤)와 함께 이정자(二程子)로 불리며 정주학(程朱學)을 창시했다.
어록에는 당시 간사하고 요망한 말들이 넘쳐 백성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천하를 어지럽게 하니 아무리 고명한 재주를 가졌어도 그 말에 얽매여 취생몽사의 지경으로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雖高才明智 膠於見聞 醉生夢死 不自覺也.
수고재명지 교어견문 취생몽사 부자각야.
송대에 처음 사용됐다고 해도 술 취한 채 살다 죽어간 사람은 앞선 시대에 많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향락으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나라를 망친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대표한다.
하지만 미화된 죽음도 있다. 비록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더라도 모든 사람이 취한 중에 혼자 깨어 있었다는 중취독성(衆醉獨醒)의 굴원(屈原)이 있다.
무엇보다 술에 취한 채 호수 속에 있는 달을 잡기 위해 물 속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이백(李白)은 유배에서 풀려 선계(仙界)에 갔다고 해도 별호 취성(醉聖)이 더 어울린다.
조선 중기 문신 장유(張維)는 계곡집(谿谷集)에서 은거의 만족함을 노래하며 이 말을 사용했다.
不出戶庭觀宇宙 免敎醉夢送居諸
불출호정관우주 면교취몽송거제
집 밖에 나갈 필요 없이 우주가 이 속에 있는 것을, 취생몽사 면하면서 일월을 마냥 보내노라.
세상일에 초연하며 거리낌 없이 사는 삶을 예찬한 예가 부럽긴 하다. 그래도 술 좋아한다고 한평생을 아무 하는 일 없이 흐리멍덩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하니 좋은 뜻은 아니다.
술에 어지간히 취해 한 실수는 관대하게 봐 주는 사회지만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주폭(酒暴)이라 손가락질 받으니 유의할 일이다.
누가 감히 취생몽사(醉生夢死)를 비웃나? 송(宋)나라 때 주자학(朱子學)의 기틀을 잡은 학자 정호(程灝)는 비록 높은 재주와 밝은 지혜를 가졌다 하더라도 견문이 고착되면 술에 취한 듯 살고 꿈꾸듯 죽어도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고 말했다.
雖高才明智 膠于見聞 醉生夢死 不自覺也.
수고재명지 교우견문 취생몽사 부자각야
하지만 난세에 학문을 배우고 견문을 넓혀봤자 써먹을 데가 없어 되레 괴롭기만 한 고재명지(高才明智)들은 어떻게 하나?
혼탁한 세상에 적응 못하는 자신이 못 나 보이고, 천하를 평정할 수 있는 대계를 품은들 펼칠 기회가 없고, 가슴 속에 감동의 불을 지피는 시문을 써도 그걸 제대로 감상하는 지음(知音)이 없을 때 술이 친구이고 꿈속이 안식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옛날 왕조시대 주류사회에서 배척당한 문인들이 술과 산수를 벗 삼고 꿈을 도피처로 삼았던 것도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거니와, 진짜 취생몽사했다기보다는 그런 자학(自虐)으로 자신을 채찍질하여 억지로나마 시문에 몰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세에는 이름깨나 알려졌지만 당대에는 낙백(落魄)했던 시인치고 술 권하는 노래 즉 장진주(將進酒)나 음주를 예찬하는 작품을 남기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어떤 사람들은 되레 그들의 낙백과 취생몽사가 되레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본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취생몽사 또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백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시인이자 고급관리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에게 천상에서 지상으로 유배를 당한 선인 즉 적선인(敵仙人)이라는 별호를 붙여준 데서 보듯, 이백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사람이었다.
혼탁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던 724년 43세의 나이에 겨우 한림봉공(翰林供奉)이 되었으나 이듬해 환관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사서 사직해야만 했고, 이 곳 저 곳을 떠돌다가 56세가 되어 현종의 아들 영왕의 군대에 몸을 담았다가 반군으로 몰려 유배를 당하는 신세가 됐고, 어찌 어찌 해서 겨우 사면을 받아 풀려난 후에는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762년 62세 때 당도(當塗) 현령이었던 족숙(族叔) 이양빙(李陽冰)에게 병든 몸을 의탁하고 있던 중 술병을 얻어 죽었다고 구당서(舊唐書)는 전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백이 술에 취해 장강(長江)에 비친 달그림자를 건져 올리려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로 그의 죽음을 포장하고 있지만, 술 마시면서 시문 짓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낙으로 삼다가 외롭고 쓸쓸하게 죽은 이백의 속내를 들여다본다면 감히 그런 입에 발린 소리는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여겨는 바, 이백의 장진주(將進酒)라도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답답하고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살았는지 조금이나마 헤아려보는 게 위대한 시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백은 겉으론 낙천적이고 호탕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염세적이고 여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들 또한 수박 겉핥기로 읽으면 낭만적이고 화려하지만 꼼꼼하게 읽으면 그의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던 울분과 탄식과 체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장진주(將進酒) 또한 예외는 아니다.
아래 시에서 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 하늘이 준 나의 재능 반드시 쓰임새 있으리니)은 세상을 잘못 만나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펴 보이지 못하는 답답함의 표출이요, 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환복래; 천금이 흩어져 없어져도 다시 생겨날 것이오)는 술값조차도 궁색한 자신을 달래기 위한 것이고, 맨 마지막 與爾同消萬古愁(여이동소만고수; 그대들과 함께 만고의 시름 삭여보리라)는 자신의 시름을 만고수(萬古愁)에 비유할 정도로 불우한 신세를 한탄한 것으로 보인다.
술 사주는 사람도 없고, 혼자 술을 사마실 돈도 없기에, 값나가는 물건을 술과 바꿔서라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셔보겠다는 이백의 술잔을 누구라서 뿌리칠 수 있으랴. 그나마도 여의치 않자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친구 삼아 술을 마시면서 월하독작(月下獨酌)을 읊기까지 했던 그의 삶을 취생몽사(醉生夢死)라고 비웃을 수 있을까?
시에 취하나 술에 취하나 취하기는 마찬가지, 혼탁한 세상에서 불우한 자신을 달래는 데는 시문 짓기와 술 마시기가 유일한 방도였을 터, 이백의 취생몽사를 동정(同情)한다. 갈수록 사는 게 팍팍해지고 돈과 권력 없이는 술 한잔 같이 할 친구 찾기조차 쉽지 않아서 그런지 이백이 내미는 술잔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다음은 이백(李白)의 시 장진주(將進酒; 술을 권하려 한다) 전문이다.
君不見(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황하지수천상래, 분류도해불복회.
황하의 물은 천상에서 내려와서, 힘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을.
君不見(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
고당명경비백발, 조여청사모성설.
고대광실에 산다해도 거울에 비친 흰 머리를 슬퍼하게 되는 것을, 아침에는 검은 실 같더니 저녁에 이르면 눈(雪)처럼 세어버리는 것을.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인생득의수진환, 막사금준공대월.
인생에서 뜻을 얻었으면 마음껏 즐거워 해야 하거늘, 술잔을 채우지 않고 달빛을 바라볼 수는 없지.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천생아재필유용, 천금산진환복래.
하늘이 나 같은 재목을 낳았으면 반드시 쓰임이 있을테고, 돈은 쓰면 쓰는 대로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라네.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
팽양재우차위락, 회수일음삼백배.
양고기를 삶고 소를 잡는 것도 즐기기 위함이니, 모름지기 한 번을 마시면 삼 백잔은 마셔야지.
岑夫子, 丹丘生, 將進酒, 君莫停
잠부자, 단구생, 장진주, 군막정.
잠훈(岑勳), 원단구(元丹丘)여, 술을 올리려 하니 그대들은 거절하지 마시게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側耳聽.
여군가일곡, 청군위아측이청.
그대들과 함께 하고자, 노래 한 곡을 부르리니 나를 위해 귀를 기울여 들어 주기를 바라네.
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願醒.
종고찬옥부족귀, 단원장취불원성.
연회의 연주음악(鐘鼓)이나 진기한 안주(饌玉)라도 귀할 리 없으니, 오로지 오래 취하여 깨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飮者留其名.
고래성현개적막, 유유음자유기명.
옛날 성인과 현인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거늘, 오로지 술꾼들만 그 이름을 남긴다네.
陳王昔時宴平樂, 鬥酒十千恣歡謔.
진왕석시연평락, 두주십천자환학.
(조조의 아들) 조식(曹植)도 평락관(平樂館)에서 잔치를 할 때, 한 말(斗)에 만냥(萬兩)하는 술로 마음껏 즐겼다지.
主人何爲言少錢, 逕須沽取對君酌.
주인하위언소전, 경수고취대군작.
주인은 어찌하여 돈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는게요? 지금 바로 술을 사서 그대들과 대작을 해야겠소.
五花馬, 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오화마, 천금구, 호아장출환미주, 여이동소만고수.
오색털의 명마(五花馬)와 비싼 가죽옷(千金裘)을 아이를 시켜 술로 바꿔오게 하리니, 그대들과 더불어 취하며 만고의 시름을 녹이리라.
이백(李白)의 시는 활달하고 호방한 풍격(風格)을 자랑한다. 중국의 고전 시가를 사랑하고 좋아했던 에즈라 파운드가 이백의 시 13수를 영역(英譯)하고 분석한 것은 그가 이백의 시의 자유분방한 기질에 크게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백의 시는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은 까닭에 선계(仙界)를 노래하는 유선시(遊仙詩)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問余何事栖碧山 笑而不答心自閑.
문여하사서벽산 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도화유수묘연거 별유천지비인간.
왜 산에 사느냐기에, 그저 빙긋이 웃을 수밖에.
복사꽃 물길 따라 아득히 흘러가고, 여기가 바로 별천지 속세를 떠났도다.
라고 노래한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은 유연하고 한가한 심경을 노래하는데, 스스로 한가한 이 흥취는 그가 세상의 이속(里俗)과 명리를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산중문답 등 얽매임이 적고 초탈적 심사가 드러나는 시들을 읽어 볼 때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을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이란 뜻의 적선(謫仙)이라 칭하고, 허리에 두르고 있던 금구(金龜)를 팔아 흔쾌히 술을 대접했다는 일화는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백의 시에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는 술이다. 그의 시에서 술은 세상의 근심을 잊게 해주는 것으로서 표현된다. 그렇다면 그의 근심은 어디로부터 생겨나는 것일까. 그는 세월이 흐르는 물처럼 신속하고 인생은 봄꿈과도 같이 짧아 허망한 마음의 상태를 억누를 수 없다고 자탄한다.
시 춘일취기언지(春日醉起言志; 봄날 취했다가 일어나서)에서
處世若大夢 胡爲勞其生.
처세약대몽 호위노기생
所以終日醉 頹然臥前楹.
소이종일취 퇴연와전영.
한세상 꿈과 같은 것이어늘, 어이 그 삶을 노고스럽게 하리오?
종일을 취하여, 휘청거리며 앞마루 난간에 기대어 눕도다.
라고 썼듯이.
兩人對酌山花開(양인대작산화개)
一杯一杯復一杯(일배일배복일배)
我醉慾眠卿且去(아취욕면경차거)
明朝有意抱琴來(명조유의포금래)
둘이서 마시노라니 산에는 꽃도 피었어라.
한 잔 한 잔 기울이면 끝없는 한 잔.
취해 나는 이만 자려니 그대는 돌아가시게.
내일 아침 술 생각나거든 거문고 안고 오게나.
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 산중에서 속세 떠나 사는 이와 술을 마시며)이나, 대작할 이 없어 밝은 달, 자신의 몸 그림자와 더불어 만취한 일을 낭만적 시흥으로 풀어낸 월하독작(月下獨酌; 달빛 아래 홀로 술잔 기울이며) 등의 시는 술을 제재로 노래한 이백의 시 가운데 가편으로 손꼽을 수 있다.
위의 시 장진주(將進酒; 술을 권하며)는 이백의 시 가운데서도 명편에 속하지만 어느 때에 창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관리로서의 길을 가고자 했으나 구관(求官)이 성사되지 않아 술병을 끼고 지내던 737년 무렵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오균(吳筠)과 하지장의 도움을 받아 현종의 부름을 받고 한림원(翰林院)에서 궁중 생활을 했으나 만취로 인한 주정과 기행으로 관료사회의 반감을 사 결국 궁을 떠나야 했던 744년 무렵에 창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시가 어느 때에 창작되었든지 간에 정치적인 소신을 펴려 했던 이백의 계획이 좌절된 데서 생겨난 울분의 정서가 깔려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백이 비록 많은 유선시를 짓기도 했지만 그에게도 세속적 야심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구관을 위해 심지어 검술을 익히기도 했고, 안사의 난(안녹산의 난) 당시에는 영왕(永王) 편에 가담해 막료로 기용되었으나 영왕이 숙종에게 패하여 살해되면서 그 또한 역모자로 몰려 죽임을 당할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인생의 무상함을 음주를 통해 달래고자 한다. 황하의 물이 흘러내려 바다에 이르러선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인생의 시간은 지나가면 다시 되돌릴 수 없으며, 그 급히 지나감은 불과 아침과 저녁 사이만큼 순식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번에 삼백 잔(一飮三百杯)이라는 표현은 후한의 대학자 정현(鄭玄)이 전별(餞別)을 받는 자리에서 삼백여 명으로부터 일일이 술잔을 다 받아냈다는 옛일에서 따온 것이고, 한 말에 만 전(斗酒十千)이라는 표현은 조식(曹植)의 명도편(名都篇)의 돌아와서 평락관에서 연회를 베푸니 맛있는 술의 값이 한 말에 만 냥이더라(歸來宴平樂 美酒斗十千)라고 한 것을 차용한 것이다.
한 번 술을 마실 적에 삼백 잔을 들이켜는가 하면 만전짜리 술을 주고 받으며 기꺼이 취한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은 그만큼 인생사의 덧없음과 그로 인한 슬픔이 억눌러 감춰 둘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난다는 속마음을 슬며시 담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자신의 지인인 잠부자와 단구생에게 술을 권하면서 다섯 가지 빛깔의 털을 지닌 아름다운 말인 오화마(五花馬)와 여우가죽으로 만든 값비싼 옷인 천금구(千金裘)를 내다 팔아 질탕한 음주를 즐기려 하는 앞뒤 사정과 까닭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겠다.
▶ 醉(취)는 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酔(취)의 본자(本字), 酻(취)는 와자(僞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닭유(酉; 술, 닭)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없어질 때까지 하다의 뜻을 가지는 卒(졸, 취)로 이루어졌다. 醉(취)는 술을 없어질 때까지 마셔 취하다의 뜻으로 취하다, 취하게 하다, 술에 담그다, 빠지다, 지나치게 좋아하다, 탐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술 취할 정(酊), 술 취할 명(酩),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깰 성(醒)이다. 용례로는 술에 취한 사람을 취객(醉客), 술에 취하여 일어나는 흥취를 취흥(醉興), 술에 취해 얼근한 기운을 취기(醉氣), 술이 취하여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를 취가(醉歌), 술에 취한 동안을 취리(醉裏), 술 취한 노인을 취옹(醉翁), 술 취한 사람의 태도를 취태(醉態), 술이 취해 누움을 취와(醉臥), 경사스러운 일에 도취함을 취서(醉瑞), 술에 취해 함부로 하는 말을 취담(醉談), 술이 취하여 잠을 잠을 취면(醉眠), 술이 취해 춤을 춤 또는 그 춤을 취무(醉舞), 술이 취하여 쓴 글씨를 취묵(醉墨),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취보(醉步), 술에 취한 기색을 취색(醉色), 술이 취한 얼굴을 취안(醉顔), 취중에 마구 하는 말을 취어(醉語), 술에 잔뜩 취한 친구를 취우(醉友), 술에 취하여 이리저리 비틀거림을 취보만산(醉步蹣跚), 술에 취한 듯 살다가 꿈을 꾸듯이 죽는다는 취생몽사(醉生夢死), 술에 취하여 눈이 흐려 앞이 똑똑히 보이지 않는 상태를 취안몽롱(醉眼朦朧) 등에 쓰인다.
▶ 生(생)은 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의 뜻으로 만들어졌다. 生(생)은 생명이나 삶 또는 어른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로 나다, 낳다, 살다, 기르다, 서투르다, 싱싱하다, 만들다, 백성, 선비, 자기의 겸칭, 사람, 날(익지 않음), 삶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살아 움직임을 생동(生動), 목숨을 생명(生命),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 말리거나 얼리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生太), 자기가 난 집을 생가(生家), 생물의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생활 상태를 생태(生態),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사로 잡음을 생포(生捕), 태어남과 죽음을 생사(生死),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생업(生業),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을 생기(生氣),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생모(生母),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맑은 물을 생수(生水),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음을 생매장(生埋葬), 생명이 있는 물체를 생명체(生命體),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을 생고집(生固執), 날것과 찬 것을 생랭지물(生冷之物),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생구불망(生口不網),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생기사귀(生寄死歸), 삶과 죽음, 괴로움과 즐거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생사고락(生死苦樂),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생살여탈(生殺與奪),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 부터 안다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등에 쓰인다.
▶ 夢(몽)은 형성문자로 夣(몽), 梦(몽)은 통자(通字), 梦(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저녁석(夕; 저녁)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몽(어둡다의 뜻)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본뜻은 저녁이 되어 시계(視界)가 침침하여 뚜렷이 보이지 않아 밤이 어둡다는 뜻과 꿈의 뜻으로도 쓰인다. 夢(몽)은 꿈, 공상, 꿈꾸다, 혼미하다, 흐리멍덩하다, 똑똑하지 않다, 마음이 어지러워지다, 뒤숭숭하다, 사리에 어둡다, 흐릿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두울 매(昧)이다. 용례로는 잠을 자며 꿈을 꾼다는 몽매(夢寐), 자다가 가위에 눌림을 몽염(夢魘), 꿈자리나 꿈에 나타나는 길흉의 징조를 몽조(夢兆), 꿈속의 생각이나 꿈 같은 헛된 생각을 몽상(夢想), 꿈에 여자를 가까이 하여 정액을 쌈을 몽정(夢精), 꿈 또는 꿈속을 몽경(夢境), 잠을 자는 중에 성적인 쾌감을 얻는 꿈을 꾸어 정액을 내는 일을 몽설(夢泄), 꿈 속에까지 생각한다는 몽사(夢思), 꿈과 점 또는 꿈으로 길흉화복을 점침을 몽복(夢卜), 꿈에 나타난 일을 몽사(夢事), 헛되이 살다가 죽음을 몽사(夢死), 잠을 자다가 성적인 쾌감을 얻는 꿈을 꾸면서 정액을 쌈을 몽색(夢色), 꿈처럼 허망한 세상을 몽세(夢世), 꿈에도 생각하지 못함을 몽상부도(夢想不到), 천만 뜻밖의 일을 몽외지사(夢外之事),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동안이라는 몽매지간(夢寐之間), 꿈속에 꿈이야기를 하듯이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함을 몽중몽설(夢中夢說), 꿈속에서 꿈 이야기를 한다는 몽중설몽(夢中說夢) 등에 쓰인다.
▶ 死(사)는 회의문자로 죽을사변(歹=歺; 뼈, 죽음)部는 뼈가 산산이 흩어지는 일을 나타낸다. 즉 사람이 죽어 영혼과 육체의 생명력이 흩어져 목숨이 다하여 앙상한 뼈만 남은 상태로 변하니(匕) 죽음을 뜻한다. 死(사)의 오른쪽을 본디는 人(인)이라 썼는데 나중에 匕(비)라 쓴 것은 化(화)는 변하다로 뼈로 변화하다란 기분을 나타내기 위하여서다. 死(사)는 죽는 일 또는 죽음의 뜻으로 죽다, 생기가 없다, 활동력이 없다, 죽이다, 다하다, 목숨을 걸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살 활(活), 있을 유(有), 날 생(生)이다. 용례로는 죽음을 사망(死亡), 죽음과 부상을 사상(死傷), 죽기를 무릅쓰고 쓰는 힘을 사력(死力), 죽어서 이별함을 사별(死別), 수형자의 생명을 끊는 형벌을 사형(死刑), 죽음을 무릅쓰고 지킴을 사수(死守), 죽어도 한이 없다는 사무여한(死無餘恨), 죽을 때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사부전목(死不顚目), 죽을 고비에서 살길을 찾는다는 사중구활(死中求活),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차불피(死且不避), 죽더라도 썩지 않는다는 사차불후(死且不朽),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라는 사생지지(死生之地),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는 사회부연(死灰復燃), 이미 때가 지난 후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죽고 사는 것을 가리지 않고 끝장을 내려고 덤벼든다는 사생결단(死生決斷), 죽어서나 살아서나 늘 함께 있다는 사생동거(死生同居), 죽어야 그친다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이후이(死而後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