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삐딱함과 당당함으로 빛나는 어린이의 매일
눈부신 성장의 세계로 초대하는 동시집
간결하고 명쾌한 화법으로 어린이를 향한 애정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김은영 시인의 신작 동시집이 출간되었다. 오랫동안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일해 온 시인은 어린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발견의 순간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목소리를 실감 나게 담아낸다. 시인이 어린이와 자연 곁에서 얻은 생명력, 활동력이 자연스레 담긴 작품들은 여린 존재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생기로 가득함을 일깨우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총 56편 수록.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아주 작은 아이가
마법 아이 | 우리 집에 놀러 갈래? | 귀의 하소연 | 배려 | 생쥐와 야옹이 | 해의 눈꺼풀 | 까만 알약 | 프랑스 시인과 나 |
엘리베이터를 탄 반려견 | 바람 산책 | 무한대 | 잣나무 숲지기
제2부 아이들 수만큼 시가 되었다
가족 독서 | 하늘 액자 | 그릇 | 유별난 기도 | 쓸쓸한 귀 | 동생과 노는 방법 | 가을 열한 개 | 말하는 손 | 구름 장날 | 마네킹 다리 |
거울의 방 | 비움과 채움
제3부 이슬을 털어 내는 중
옹이와 냥이 | 시인과 거미 | 겨울 까마귀 | 가을걷이 노래 | 뱀과 개구리와 나 | 진돌이 | 지붕 위로 올라간 어미 소 | 장마철 소동 |
맨발 손님 | 가자미와 문어 | 방귀버섯 | 고라니와 멧돼지
제4부 꽃 아닌 날 없다
봄나들이 | 빗방울 호텔 | 눈사람 생일 | 꽃이 지면 | 거미줄 전시장 | 하늘 모닥불 | 밤꽃 | 죽순 | 날개를 단 거미줄 | 고라니 똥 |
데이트 신청 | 너는 나에게
제5부 난 그냥 그래
전학 온 아이에게 | 어린 과학자 | 배가 아프면 | 소가 묻소 | 돼지들의 소원 | 탄소와 미세 먼지 | 전쟁터 학교 | 층간 소음
해설|‘생활’의 발견, 동시의 재발견_김재복
저자 소개
글: 김은영
1964년에 전북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전주 교육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동시 「귤」로 등단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동시집 『빼앗긴 이름 한 글자』, 『김치를 싫어하는 아이들아』, 『아니, 방귀 뽕나무』, 『ㄹ 받침 한 글자』, 『선생님을 이긴 날』, 『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 『우주에서 읽는 시』를 펴냈으며, 제11회 서덕출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옮긴 책으로는 『세상에 많고 많은 초록들』, 『고마워요 잘 자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작은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동시를 쓰고 있습니다.
그림: 양양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합니다. 그림책 『계절의 냄새』와 『너의 숲으로』, 그림 에세이 『서울, 저녁의 가장자리에는』을 쓰고 그렸고, 『갈림길』, 『우리 지금, 썸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 등 많은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출판사 리뷰
“쿵쿵 울릴 때면 손뼉을 쳐 주세요”
어깨 꼿꼿이 펴고 달려 나갈 어린이의 내일을 그리는 동시
30년이 넘도록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써 온 김은영 시인이 새 동시집 『우리 집에 놀러 갈래?』를 펴냈다. 오랫동안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단을 지키며 어린이 가까이에서 지낸 시인은 어린이의 생생하고 활기 넘치는 목소리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이번 동시집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차고 산뜻하다.
어느 날/아주 작은 아이가/떨리는 손을 꼭 잡고/낯선 집으로 찾아갔어요//바로 그날,/아이는 마법을 펼쳤어요//엄마를 낳고/아빠를 낳고/할머니도 낳고/할아버지도 낳았죠//그뿐만이 아니었어요/이튿날엔/삼촌도 낳고/고모도 낳고/이모도 낳은걸요 ―「마법 아이」 전문
한 생명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존재가 탄생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시작됨을 알리며 시인이 그려 내는 어린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표제작 「우리 집에 놀러 갈래?」의 어린이는 친구의 집에 “게임기” “다락방” “햄스터”가 있다는 말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다가, “우리 집에 아무도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단번에 “그래, 가자”라고 답한다. 어린이들에게도 온전한 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친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프랑스 시인 장 콕토가 시 「내 귀」(Mon Oreille)에서 “내 귀는 소라 껍데기/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고 쓴 것을 빌려 “대한민국 학생인 나”는 “와이파이를 그리워한다”고 재치 있게 표현한 시도 눈길을 끌며(「프랑스 시인과 나」), 부모님에게 “두 분은 너무 말이 없”으니 “바깥에 나가서” 같이 시간을 보내라며 은근슬쩍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익살도 감상을 풍성하게 한다(「가족 독서」). 윗집에 사는 아이가 쿵쿵대며 걸을 때 소음이라고 화내지 말고 아이가 “지구를//두 발로 튕기고 있”는 것을 응원해 주자며 이해를 청하는 마지막 수록작까지(「층간 소음」) 어린이가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자기만의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기를 응원하는 작품이 가득하다.
존재의 연약함을 빈틈없이 포착하는
한없이 순하고 무한히 다정한 시선
김은영 시인은 어떠한 존재가 연약해지는 순간을 면밀히 포착한다. 옷 가게 앞을 지나다 마네킹을 보면서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떠올리는가 하면(「마네킹 다리」), 폭우로 삶의 터전과 소중한 가족을 잃은 “어미 소 눈망울이/빗물에 젖어 그렁그렁하다”고 말하며 소의 슬픔에 공감한다(「지붕 위로 올라간 어미 소」). 시인의 동시 세계에서는 여리고 힘없는 존재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제 나름대로 희망을 발견하며 생(生)을 긍정하는 장면도 눈에 띈다.
붉고 까만 칠성무당벌레님!/어느 꽃밭 아파트에 사세요?//오늘은 햇살도 좋으니/고추꽃밭에서 나랑 데이트해요//알록달록 광대노린재님!/나는 까마중 단지에 살아요//고추꽃밭은 이른 아침 농약을 쳤으니/까마중 잎사귀 공원으로 오세요. ―「데이트 신청」 전문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 속에서 도드라지는 시어인 ‘농약’은 곤충들에게는 곧 죽음을 의미하지만 두 주인공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삶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음에도 사랑을 지키려는 이들의 모습이 눈물겨우면서도 치열하다. 「가을걷이 노래」도 농부의 작물을 먹으려는 참새와 굼벵이의 당당한 태도가 빛나는 작품이다. 자칫 포식자인 인간에게 하루의 식량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참새가 “묵은쌀”을 줄 테니 “벼 이삭 까먹지 마라”는 농부의 말에 “싫어요, 싫어요/찰진 햇벼는/우리가 먹고/푸슬푸슬 묵은쌀은/농부님이 드세요”라고 외치는 모습이 야무지다. 동식물을 비롯해 연약해 보이는 존재들의 세찬 생명력을 정중하고도 다정한 화법으로 작품에 담아내는 시인의 눈길이 믿음직스럽다.
흙 속에서 향긋한 봄 냉이 캐내듯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를 발견하는 힘
김은영 시인은 학생들과 함께 학교 텃밭을 가꾼다. 해마다 사계의 흐름을 어린이들과 차분히 지켜보며 행복해하는 시인은 늘 똑같아 보이는 풍경에서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어린이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시인이 지켜본 어린이의 ‘발견 레이더’는 자연의 변화에 국한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확장된다.
친구들을 소개했다//쟨 탁! 치면 탱탱볼이야//쟨 건드리면 땅벌이야//쟨 엉뚱 순둥이야//쟨 까칠 똑똑이야//쟨 괜찮은데 조금 아파//넌?//난 그냥 그래 ―「전학 온 아이에게」 전문
타인을 알아봐 주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바로 스스로를 알아봐 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봐 주었을 때 둘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늘 다른 친구를 살펴보기만 했던” ‘나’에게 전학 온 친구가 ‘나’의 존재를 물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며 “일렁이는 ‘나’의 마음을 시인은 소중히 포착”한다(김재복, 해설 「‘생활’의 발견, 동시의 재발견」). 작품을 읽는 독자 역시 그제야 화자가 소개하는 반 친구들이 아니라 친구 한 명 한 명을 짚어 소개하는 화자의 세심함을 환기할 수 있다. 시인도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세상 곳곳에서 이야깃거리를 캐낸다. “이 세상 모든 곳에” 사는 바람(「바람 산책」), “함께 노는 게 재미있는 척”하면 할수록 더 행복해지는 동생의 표정(「동생과 노는 법」), 즐거운 장날에 내린 소낙비를 보고 구름이 “장 구경 나왔다”며 “날 가문디 고마운 단비”라고 이름 붙이는 마음까지(「구름 장날」), 찰나의 순간을 아름답게 그려 낸다. 시인은 봄이 오면 냉이를 캔다. 사람들의 눈에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시인에게 똑같은 냉이는 하나도 없을 터,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흙을 털어 낸 손바닥에 남은 향긋함이 바로 30여 년 동안 시인이 동시를 쓴 원천일지 모른다. 『우리 집에 놀러 갈래?』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도 시인이 품은 향긋함이 풍기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