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의 ‘회한 悔恨’
늙음 입구에 서기까지
남달리 즐거웠던 나의 젊은 시절
그리고 나에게 자신의 떠남을 숨겼던 나의 젊은 시절을
나는 슬퍼한다.
그 시절은 걸어서 가버린 것도
말을 타고 가버린 것도 아니니 도대체 어떻게 가버렸단 말인가?
결국 느닷없이 날아가버린 채
나에게 남겨준 것 아무것도 없어라.
그 시절은 가버리고
나는
세금도 연금도 가진 것 하나 없이
슬프고 막막하여
검은 오디 열매보다 더 암담한 모습으로
이곳에 머물러 있다.
사실 말하지만, 친척 가운데 가장 하찮은 자가
내 수중에 몇 푼의 돈이 없다 하여
나를 모른 채 하기 급급하니.
아, 한심하도다 미친듯한 내 젊은 시절
배움에 열중하고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였다면
가질 수 있었을 것이건만,
허나 어떠했는가! 마치 악동처럼
나는 학교르 등지고 떠났으니
이 글을 쓰면서도
내 가슴은 찢어질 것만 같아라.
그 옛날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그토록 노래 잘 하고, 말 잘 하며
말과 행동이 그토록 유쾌했던
우아하고, 상냥한 친구들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몇 몇은 죽어 차디차게 굳어버렸으니
그들에게 남은 것 이제는 아무 것도 없어라.
천국의 안식이 그들과 함께 하기를,
그리고 살아있는 자에게는 신의 가호가 있기를!
또 몇몇은
다행히도 대 영주나 기사가 되기도 하였으니
또 몇몇은 헐벗은 채 걸식하며
창문을 통해서나 음식을 구경할 뿐이고.
또 몇몇은
굴 따는 사람처럼 각반 차고 장화 신고
셀레스탱이나 샤르트르 수도원에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 신분 다양도 하지 않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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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문학은 대체로 12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고 말한다.
12세기의 봉건시대가 전성기를 지나면서 수많은 궁정시가 나타났고, 목가나 연애시 그리고 무훈시가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인 무훈시가 에스파니아의 이슬랆 세력과 싸움을 다룬 ‘로랑의 노래’가 대표적인 무훈시이며, 유명하다.
후세의 작가들은 이 무훈시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13세기에 이르러서도 시는 주로 귀족 계급의 전유무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서민문학으로 동물설화 등이 나타난다.
15세기에 이르면 궁정을 중심으로 형식적 기교에 흐르는 서정시인이 나타난다.
비용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뛰어나 서정시인이다. 그는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 르네상스를 여는 역할을 한다.
유럽의 중세 말기에 백년 전쟁이 끝날 즈음의 혼란한 파리에서 태어났다. 백년 전쟁으로 혼란과 비참한 프랑스 현실을 노래했다. 사회가 혼란하면, 시인 자신도 그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
그의 생애 자체가 파란만장하였다. 절도와 감옥, 방랑과 굶주림, 굶주림,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10년 간의 해외추방으로 감형받기도 하였다. 이 형을 받은 1463년 이후에는 그의 행방이 묘연하여 알 수가 없다. 자신을 노래한 시들도 우울하다. 회한도 그 중의 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