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1910년 8월 22일 실질적인 한일병합조약이 억지로 체결된 날로 그야말로 국치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오늘 한국계 일본 고등학교가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야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과 일본 전역서 이 경기를 방송을 통해 지켜보고 있던 수많은 일본인들앞에 한국어로 된 교가가 너무도 자랑스럽게 울려퍼진 것입니다. 한국계 고등학교인 교토국제고는 오늘 일본 야구의 핵심이라는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아시의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도쿄 간토다이이치고와 9회까지 0대 0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대접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연장전에서 극적인 2대 1 승리를 거두고 일본 고교야구를 제패한 것입니다.
한국계 교토국제고가 일본고교야구 선수권대회인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기적이며 이른바 다윗이 골리앗을 제압한 것으로 받아드려지고 있습니다. 전교생 2,500명에 야구선수만 100여명에 달하는 일본 수도 도쿄의 명문 고교를 전교생 161명에 야구선수 61명에 불과한 교토국제고가 승리한 것은 일본 야구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일본 고시엔 구장에서는 경기후 교토국제고의 교가가 울려퍼졌습니다. 구장에 운집한 수많은 관중과 일본 전역에서 결승전을 시청하고 있는 일본인들앞에서 당당하게 한국어로 된 교가가 울려퍼졌습니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옛 일본땅)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교토국제고는 학생수에서 말해주듯 정말 작은 학교입니다. 변변한 대중교통도 없어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에서 30분정도 걸어가야 하는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학교 가는 것 자체가 극기훈련이라고 교사들과 학생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이 작아 야구 선수들이 홈런을 치면 그냥 담장을 넘어갑니다. 간혹 이웃의 큰 운동장을 찾아 장거리 타격 훈련을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그래서 단타위주의 타법을 주로 연마합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 교토국제고 선수들을 더욱 단련시켰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운동장이 작아 힘차게 스윙을 하지 못하지만 정확도에서는 정말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들로 만든 것입니다.
교토국제고는 재정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야구 선수들에게 연습할 공도 제대로 제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터진 야구공을 기워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한국의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 선수단이 일본 교토국제고를 방문했을때 열악한 훈련과정을 목격했습니다. 기아타이거즈 구단은 자신들의 선수들이 사용하고 남은 공을 잘 보관했다가 일년에 한 번씩 교토국제고에 전달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런 고교가 일본의 자긍심이자 일본이 지키고자하는 마지막 자존심인 고시엔대회에서 오로지 자신들의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했다는 데에 너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일각에서는 학교 재학생 161명 가운데 거의 80%가 일본인인데 상당수가 한국계가 일본으로 귀화한 집안의 자손이다라며 비하하는 언급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물론 피치못한 사정으로 일본으로 귀화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가 일본계 학생이며 한국계 학교가 좋아 자진해서 지원해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한국계면 어떻고 일본계면 어떻습니까. 한국이 좋고 한국어로 된 교가를 매일 부르는 그 자체가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것도 일본 땅에서 말입니다. 국적이 한국인이고 한국에 살면서 일본의 극우들의 주장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떠드는 친일파 나아가 숭일파에 비하면 너무도 멋지고 철든 일본 학생들 아닙니까.
교토국제고에서는 한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어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남학생들은 주로 야구를 하기 위해 이 학교를 지원했고 여학생들은 K팝과 K 드라마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입학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학생들 상당수는 졸업후 한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해 4월 있은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한 학생 10여명 모두가 합격증을 획득했을 정도로 한국에대해 진심인 학생들입니다.
이들이 한국계인지 일본계인지 학생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학교내에서 한국어로도 일본어로도 때로는 영어로 소통을 하기에 전혀 어색하거나 민족적 갈등을 겪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국제고등학교입니다. 학교내에서 독도가 일본땅이냐 여부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은 한국이 좋아 그리고 한국어가 좋아 교토국제고를 택한 것 뿐입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공영방송 NHK를 통해 교토국제고의 활약상이 전국에 생중계되었습니다. 본선에서 벌써 여러번 경기를 치뤘기에 한국어로 된 교가가 여러차례 방송을 탔을 것입니다. 한국어로 된 자막이 선명하게 일본 NHK에 실려 전국에 퍼져나갔습니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어떻게 일본땅에서 한국어로된 교가가 연주될 수 있느냐며 온갖 난리를 치지만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우승후 교토국제고선수와 응원단 그리고 재일 교포들은 한마음으로 눈물속에 교가를 불렀습니다. 마치 지금부터 114년전인 1910년 한일강제병합의 역사적 울분을 딛고 일어서려는 듯 그 웅장함이 고시엔구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제에게 강제로 끌려와 모진 세월을 살았던 한국계 후손들은 오랫만에 조국의 말로 된 교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한때 나라를 잃은 그 서러움과 한을 씻어내려는 듯이 말입니다. 일본계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가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즐거움에 활짝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오늘은 일본 야구 역사와 한국의 역사에서도 기록될 날입니다. 교토국제고가 일본을 제패하고 우승한 날이 바로 114년전 한반도가 일제에게 강제로 병합당한 바로 그날 전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즘 한국에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친일파 득세속에 답답하고 피곤했던 심신을 깔끔하게 진무해주는 그런 청량제같은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받고 한국에서 나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일본 극우세력과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는 친일파 세력에게 일본 교토국제고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자신들은 한국의 정신과 한국의 문화가 좋아 자진해서 한국계 고등학교를 찾아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지만 한국에 존재하는 친일파들은 왜 아직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지 못하는 등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요즘 일본을 찾는 한국인들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물론 일본의 물가가 싸니 그럴수도 있다고 하지만 제발 일본 가서 엉뚱한데서 헛돈 낭비하지 말고 교토에 있는 교토국제고를 찾아서 야구선수들에게 야구공을 하나씩 선물하고 오면 어떨까 합니다. 일본 극우들의 쉼없는 괴롭힘에 시달리는 교장선생님과 교사들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면 참 좋을 듯 합니다. 또 어떤 환경속에 어떤 훈련을 하기에 그 대단하다는 일본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는지 야구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에게도 격려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며 없는 돈이지만 필히 일본을 찾아 교토국제고에 야구공 한세트를 선물로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오늘은 역시 무척 덥지만 마음속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교토국제고에 힘찬 박수와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2024년 8월 23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