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흡족지 않아하는 부인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changss0312@naver.com
내게 상담을 받는 여성은 일찍이 어머니가 남편과 헤어지는 바람에 어렵게 자란 사람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두 딸을 모두 결혼시키고 돌아가신 데다가 언니도 외국으로 이민을 가버려, 그녀는 그야말로 외로움을 많이 탔다.
처음에 내게 상담을 받으러 왔던 목적은 어린아이의 반응에 대해 어미로써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문제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원만히 이루어졌어도 그녀는 나를 계속 만났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친정어머니 또는 언니와 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듯했다. 나에게 그렇게 심적으로 의지하는 그녀인지라 나도 나름의 애정을 쏟았다.
어느덧 40대 중반의 부인이 되었는데, 남편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덕분에 비교적 윤택하게 살았다. 두 아들도 사춘기를 별 탈 없이 지내는 듯해 그런대로 안정되어 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 상담을 받으러 와서 그녀는 자기에게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며 말을 꺼냈다. 남편이 자기를 안아주거나 어깨에 손을 얹거나 하는 식으로 만져주는 건 좋지만, 부부관계를 하는 것은 왠지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잠자리에서 애무하면 자기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팔딱팔딱 일어나곤 했더니, 남편이 몹시 싫어하더라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딴청을 피우는 것도 어쩌다 한두 번이지, 번번이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닌 거 같아 애써 부부관계를 하긴 한단다. 하지만 썩 내키지 않아 마음이 편치 못하다며,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다. 즉 왜 그런 심리 상태가 되는 것이고, 또 어떻게 해야 남편을 자연스럽게 거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른 게 아닌 부부간의 성관계를 다루기가 나로서는 난감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그런 상태가 무슨 심리에서 비롯한 것이냐고 묻는 것이고, 남편과의 인간관계를 다루는 것이므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는 남편에게 발기나 조루와 같은 징후가 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여자에게 만족감을 주지도 못하면서 질질 끌며 지치게 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하며, 남편의 성기능은 아주 원활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여자에게 있는 것인가 하여, 그녀에게 부부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유액 분비에는 문제가 없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거기에도 문제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신체적인 결함이 아니라면,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나는 그녀가 혹시 남편에게 뭔가 서운한 것이 있나 하여 다각적으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고 뭔가를 찾아내야 하는데,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한 나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말했다. 마침, 상담을 마칠 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다음으로 미루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간 다음, 나는 철쭉 님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문제가 있으면 부부간에 안아주는 것은 좋아도 부부관계는 별로로 여기게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철쭉 님은 그녀가 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 같다고 대꾸하였다. 대체로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성관계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단다. 그 부인이 남편의 애무는 그런대로 반긴다는 것은 남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인 듯하다고 했다. 즉, 현실적으로 남편에게 고마워하는 게 있으므로 남편이 안아주는 정도는 유지하는 거 같단다.
이런 설명에 나는 더욱 아리송했다. 그동안 그녀가 남편에게 담뿍 의지하며 잘 지내는 줄 알았지, 그렇게 틈새가 벌어져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다음부터 나는 그녀가 혹시 다른 사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으로 살폈다. 만약 그렇다면 그녀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조기 진압을 해주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잠정적으로 그녀가 남편을 성에 차지 않아 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녀가 어떤 면에서 남편을 마땅찮아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자, 이런저런 것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딱하게도 그 정도의 허물이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점들에 불과하다고 봤다. 옹색하게 자랐던 그녀에게도 자잘한 약점들이 숱하게 많은데, 남편의 부족한 점을 그러려니 하고 퉁 치지 못하고 그토록 비위에 맞지 않아 한다니….
다시금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연민을 가지고 너그럽게 봐주면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테고, 넘기지 못하고 비평적으로 보면 관계는 형식적으로 되거나 까칠해지게 마련이지 않은가.
어느 시점부터 나는 그녀에게 속을 넓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육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을 다 마치면 퇴장하고 말 우리들인데, 뭘 그리 날을 세우며, 호강에 초 친다는 식으로 고독을 자초하느냐며 일침을 놓기도 했다. 동시에 그녀가 중시하는 본인의 고급스러운 감각, 즉, 심미안적인 안목이나 기호도 별것 아니라며 제발 무던하게 살라고 간청하듯 말하곤 했다.
그러자 어느 날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이 너무 펑퍼짐하다고 느꼈는지, 왜 그리 할망구 같은 말을 자꾸 하느냐고 했다. 나는 그런 할망구라는 말에 박장대소하며, 내가 나이가 몇인데 할망구가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그러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긴 하네요.’ 하며 큰소리로 따라 웃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상담 도중 서로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서로 얼마나 웃었는지, 그냥 환하고 편했다.
이런 상담을 하며 다시금 느끼는 건 각 개인이 지닌 기호, 취향, 감각 등이 별것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가 그동안 어떤 업(業)을 지었느냐에 따라 쌓아진 결과일 따름이지,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는 것이다.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그냥 주어진 삶을 열심히 너그럽게 살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서로가 더 돈독해질 테니까 말이다.
첫댓글 도토리 키재기????
부디 좋은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도토리 키 재기라고 한 것은 잘나 봐야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저도 철쭉 님의 의견에 공감이 가는군요.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데 그러고 싶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