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명박 전 시장이 한반도 대운하건설의 일환으로 독일 대운하 탐사에 돌입했다. ⓒ2006 CNBNEWS | <프랑크푸르트=김정민기자>유럽 지역을 탐사중인 이명박 전 시장은 24일 독일의 뉘렌베르크 지역의 운하를 탐사, 밤베르크~켈하임 구간을 돌아보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 마스터플랜 완성에 들어갔다.
이 구간은 북해 항구 로테르담에서 흑해의 항구 콘스탄자까지 총길이 3,500km의 대륙을 관통하는 RMD (Rhein-Main- Donau) 운하 중 가장 어려운 공사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독일에서도 기술적 어려움, 생태환경의 파괴 등으로 찬반 논쟁이 치열했던 곳이다.
뉘렌베르크 북부의 마인강 유역은 물이 모자라 환경 오염이 심각한 수준에 있었던 반면, 남부의 도나우 강 유역은 알프스에서 유입된 풍부한 수자원이 있었던 바, 이 지역 운하 건설로 환경문제 해결과 부족한 물을 해갈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또한 라인-마인-도나우 회사는 건설비용의 14%를 조경에 투입함으로써, 쥬라 고지 일대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됐다.
‘한반도 대운하 마스터플랜’실현 독일서 대장정 돌입
이 전 시장은 “그 당시 독일 국민에게도 불가능하게 보였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현장을 보면서 서로 뜻을 합친다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며 “한반도 대운하도 갈등과 분열을 넘어 조화와 합의를 도출한다면 후손들에게 뉘른베르크와 같은 자랑스런 명소를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전 시장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운하는 건설 과정 상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갈등을 해소하며 지역경제를 살리는 등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며 “오염된 하천이 준설되어 수질이 개선되고, 친환경, 친인간적으로 정비된 뉘른베르크 운하가 한반도대운하와 유사한 자연환경 및 사회적 여건을 가지고 있어 배울 점이 많았다”고 밝혔다.
RMD 운하는 물이 부족한 낙동강과 물이 풍부한 한강 수계를 연결함으로써 물 부족, 환경 오염, 홍수 피해 등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선행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은 “낙동강은 한강처럼 종합개발계획에 의한 수질개선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종합적인 환경생태개선을 위한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라인 ·마인강도 운하건설을 통해 하천이 정비되고 수질이 개선됐으며, 낙후된 내륙지역의 발전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즉 자연을 그대로 방치한다고 해서 환경이나 생태계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인 개선을 통해 인간의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으며, 내륙운하야말로 환경과 경제 문제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계천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국 시민들의 이해와 협조로 지금의 청계천이 만들어 졌듯이, 한반도 운하는 단절된 우리사회를 연결하고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이 전 시장은 강조했다.
뉘렌베르크에 이어 이 전 시장은 운하주변의 가장 큰 내항인 뒤스부르크 지역을 탐사했다. RMD운하의 북부지역에 위치한 뒤스부르크는 운하개통으로 내륙지역에 산업단지들과 물류 중심지가 들어설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
▲ 이 전 시장이 구상하는 '한반도 대운하'는 낙동강-남한강을 연결한후 대동강~압록강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2006 CNBNEWS | 한반도대운하, 갈등·분열 넘어 조화·합의도출
뒤스부르크 내항은 뒤스부르크를 시작으로 엣센·보쿰·도르트문트를 잇는 거대한 중공업지역이 주변의 중소도시들과 수로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특히 뒤스부르크 도시에는 라인강과 루르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유럽 최대의 하항(河港)이 개발되어 200개 이상의 다양한 세계적 물류회사들이 입주해 있으며 매년 4,200만 톤에 이르는 물류를 처리하고 있다.
내항에서 처리되는 2년간의 컨테이너를 이을 경우 중국의 만리장성(6,350km)을 훨씬 능가하는 막대한 수송능력을 과시하며, 그동안 뒤스부르크 항구 만으로도 1만 7천여개의 일자리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매년 3,0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 전 시장은 “RMD 운하를 탐사하면서 국토균형발전, 친환경운하건설, 건전한관광레저 문화 창출 등 한반도 곳곳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또 “뒤스부르크가 내륙 깊숙이 위치한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물길의 중심에 위치한 내항의 역할을 함으로써 루르공업단지가 유럽최대 규모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며, “우리나라도 내륙지역에 내항을 개발하면 일본·북한·중국 동북3성, 러시아로 이어지는 10억 인구 시장의 물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갖추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 날 탐사를 마친 이 전 시장은 “분쟁으로 들끓었던 유럽이 운하를 통하여 상호공존, 균형발전의 평화 체계를 확립한 역사를 가지고 있듯이 한반도 대운하가 남북, 동북아의 평화 메시지를 운반하는 상호 교류의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 베를린 시내를 가로지르는 Urbanhafen 강줄기 운하시설이 잘 정비되어 거대한 배들이 운항되고 있었다. ⓒ2006 CNBNEWS |
운하건설은 중세부터 시작된 것으로, 793년 신성로마제국의 샤를르마뉴 대제가 8,000명의 농노를 동원 수로를 파기 시작해 알트뮐의 트로이흐트링엔과 레차트의 바이센부르크를 연결하려는 ‘포사 카롤리나’가 마인-도나우 운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만 오면 토사가 쌓이고 제방이 무너져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연못이나 제방이 당시 운하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운하사업이 재개된 것은 1000년이 지난 19세기로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1세가 기술자를 동원, 에어랑엔에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1845년 ‘루드비히 운하’가 완성됐다.
이 운하는 경제성에서 당시 건설되기 시작한 철도에 밀렸을 뿐 아니라 마인강과 도나우강을 연결하는데 필요한 수백개의 갑문을 설치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업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그후 1921년에 다시 정치가와 사업가들이 라인-마인-도나우사를 설립하고 운하사업에 착수, 전력을 생산·판매해서 얻은 수입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사업을 지속하지는 못했다.
다시 본격적으로 운하건설이 시작된 것은 40년이 지난 1961년으로, 경제부흥으로 자금이 풍부해진 독일 연방정부는 먼저 밤베르크와 뉘른베르크를 연결하는 ‘유럽운하’를 건설하기 시작, 10년만에 밤베르크와 뉘른베르크 사이 72Km의 운하를 완성했다.
1972년 사업은 이제 도나우강쪽의 알트뮐로 확장되었으나 1976년 환경보호론자들의 반대운동이 일어, 1982년에는 운하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1983년 CDU/CSU정부는 자연친화적인 운하를 건설한다는 약속과 함께 사업을 재개, 10년 후인 1992년 뉘른베르크와 켈하임은 운하로 연결되어, 1200년만에 운하가 완성됐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