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ㅇ배를 마치고 한 아이가 내게 오더니 오늘 청첩장을 돌리는데 돌리기 전에 기도해 달라고 한다.
V.L., 이달 17일에 결혼할 남자아이다.
결혼식을 위해 그동안 많은 준비를 해왔지만
청첩장을 돌리는 일이 결혼식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지 시작부터 기도가 필요한 모양이다.
아마 순탄한 출발을 원하고 축복된 결혼식을 원하고 스위트 홈을 꿈꾸고...
그 많은 미래의 시간을 위해서 좋은 출발을 하고 싶은데 그게 기도라고 생각하는 아이이고
20년을 보아온 내게 기도를 부탁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때 그 생각을 못했는데... 나 보다 믿음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둘 다 실로암 초등학교, 실로암 주일학교 출신이고
남자 아이는 2학년 때부터, 여자애는 유아 때부터 봐왔는데 이 애들에게 내가 중요한 모양이다.
청첩장에 내 이름을 넣는다고 하는 것을 부모 이름이면 된다고 했는데도
어찌 아버지 같은 사람 이름을 뺄 수 있냐고 하는 애들이다.
부모 이름만 아니라 내 이름으로도 청첩하고 싶은 모양이다.
청첩장에는 부모 이름만 아니라 속지에는 결혼식 주례자 이름도 같이 인쇄되는데
주례자 이름 위에 내 이름을 넣는다고 두 번이나 이야기하는 것을 말린 상태다.
여기는 정부 라이센스가 있는 인도 목사만이 결혼식과 장례식을 집도할 수 있고
또 현지 상황 때문에 내 이름이 인쇄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 같이 기도하자고 했더니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온다.
오토바이를 사든지 중요한 시험을 보기 전에 기도 부탁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대부분 마당에서 기도를 한다.
자기 오토바이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것을 원하는데
마당에 오토바이를 두고 집 안에서 기도하는 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당에는 아이들이 크리켓을 하고 있어서 눈 감고 기도하다가 자칫 공을 맞을 수도 있다.
40M 이상 떨어진 유리도 깨고 차량 미등도, 벽의 CCTV도 망가트리는 막강한 애들 공의 힘이다.
잘못하면 기도하다가 비명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 모두를 집안으로 불러들였더니
신부 엄마는 작은 과일 바구니까지 들고 온다.
주요한 사람에게 청첩장을 건널 때 정중한 여기 문화이다.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운동장에서 기도했으면 실례가 될 뻔 했다.
청첩장을 보니 커다랗고 한 눈에도 비싸 보이는 종이에 화려히 디자인된 글씨가 인쇄되어 있다.
다행히 내 이름을 넣지 않았다.
기도를 마치고 이야기를 해보니 예전에 양가가 서로 멀리하는 관계였는데 오늘 보니 많이 가까워져 있다.
여자아이가 예뻐서 주변에서 하도 많이 달라붙고 또 말을 걸고 하는 것을 본 남자 부모가 결혼을 절대 반대했는데
일편단심인 남자애의 사랑에 부모가 두 손을 들었나 보다.
제발 검소하게 결혼식을 준비하라고 하는데도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각자 부모님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나한테 이른다.
첫아들이라서 그렇고 막내딸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예쁘지만 공주과인 그 여자애와 결혼하는 그 녀석은 아직 결혼이 얼마나 힘들고 무서운지 모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