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명 : Michael Gerard Tyson
신 장 : 6 피트 / 181.6 Cm
체 중 : 218 파운드 / 99 Kg
생년월일 : 1966 년 6 월 30 일
출생지 : 미국 뉴욕 브룩클린
아마츄어 전적 : 27 전 24 승 3 패
프로 전적 : 54 전 50 승 4 패
최다연승 : 37 연승
최다연속 K.O : 18 회
K.O 승리 : 44 회
노콘테스트(무효경기) : 2 회
경기한 라운드 수 : 약 189 라운드
리 치 : 180 Cm
목 둘레 : 50 Cm
이두근 둘레 : 40.5 Cm
손목 둘레 : 20 Cm
가슴 둘레 : 109 Cm - 114 Cm
허리 둘레 : 86 Cm
허벅지 둘레 : 68.5 Cm
발목 둘레 : 28 Cm
주먹 둘레 : 33 Cm
1966 년 6 월 30 일 생의 마이클 제러드 타이슨은 미국의 뉴욕 브룩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방황하던 타이슨은 어릴적 비둘기를 좋아했는데 자신보다 더 큰 소년이 비둘기를 죽이자 타이슨은 격분해 그 소년을 두들겨 줬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12 살이 되기전까지 좀도둑질을 해댔고 수십번 체포됐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뉴욕의 Tryon 학교에 보내지게 되었고, 13 세 때 타이슨의 재능을 알아차린 학교의 코치인 바비 스튜어스 씨의 소개로 커스 다마토를 만나게 됩니다. 커스 다마토는 타이슨을 만난 후 "그는 미래에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될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1982 년 타이슨이 16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타이슨에게 권투를 가르치고 타이슨의 정신적 지주였던 커스 다마토는 마이크 타이슨을 양자로 받아들이며, 커스 다마토는 타이슨을 무척 사랑했고,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타이슨에게 전수해주고 또한 모든 것을 바치게 되죠.
1984 년 올림픽에 나가려 했던 타이슨은 헨리 틸먼에 의해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틸먼은 후에 1984 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에 오르게 되고, 미국을 대표해 올림픽에 참가하려던 타이슨은 프로로 관심을 돌리게 되고, 아마츄어 27 전 24 승 3 패의 전적을 남기고1985 년 3 월 6 일 헥터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프로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의 데뷔전은 1 라운드 K.O 승으로 끝납니다. 그는 그 이후로 챔피언 매치에 중점을 두게 되고, 데뷔 후 1 년이 지나자 그는 17 전 전 K.O 승 거두며 일약 탑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프로에 데뷔한지 약 1 년 8 개월 후 27 연승을 거둔 끝에 타이슨은 WBC 타이틀을 놓고 트레버 버빅과 경기를 하게 됩니다. 1986 년 11 월 22 일, 2 라운드 만에 K.O 승을 거둔 타이슨은 데뷔한지 1 년 8 개월만에 세계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데, 이 당시 그의 나이는 20 살로 역대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이 된 것이이지요. 타이슨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무하마드 알리 이후의 통합 헤비급 챔피언을 목표로 하게 되며, 1987 년 3 월 7 일, WBA 챔피언 도정권을 놓고 제임스 스미스와 경기를 하게 되는데 타이슨은 스미스를 12 라운드 판정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후 타이슨은 핑크론 토망스와 토니 터커를 각각 6 라운드 K.O 승과 판정승으로 누르고 WBC, WBA, IBF 챔피언이 되면서 그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타이슨은 래리 홈즈, 마이클 스핑크스 등을 누르며 6 차 방어전까지 승리하게 되고, 90 년대가 되기전 프로 5 년 동안 37 전 37 승 33 K.O 의 전적을 가지고 있던 타이슨은 사생활에 문제가 생겨 훈련과 경기에 소홀하게 됩니다.
1990 년 2 월 10 일 도쿄에서 열렸던 파괴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제임스 더글라스에게 도박사들의 42-1 우세예상에도 불구하고 패배하게 됩니다. 1990 년 6 월 16 일, 타이슨은 예전 아마츄어 시절 자신의 꿈을 좌절시켰던 틸먼을 1 라운드 K.O 로 승리합니다. 타이틀을 되찾기 위해 상대를 물색하던 도중 캐나다인인 도노반 러독이 타이슨에게 경기를 제안했으나 첫번째 대결에서는 7 라운드 TKO 로 두번째 대결에서는 판정으로 모두 타이슨의 승리로 돌아가게되죠.
타이슨은 이후 성추행으로 인해 4 년간 감옥에 가게됩니다. 4 년후 타이슨은 라스베가스의 MGM Grand 와 Showtime Networks Inc 와 계약을 하고 링으로의 복귀를 선언! 피터 맥니리와 버스터 마티스 주니어를 차례로 누르며 성공적으로 재기한 마이크 타이슨.
드디어 그는 1996 년 3 월 16 일 MGM Grand 의 15,222 명의 관중앞에서 프랭크 브루노를 3 라운드만에 TKO 승으로 WBC 타이틀을 다시 획득하게 된다. 이어 불과 10 주 후에 1996 년 9 월 7 일 WBA 챔피언인 브루스 셀던에게도 1 라운드 TKO 로 승리. WBC, WBA 타이틀을 다시 소유하게 됩니다. 1996 년 11 월 9 일 라스베가스에서 타이슨은 에반더 홀리필드에게 패함으로써 다시 타이틀을 내주게 됩니다. 이 때의 경기는 타이슨의 경기 중 1991 년 이후 최초로 3 라운드가 지난 경기라고 합니다.
1997 년 6 월 28 일 재대결에서 타이슨은 홀리필드에게 귀를 깨물면서 실격패를 당하게 됩니다. 타이슨은 이 경기 후 네바다 주의 복싱 라이센스를 빼앗기에 되었고 300 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되죠.
그는 1 년 후인 1998 년 8 월 14 일에 복싱 라이센스를 다시 신청하게 됩니다. 그는 이 기간동안 WWF ( 현재의 WWE ) 로의 외도를 하게 된다. Team De-generation X 에 가입하고 'Stone Cold' 스티브 어스틴과 대립하는 등의 활약을 한 타이슨. 1998 년 10 월 19 일, 네바다 주의 복싱연맹의 투표 결과 4-1 로 다시 타이슨은 복싱 라이센스를 얻게 됩니다.
1 년 반의 휴식 후에 그는 1999 년 1 월 16 일 보타와의 경기에서 그를 5 라운드 K.O 로 승리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재기한후, 올린 노리스와의 경기를 갖았으나 1 라운드 종료 후 종소리를 듣지 못하고 가격, 경기는 노콘테스트로 끝나버립니다.
2000 년 1 월 29 일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의 21,000 명의 팬 앞에서 레녹스 루이스의 스파링 파트너였던 줄리어스 프란시스에게 압도적으로 2 라운드 만에 TKO 승을 하게 됩니다. 타이슨은 경기 후 그가 계속해서 일어나 놀랐고 그에게 좋은 바디공격을 했다고 하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2000 년 6 월 24 일 로우 사베지를 1 라운드만에 K.O 승리를 거둔고, 이어 10 월 20 일 타이슨은 앤드류 골로타와의 경기를 갖는다. 하지만 3 라운드 골로타는 경기를 포기하며 관중들의 야유속에 경기장을 퇴장합니다. 이후 갖았던 브라이언 니엘센과의 경기에서는 예전과는 다소 비교되는 모습을 보이며 점점 노쇠화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 타이슨은 니엘센을 6 라운드 TKO 로 승리합니다.
2002 년 6 월 8 일, 역사상 최고의 흥행매치라던 마이크 타이슨과 레녹스 루이스와의 WBC IBF 챔피언 매치는 6 라운드 K.O 패로 타이슨이 지고 맙니다.
첫댓글 개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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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급 복서들은 다들 목근육 단련해서 뇌로가는 충격을 최소화 하고 골격들이 엄청난 사람들이라서 쉽게 안 죽는다... 일반인이라면 죽겠지.
근데 솔직히 타이슨이 암만 전성기때 해봐야 루이스한테 조털릴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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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 잠이 잘 오겠지...
환성적인 위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