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찐한 소설 같고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어느 날 사자암의 불전함 속에 향봉 스님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이 담겨 있었다.
스님은 까마득히 잊고 살겠지만,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병이 든 오늘에 이르기까지 스님을 잊지 안고 살아갑니다. 부질없는 짓이 라 제 이름도 밝히지 않겠지만, 스님이 쓰신 책 속에서 제 이름을 찾아내고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에게는 딸이 둘인데, 하나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또 한 아이는 면사무소 공무원이라서 큰 걱정거리 없이 살고 있습니다. 다만 몹쓸 병을 않고 있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용주, 향봉 스님을 한번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절에 와서 먼빛으로 스님의 모습만 지켜보다 신도들과 나 누는 우렁찬 스님의 목소리만 가슴에 담아갑니다. '스님, 저 왔어요'라고 외치고 싶지만 그럴 용기는 사그라들어, 스님과 함께 마시 고 싶은 찻값만 봉투에 남기고 떠납니다. 다음 생이 있다면 스님의 형제나 친구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후 반년도 훌쩍 지난 어느 날 젊은 부부가 사자암에 다녀갔다.
편지 속 당사자인 초등학교 선생님이요 그의 남편 되는 사람이었다.
"저희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두 딸을 대학까지 보내셨지요. 어머님은 간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얼마 전 까지도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어머님 가슴 속에는 어린 시절의 스님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어요. 오늘 저희는 어머 님이 다닌 원불교 교당에서 49재를 지내고 어머님 대신 사자암을 찾은 거예요."
나는 가슴이 멍멍해 속으로 울고 있었다. 내가 쓴 책에 자주 등장하는 '길자년'이 그녀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참, 세상이 지랄같이 허무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