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일요일 흐림 새벽 5시 30분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도 작고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 개인차고 같은 느낌이다. 새벽이라 다니는 버스도 없고 택시를 타고 아야 소피아로 향했다. 새벽이라 택시가 아야 소피아로 진입할 수 없다고 멀리 내려준다. 졸리고 지쳤지만 각자 가방을 매고 숙소를 향해 걸어간다. 그래도 목적지인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맘이 편하다. 이제는 쉬며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돌아보다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가면 된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요르단으로, 시리아로 다시 터키로 들어오는 여정을 생각해보니 기적 같다. 동양 호텔에 도착하니 마침 방이 하나 비어있었다. 8개의 침대가 모두 비어 있어 우리 식구 7명이 모두 들어가 대충 씻고 일단 자기로 했다. 집같이 따듯하다. 방학 끝이라 한국인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파묵칼레에의 데니즐리에서 앙카라로, 앙카라에서 이곳 이스탄불까지 밤차로 이동했으니 2일 밤을 버스에서 보낸 것이다. 추위와 잠과 싸우며 지내다가 3일째 침대에 들어섰으니 최선의 선택은 잠이다. 오전에 정신없이 자는데 배가고프다. 12시 30분에 기상해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숙소를 나섰다. 날씨는 잔뜩 흐리다. 거리를 거닐다가 즐겨먹던 고등어 캐밥을 입에 물었다. 조선생의 가족이 식사하는 식당을 찾아갔다. 이 식당에서 맛 본 것은 도르마 이다. 터키 요리를 대표하는 도르마는 터키어의 동사인 도르마크(채워넣다. 가득하다)에서 나온 말로 야채에 쌀, 고기 등을 가득 채운 요리다. 양배추말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는 도르마데스, 아랍에서는 마흐시라고 불린다. 중근동, 동지중해에서 아주 대중적인 요리다. 양도 넉넉해서 주 요리를 대신한다. 포도잎으로 싼 야프리크도르마스, 양배추로 싼 라하나도르마스, 토마토를 도려내서 안에 채운 토마테스도르마스, 피망에 고기와 쌀을 채워넣은 비베스도르마스 등 종류도 다양하다. 식사 후에 이스탄불 대학으로 구경갔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세웠다는 쳄베르리 타쉬 기념물을 지나니 대학이 나온다. 대학을 돌아보려면 넓어서 힘들 것 같다. 문 앞에서 비둘기와 함께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대학이 길 건너편에도 있고 엄청 넓다. 계속 걸어가니 현대식 건물의 이스탄불 시청이 나온다. 시청 앞에는 상징물인 사자가 정원에 만들어져 있다. 길 건너에는 세흐자데 자미가 있고 4차선 넓은 도로에 공원이 이어진다. 아래로 길게 발렌스 수도교가 보인다. 발렌스 황제 시대인 378년에 완성된 수도교, 터키어로는 회색매(초우겐보우)의 아치라는 뜻이다. 지금도 구시가지의 아타튀르크 대로를 감싸듯이 양 날개를 펼치고 있는데, 아래로는 엄청난 차량이 통과하고 있다. 이 수도교를 이용해 옮겨진 물은 시가지 북쪽에서 펼쳐진 베오그라드 숲에서 지하궁전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수도로는 사용되지 않으며 다리위로 올라가는 것도 금지되어 있단다. 지하도를 건너서 공원에 서 있는 동상들도 보고, 수도교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스페인에 있는 세고비아의 수도교 보다 규모가 큰 것 같다. 과거를 보여주는 수도교와 현재를 보여주는 시청 건물, 복잡하게 왕래하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정말 혼란스러워 보이는 도시다. 좁은 골목길을 물어물어 쉴레이마니에 자미를 찾아갔다. 언덕위에 있어 멀리서 보면 찾기 쉬울것 같은데 막상 찾아 나서니 골목이 복잡하다. 규모가 큰 이 모스크는 어디서 봐도 보인다. 특히 금각만의 갈라타 다리에서 보면 선명히 보인다. 로마도 7개의 언덕에 세워진 도시이고 이곳 이스탄불도 7개의 언덕에 세워졌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도 7개의 언덕에 세워진 도시인데 묘함 공통점이 있다. 이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이 가장 번성했던 쉴레이만 대제가 세운 사원이다. 금각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세워져 있으며 1557년에 완공되었다. 터키 최고의 건축가 이말 시난이 설계한 것으로, 그는 당시 최고 기술을 구사하며 59m X 58m의 바닥에 지름 26.5m의 원형 지붕을 얹고 높이 53m의 대형 돔을 세웠다. 균형미는 물론 크기도 대단하며 내부 장식도 매우 아름답다. 내부에는 TV중계를 하는지 신심 깊어 보이는 흰 모자, 흰 수염의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에 둘러싸여 무엇인지 열심히 강론하고 있다. 아름답다는 내부 장식은 모두 비슷해 보인다. 특히 빛이 반사되는 스테인글라스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채색유리를 이용한 섬세한 작품이란다. 강론을 듣고 있는 사람 중에 흰 모자를 쓴 사람은 함지라고 하는데 성지순례를 갔다 왔다는 표시란다. 쉴레이만 대제의 묘와 시난의 묘가 있다. 쉴레이만과 그의 부인의 묘가 사원 뒤에 있다. 모스크 형태의 묘에는 큰 석관이 몇 개 있는데 실내장식이 섬세한 모자이크로 멋있다. 예루살렘의 다윗의 묘 같은 형태의 석관이 보이는 것을 보니 이곳 주변의 묘 형태는 주로 이런 식인가보다. 밖에는 수많은 묘비석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니 높은 사람이나 친척들의 묘인가 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입구의 바닥은 달아서 곡선으로 움푹 패여 있다. 한국 관광객 가이드에게 물어서 건축가 시난의 묘를 찾았다. 모스크 밖에 있었다. 터번을 쓴 수염이 길게 난 시난의 사진이 있는 묘는 규모가 작다. 1490년에 태어나 1588년에 죽은 천재적인 건축가 시난의 묘를 찾아보니 반갑다. 의미야 없겠지만 찾고 싶은 것을 찾아봤다는 단순한 여행자의 기분이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석류원액을 짜서 만든 것을 사 마셨다. 선하게 생긴 아저씨의 친절한 미소가 더욱 석류 맛을 좋게 한다. 고등어 캐밥을 2개 사고 군밤을 사서 먹었다. 아이란도 2개 샀다. 밀린 빨래도 하고 샤워를 하고 대충 정리를 해본 다. 1월 22일 경비--- 택시비 4800원, 고등어캐밥 4개 4800원, 도르마스 2400원, 석류쥬스 2400원, 군밤 800원, 아이란 1200원. 계 16400원. 누계 1,849,510원. #1월 23일 월요일 눈, 비, 바람.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하는데 제일 푸짐하다. 요구르트에 콘프레스트, 과일, 오이, 햄, 빵 등 무제한이다. 먹을 때는 즐겁다. 7시 40분에 식사를 하고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날을 보낸다. 오늘은 신시가지를 구경하려고 맘먹었으나 눈, 바람, 비 때문에 두 손을 들었다. 숙소에서 나서니 눈보라가 매섭다. 바닷가라 더욱 심한 것 같다. 눈을 뜨기도 어렵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는데 아무리 눈보라가 쳐도 출근하는 사람들은 변함이 없다. 출렁이는 바다위에 출근시키는 배도 여전히 하던대로 움직인다. 힘들게 눈보라를 가르며 갈라타 탑에 도착했다. 6세기 초에 등대로 이용되었던 것을 14세기에 들어 주변에 살았던 제노바 인이 비잔틴 제국을 감시하는 탑으로 개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감옥과 천문대 등으로 사용되었단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화재로 손실된 후 14세기 이 후에 재건된 것이란다. 이 탑의 상징인 고깔 모자 형태의 꼭대기는 최근에 올린 것이란다. 입구에 들어서니 통판에 새겨진 커다란 도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각종 흉찍한 가면이 걸려있는 기념품 가게도 있다. 입장료는 6400원(8리라)이다. 엘리베이터로 맨 위로 올라가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면 지상 53m의 테라스에서 이스탄불의 시내를 360도로 내려다본다. 탑이 언덕위에 세워져 실제 높이보다 더 전망이 좋다. 위층에는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이 있고 밤에는 밸리 댄스 등의 쇼가 열리기도 한단다. 돌마바흐체 궁전을 목표로 눈보라를 헤치며 열심히 걸어갔으나 궁전 정면에 있는 시계탑만 보이고 문이 닫혀있다. 쉬는 날이다. 예상했던 일이다. 이스티크랄 거리에 가서 쇼핑도 하고 싶었으나 일기가 장난이 아니다. 근처에 있는 호텔로 들어가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려 보았지만 그대로다. 택시를 타고 아야 소피아로 왔다. 고등어 캐밥을 사서 맥도널드 2층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지겹도록 앉아 있다가 택시를 타고 카리예 박물관으로 간다. 색각보다 택시비가 많이 나왔다. 조 선생은 바가지요금이라고 싸우기 시작했다. 큰소리치며 경찰서로 가자고.......... 지나가던 행인도 인정을 하니 더욱 힘을 얻어 따지자 결국 택시기사가 처음과 다르게 5리라를 깎아서 요금을 지불하고 헤어졌다. 카리예 박물관 에 입장료 10리라를 주고 들어갔다. 규모는 작은데 천장에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성화는 보존이 잘되어 있었다. 이 박물관은 구시가지 서쪽, 데오도시우스 성벽 근처에 있다. 5세기 초에 콜라 수도원으로 세워졌으며 그 후 오스만 왕조 시대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13~14세기에 그려진 멋진 모자이크화는 칠보로 덧칠되어 있었는데 20세기 중반에 아메리카 비잔틴 연구소의 조사로 이 사실이 밝혀져 보수 되었으며 다시 멋진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돈의 힘에 옛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박물관 내에 들어서니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의 형상, 예수님의 탄생, 수태고지, 이집트로의 피난, 예수님 탄생 당시 죽어간 유아들의 참혹한 모습,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가나혼인 잔치 등의 모습이 50여점으로 천장과 벽화에 그려져 있고 마리아의 최후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또 입구 오른 쪽에 있는 예배당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가장 안쪽에는 아담과 이브를 구제하려는 예수님의 두 손을 내민 모습이 있는데 이것은 비잔틴 예술 중에서도 평가가 높은 작품이란다. 성경에 있는 내용에 가이드의 설명을 약간 들어보니 내용이 이해가 된다. 나중에 들어온 한국 처자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설명을 해주며 돌아보니 제법 지식이 쌓이는 것 같다. 유난히 성모 마리아가 부각되어 있는 모습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보존이 잘 되어 있어 기쁘다. 버스를 타기위해 밖으로 나오니 눈보라는 더 심해지고 춥다. 택시를 타고 이집션 바자르에 가서 선물용 sucuk 라는 맛있는 호두 잴을 3개 샀다.(나만 맛있다고 생각했지 다른 사람은 맛없다고 먹지 않아 혼자 다 먹었다.) 눈보라를 뚫고서 그랜드 바자르로 갔다. 가죽 잠바를 사러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썩 맘에 드는 것이 없었다. 색상이 맘에 들면 디자인이, 디자인이 맘에 들면 바느질이나 가죽 상태가......... 빙빙 돌며 다니다가 핸드 빽 하나를 사고 나왔다. 넓은 시장을 서 너 바퀴 돌고나니 미로처럼 보이던 시장 안이 이젠 쉽게 느껴진다.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찾고 이제 집으로 갈 수 있도록 짐정리를 다시 했다. 캐밥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세면하고, 고르지 못한 일기로 비행기를 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카페에 글을 올려놓고 숙소를 나섰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눈이 내리니 눈이 쌓인다. 트램을 타고 공항으로 간다. 퇴근하는 사람들로 트램이 만원이다. 트램 종점에서 갈아타고 공항 가는 전철을 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9시 30분이다. 남은 돈을 환전했다. 출국수속을 진행하는 것을 보니 비행기가 뜨는가보다. KLM은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갈아타는데, 유럽도시로 가는 비행기가 많이 취소되었음을 전광판이 알리고 있다. 불안하게 전광판을 살핀다. 밖에는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 눈이 날린다. 공항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1월 23일 경비--- 숙박비 24.000원, 택시비 9.600원, 캐밥 4.800원, 입장료 16.000원, 수쿡 5.600원, 핸드빽 40.000원, 트램 3.520원, 아이란 2.400원, 술 6.800원, 화장실 400원. 계 113.920원, 누계 1.963.430원. #1월 24일 화요일. 맑음 새벽 5시 45분에 정확히 비행기는 떴다. 눈 때문에 거정을 했지만, 비행기를 타자마자 정신없이 잠들었다. 아침 9시 30분에 암스텔담에 도착했다. 종일 공항에서 놀았다. 생각보다 좁지만 구경거리와 소일거리가 많다. 긴 의자에 누워 잠도 자고 미술전시도 보고 가게들도 기웃 거렸다. 암스텔담에서 오후 5시 10분에 비행기는 출발했다. 승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다. 많기도 많다. 모두 행복한 모습이다. 의기양양한 얼굴이다. 전투에서 승리한 얼굴이다. 무사히 살아 왔으니....... #1월 25일 수요일. 맑음 긴 비행기에서의 고생 끝에 인천 공항에 오전 11시 25분에 도착했다. 거의 10시간30분을 비행기에서 보냈다. 부지런히 공항을 빠져나와 의정부행 공항버스를 탔다. 의정부 박 집사 집에서 차를 타고 집에 도착. 여행 끝이다. 꿈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