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雍也1章(옹야1장)
子曰 雍也 可使南面.
자왈 옹야 가사남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雍; 仲弓)은 남면(군왕의 位에 앉음)하게 할 만하다.”
○ 남면은 군주가 정사를 다스리는 자리이니, 중궁이 너그럽고 크며 간략(대범, 소탈)하고 중후하여 인군의 도량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仲弓 問子桑伯子 子曰 可也簡.
중궁 문자상백자 자왈 가야간.
중궁이 자상백자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그의 간략함도 괜찮다.”
○ 자상백자는 노나라 사람이니, 호씨(胡寅)는 “장주가 칭한 자상호라는 자가 그인 듯하다.”하였다. 중궁은 부자께서 자신에게 남면할 수 있다고 허여하셨으므로 ‘백자는 어떠합니까?’하고 물은 것이다. 가(可)는 겨우 괜찮아서 미진함이 있는 말이요. 간(簡)은 번거롭지(까다롭지) 않은 것이다.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중궁왈 거경이행간 이임기민 불역가호 거간이행간 무내대간호.
중궁이 말하였다. “자신이 경(敬)에 있으면서 간략함을 행하여 인민(人民)을 대한다면 가(可)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간략함에 처하고 다시 간략함을 행한다면 너무 간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스스로 처하기를 경(敬)으로 한다면 중심에 주장이 있어 스스로를 다스림이 엄격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고서 간략함을 행하여 인민(人民)을 대한다면 정사가 번거롭지 않아 인민들이 소요하지 않을 것이니 가함이 될 수 있거니와, 만약 먼저 간략함으로써 자처한다면 중심에 주장이 없어 스스로를 다스림이 소홀해질 것이요, 행하는 바가 또 간략하다면 어찌 너무 간략함에 잘못되어 지킬 만한 법도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백자가 의관을 하지 않고 거처하자, 부자(夫子)께서 그가 사람의 도리를 우마(牛馬)와 같게 하려 한다고 비판하셨다.’하였으니, 그렇다면 백자(伯子)는 아마도 너무 간략한 자일 것이니, 중궁이 부자께서 지나치게 허여하심을 의심한 것이다.
子曰 雍之言 然.
자왈 옹지언 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의 말이 옳다.”
○ 중궁이 부자의 가자(可字)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으나 그가 말한 이치는 묵묵히(은연중) 합함이 있었으므로 부자(夫子)께서 옳다고 하신 것이다.
○ 정자(伊川)가 말씀하였다. “자상백자의 간략함은 비록 취할 만하나 지극히 선(善)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괜찮다[可]고 말씀하신 것이다. 중궁이 인하여 말하기를 안(마음)에 경(敬)을 주장하면서 간략하면 긴요하고 바름이 되거니와, 안에 간략함을 두고서 간략하면 소략(疏略)함이 된다고 하였으니, 그 뜻을 알았다고 할 만하다.”
또 말씀하였다. “경(敬)에 처하면 중심에 아무런 일이 없으므로 행하는 바가 저절로 간략해지는 것이요, 간략함에 처하면 먼저 간략함에 마음이 있어 한 간자(簡字)가 많게 된다. 그러므로 너무 간략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雍也2章(옹야2장)
哀公 問弟子 孰爲好學.
애공 문제자 숙위호학.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공자대왈 유안회자호학.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불천노 불이과 불행단명사의.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금야칙망 미문호학자야.
애공이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안회라는 자가 배움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命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으니, 아직 배움을 좋아한다는 자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 遷(천)은 옮김이요, 貳(이)는 다시 함이니, 갑(甲)에게 화낸 것을 을(乙)에게 옮기지 않고 전에 잘못한 것을 뒤에 다시 하지 않는 것이다. 안자(顔子)의 극기(克己)하는 공부가 이와 같음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배움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명(命)이 짧다는 것은 안자가 32세에 죽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금은 없다고 말씀하고 나서 또 배움을 좋아한다는 자를 듣지 못했다고 말씀하신 것은 깊이 애석해 하시고, 또 참으로 배움을 좋아하는 자를 얻기 어려움을 나타내신 것이다.
○ 정자(伊川)가 말씀하였다. “안자의 노여움은 상대방에게 있었고 자신에게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옮기지 않은 것이다. 선(善)하지 않음이 있으면 일찍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면 일찍이 다시 행한 적이 없으셨으니, 잘못을 다시 하지 않은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기뻐하고 노여워함이 자신의 감정에 있지 않고 상대방의 행한 일에 있으면 이것은 도리상 마땅히 기뻐하고 노여워해야 할 경우인 것이요, 혈기에 있지 않으면 옮기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순(舜)임금이 사흉(四凶)을 처벌할 때에 노여워할 만함이 저들에게 있었으니, 자신이 무슨 상관이 있었겠는가.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춤에 아름다움과 추함이 저쪽에 달려 있는 것과 같아서 물건에 따라 응할 따름이니, 어찌 옮김이 있겠는가.”
○ 또 말씀하였다. “안자 같은 지위(경지)에 어찌 선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이른바 선하지 않다는 것은 다만 약간의 잘못이 있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곧 알았고 알면 곧 다시는 싹터 나오지 않게 한 것이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자신의 마음에 부족하게 느낀 것을 두 번 다시 싹트지 않게 한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시(詩), 서(書)와 육예(禮, 樂, 射, 御, 書, 數)를 70제자가 익혀서 통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부자(夫子)께서 유독 안자(顔子)만이 배움을 좋아했다고 칭찬하셨으니, 안자가 좋아한 것은 과연 어떤 배움인가?”하니 정자(伊川)가 말씀하였다. “배워서 성인(聖人)에 이르는 방법이었다.”
○ 혹자가 “배우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하니,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천지가 정기를 쌓아(만물을 낳았는데) 오행(五行)의 빼어난 정기를 얻은 것이 사람이니, 그 본체는 참되고 고요하다. 미발(未發)했을 때에는 오성(五性)이 구비되어 있으니,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다. 그리고 형체가 이미 생기고 나면 외물(外物)이 그 형체에 접촉되어 마음이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여 칠정(七情)이 나오니,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악(惡), 욕(欲)이다. 감정이 이미 성해져 더욱 방탕해지면 그 본성(本性)이 해롭게 된다. 그러므로 선각자는 정(情)을 단속하여 중도(中道)에 합하게 하고, 그 마음을 바루어 본성을 기를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먼저 마음을 밝혀서 갈 곳을 알아야 하니, 이렇게 한 뒤에야 힘써 행하여 도(道)에 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안자의 예(禮)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동(動)하지 않은 것과 화를 남에게 옮기거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음과 같은 것은, 좋아함이 독실하고 배움에 그 방법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지킨 것이고 저절로 화(化)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몇 년 만 수명을 연장해 주었다면 며칠이 되지 않아 저절로 화(化)하였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마침내 이르기를 성인은 본래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이요, 배워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여겨 배우는 것이 단지 글을 기억하거나 외우며 문장을 짓는 데에 지나지 않으니, 이 또한 안자의 배움과는 다른 것이다.”
雍也3章(옹야3장)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子曰 與之釜.
자화시어제 염자위기모청속 자왈 여지부.
請益 曰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청익 왈여지유 염자여지속오병.
자화(子華)가 공자를 위하여 제(齊)나라에 심부름을 가자, 염자(冉子)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줄 것을 요청하니, 공자께서 “부(釜)를 주어라.”하셨다. 더 줄 것을 청하자. 공자께서 “유(庾)를 주어라.” 하셨는데, 冉子가 5秉을 주었다.
○ 자화는 공서적이다. 使(시)는 공자를 위하여 심부름을 간 것이다. 釜(부)는 6斗(두) 4升(승)이고, 庾(유)는 16斗(두)이며, 秉(병)은 16斛(곡)이다. 斛(곡)은 10말의 용량이다.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 周急 不繼富.
자왈 적지적제야 승비마 의경구 오문지야 군자 주급 불계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적(子華)이 제나라에 갈 적에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곤궁한 자를 돌보아 주고 부유한 자를 계속 대주지 않는다.’하였다.”
○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은 것은 부유함을 말한 것이다. 急(급)은 곤궁함이다. 周(주)는 부족한 이를 도와주는 것이요, 繼(계)는 여유가 있는 이를 계속 대주는 것이다.
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원사위지재 여지속구백 사.
원사(原思)가 공자의 재(宰; 가신)가 되었는데 공자께서 곡식 9百(백)을 주자 사양하였다.
○ 원사는 공자의 제자이니, 이름이 헌(憲)이다. 공자께서 노(魯)나라 사구(司寇)가 되었을 때에 원사를 가신으로 삼으셨다. 粟(속)은 가신의 녹봉이다. 9百은 그 양(量)을 말하지 않았으니 상고할 수 없다.
子曰 毋 以與爾隣里鄕黨乎.
자왈 무 이여이린리향당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양하지 말고서 너의 이웃집과 마을 및 향당에 주려무나.”
○ 毋(무)는 금지(禁止)하는 말이다. 5家(가)를 鄰(린)이라 하고, 25家(가)를 里(리)라 하고, 1만 2천 5백家를 鄕(향)이라 하고, 5백家를 黨(당)이라 한다. 떳떳한 녹봉[常祿]은 사양할 것이 없으니, 남음이 있으면 스스로 미루어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웃집과 마을 및 거주하는 향당(鄕黨)에는 서로 구휼해 주는 의리(義理)가 있는 것이다.
○ 정자(伊川)가 말씀하였다. “부자(夫子)께서 자화를 심부름 보낸 것과 자화가 부자의 사자(使者)가 된 것은 당연한 의(義)인데 염유(冉有)가 그를 위해 곡식을 줄 것을 요청하니, 성인은 너그럽게 용납하여 남의 말을 곧바로 거절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금 주라고 하셨으니, 주지 않아야 함을 보여 주신 것이다. 더 줄 것을 요청하자 역시 조금 주라고 하셨으니, 이는 더 주어서는 안 됨을 보여 주신 것인데, 염유가 이를 깨닫지 못하고서 스스로 주기를 많이 하였으니, 이것은 너무 지나치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그르다고 하신 것이다. 공서적이 만일 지극히 궁핍하였다면 부자께서 반드시 스스로 구휼해 주셨을 것이요, 요청하기를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원사가 가신이 되었으면 떳떳한 녹봉이 있는데, 원사가 그 많음을 사양하였다. 그러므로 또 이웃집과 마을의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가르쳐 주셨으니, 이 또한 의리 아님이 없는 것이다.”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이 두 가지에서 성인의 재물 쓰심을 볼 수 있다.”
雍也4章(옹야4장)
子謂仲弓曰 犁牛之子 騂且角 雖欲勿用 山川 其舍諸.
자위중궁왈 리우지자 성차각 수욕물용 산천 기사제.
공자께서 중궁을 평하여 말씀하셨다. “얼룩소[犁牛] 새끼가 색깔이 붉고[騂] 또 뿔이 제대로 났다면 비록 쓰지 않고자 하나 산천의 신이 어찌 그것을 버리겠는가.”
○ 犁(리)는 여러 무늬가 섞인 것이요 騂(성)은 붉은 색이니, 주(周)나라 사람은 적색(赤色)을 숭상하여 희생으로 붉은 것을 썼다. 각(角)은 뿔이 완전하고 단정하여 희생의 규격에 알맞은 것이다. 용(用)은 써서 제사함이다. 산천은 산천의 신이니, 사람이 비록 제사에 쓰지 않으려 하나 신이 반드시 버리지 않을 것임을 말씀한 것이다.
중궁은 아버지가 미천하고 행실이 악하였으므로 부자께서 이로써 비유하셨으니, 아버지의 악함이 그 자식의 선함을 버릴 수 없으니, 중궁과 같이 어진 인물은 스스로 마땅히 세상에 쓰여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궁을 평하신 것일 뿐이요, 중궁과 함께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고수(瞽瞍)를 아버지로 두고도 순(舜)임금이 있었고, 곤(鯀)을 아버지로 두고도 우(禹)임금이 있었으니, 옛날 성현이 가문과 족류(族類)에 매이지 않음이 오래 되었다. 자식이 아버지의 허물을 고쳐 악을 변화시켜 아름답게 만든다면 효(孝)라고 이를 만하다.
雍也5章(옹야5장)
子曰 回也 其心 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자왈 회야 기심 삼월불위인 기여칙일월지언이이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회는 그 마음이 3개월 동안 인(仁)을 떠나지 않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仁)에 이를 뿐이다.”
○ 3개월은 오램을 말한 것이다. 인(仁)은 마음의 덕(德)이니, 마음이 인(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욕이 없어 그 덕을 간직한 것이다. 일월지언(日月至焉)은 혹 하루에 한 번 인(仁)에 이르고, 혹 한 달에 한 번 인(仁)에 이르러서 그 경지에 나아가나 오래하지 못하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3개월은 천도(天道)가 조금 변하는 절기이니 그 오램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지나면 성인이다. 인(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만 털끝만한 사욕도 없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사욕이 있다면 곧 이는 인(仁)하지 않은 것이다.
○ 윤돈(尹焞)이 말하였다. “이는 안자가 성인(孔子)에 비하여 한 칸(間)을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성인이라면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되어 간단(間斷)이 없을 것이다.
○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처음 배우는 자의 요점은 마땅히 3개월 동안 인(仁)을 떠나지 않음과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仁)에 이름의 안팎(內外)과 빈주(賓主)의 구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힘쓰고 순서에 따라 그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니, 이것을 지나면 거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雍也6章(옹야6장)
季康子問 仲由 可使從政也與. 子曰 由也果 於從政乎何有.
계강자문 중유 가사종정야여. 자왈유야과 어종정호 하유.
曰賜也 可使從政也與. 曰賜也達 於從政乎何有.
왈사야 가사종정야여. 왈사야달 어종정호 하유.
曰求也 可使從政也與. 曰求也藝 於從政乎何有.
왈구야 가사종정야여. 왈구야예 어종정호하유.
계강자가 물었다. “중유(仲由)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由)는 과단성이 있으니 정사에 종사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사(賜; 자공)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하고 물으니 “사(賜)는 사리에 통달했으니 정사에 종사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하셨다. “염구(冉求)는 정사에 종사하게 할 만합니까?”하고 물으니 “구(求)는 다재다능[藝]하니 정사에 종사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하셨다.
○ 종정(從政)은 대부(大夫)가 됨을 이른다. 果(과)는 결단성이 있는 것이요, 達(달)은 사리에 통달함이요, 藝(예)는 재능이 많음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계강자가 ‘세 사람의 재능이 정사에 종사할 만합니까?’하고 묻자, 부자께서 각기 소장(所長)이 있다고 대답하셨으니, 비단 세 사람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각기 소장(所長)이 있으니, 그 장점을 취한다면 모두 쓸 수 있는 것이다.”
雍也7章(옹야7장)
季氏使閔子騫 爲費宰 閔子騫曰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계씨사민자건 위비재 민자건왈 선위아사언 여유부아자 즉오필재문상의.
계씨가 민자건을 비읍(費邑)의 읍재(邑宰)로 삼으려 하자, 민자건이 사자(使者)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잘 말해다오. 만일 다시 나를 부르러 온다면 나는 반드시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의) 문수(汶水)가에 있을 것이다.”
○ 민자건은 공자의 제자이니 이름이 손(損)이다. 費(비)는 계씨의 식읍(食邑)이다. 汶(문)은 물 이름이니, 제(齊)나라 남쪽과 노(魯)나라 북쪽의 경계에 있다. 민자가 계씨에게 신하 노릇하고 싶지 아니하여 심부름 온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위하여 잘 말하게 한 것이다. 만일 다시 와서 자신을 부른다면 마땅히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 정자(伊川)가 말씀하였다. “중니(仲尼)의 문하(門下)에서 대부의 집안에 벼슬하지 않은 자는 민자(閔子)와 증자(曾子) 몇 사람뿐이었다.”
○ 사양좌(謝良佐)가 말하였다. “학자가 안팎의 구분을 조금만 알면 모두 도(道)를 즐기고 남의 권세를 잊을 수 있다. 하물며 민자는 성인을 얻어 의귀처(依歸處)로 삼았으니, 계씨(季氏)의 의롭지 못한 부귀를 보기를 개나 돼지쯤으로 여길 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 따라서 신하 노릇함이 어찌 그의 마음이었겠는가? 성인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으니, 어지러운 나라에 살고 악인을 만남은 성인에게 있어서는 괜찮지만, 성인 이하는 강직하면 반드시 화(禍)를 취하고 약(弱)하면 반드시 욕(辱)을 취하니, 민자가 어찌 일찍 보고 미리 대비하지 않겠는가, 중유(仲由; 자로)는 제대로 죽음을 얻지 못하였고 염구(冉求)는 계씨를 위해 재산을 증식시켜 주었으니, 이것이 어찌 그들의 본심이었겠는가? 이미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없고, 또 난(亂)을 극복할 재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자는 어질다 할 것이다.”
雍也8章(옹야8장)
伯牛有疾 子問之 自牖 執其手曰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斯人也而有斯疾也.
백우유질 자문지 자유 집기수왈 망지 명의부 사인야이유사질야 사인야이유사질야.
백우(伯牛)가 병을 앓자, 공자께서 문병하실 적에 남쪽 창문으로부터 그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런 병에 결릴 리가 없는데, 천명인가 보다.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 백우는 공자의 제자이니, 성이 염(冉)이고 이름이 경(耕)이다. 병이 있었다는 것은 선유(先儒)들이 문둥병이라고 하였다. 牖(유)는 남쪽 창이다. 예(禮)에 “병자가 북쪽 창 아래에 있는데, 임금이 문병하러 오면 남쪽 창 아래로 옮겨서 임금으로 하여금 남쪽을 향하여 자신을 볼 수 있게 한다.”하였다. 당시 백우의 집에서 이 예(禮)로 공자를 높이자. 공자께서 감히 감당할 수 없으므로 그 방에 들어가지 않고 창에서 그의 손을 잡으셨으니, 아마도 그와 영결(永訣)한 듯하다. 명(命)은 천명을 이른다.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지금 마침내 이런 병에 걸렸으니, 이는 곧 하늘이 명(命)한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병을 조심하지 않아서 병에 걸린 것이 아님을 또한 알 수 있다.
○ 후중량(侯仲良)이 말하였다. “백우는 덕행으로 알려져 안자와 민자 다음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장차 죽으려 할 적에 공자께서 더욱 애통해 하고 애석해 하신 것이다.”
雍也9章(옹야9장)
子曰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자왈 현재 회야 일단식 일표음 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 불개기락 현재 회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다. 안회여,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시골에 있은 것을 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다. 안회여.”
○ 簞(단)은 대나무로 만든 그릇이다. 食(사)는 밥이다. 瓢(표)는 바가지(표주박)이다. 안자의 가난함이 이와 같았으나 처하기를 태연히 하여 그 즐거움을 해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어질다, 안회여.’라고 거듭 말씀하여 깊이 감탄하고 아름답게 여기신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안자의 즐거움은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와 누추한 시골을 즐거워한 것이 아니요, 가난에 마음이 얽매여 그 즐거워함을 변치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그의 어짊을 칭찬하신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와 누추한 시골은 즐거워할 만한 것이 아니요, 별도로(따로)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기자(其字)를 마땅히 완미하여야 하니, 진실로 깊은 뜻이 있다.”
또 말씀하였다. “옛날 주무숙(周茂叔; 주돈이)에게 가르침을 받을 적에 매양 공자와 안자가 즐거워한 곳의 즐거워한 바가 무슨 일인가를 찾게 하셨다.”
○ 내가 생각하건대, 정자(程子)의 말씀이 활시위를 당기기만 하고(문제만 제기하여 주고) 발사하지 않았으니, 이는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여 스스로 터득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니, 지금 나 역시 감히 함부로 설명할 수 없다. 배우는 자들이 다만 박문(博文), 약예(約禮)의 가르침에 종사하여 그만두고자 하여도 그만둘 수 없어 자신의 재주를 다함에 이른다면 거의 터득함이 있을 것이다.
雍也10章(옹야10장)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
염구왈 비불설자지도 역불족야, 자왈 역불족자 중도이폐 금녀화.
염구가 말하였다. “저는 부자의 도(道)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나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中道)에 그만두니,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는 것이다.”
○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나아가려고 해도 능하지 못한 것이요, 畫(화)이라는 것은 나아갈 수 있는데도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畫(화)이라고 이르는 것은 마치 땅에 금을 그어놓고 스스로 한계 짓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호인(胡寅)이 말하였다. “부자께서 안회가 그 즐거움을 변치 않는다고 칭찬하시니, 염구가 그 말씀을 들었으므로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가령 염구가 부자의 도를 좋아하기를 진실로 입이 추환(芻豢; 고기)을 좋아하듯이 하였다면 반드시 장차 힘을 다해 구했을 것이니, 어찌 힘이 부족함을 근심하겠는가. 한계를 긋고 나아가지 않으면 날로 후퇴할 따름이니, 이는 염구가 재예(才藝)에 국한된 이유이다.”
雍也11章(옹야11장)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자위자하왈 녀위군자유 무위소인유.
공자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의 학자가 되고 소인의 학자가 되지 말라.”
○ 儒(유)는 학자의 칭호이다.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군자의 학자는 자신을 위하고, 소인의 학자는 남을 위한다.”
○ 사양좌(謝良佐)가 말하였다.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의(義)와 리(利)의 사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리(利)라는 것이 어찌 반드시 재화를 증식하는 것만을 말하겠는가. 사욕으로 공정함을 없애고 자신에게만 맞게 하여 스스로 편케 해서 무릇 천리(天理)를 해칠 수 있는 것은 모두 리(利)이다. 자하가 문학은 비록 유여(有餘)하였으나, 생각하건대 그 원대(遠大)한 것에는 혹 어두운 듯하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이 말씀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
雍也12章(옹야12장)
子游爲武城宰 子曰 女得人焉爾乎.
자유위무성재 자왈 여득인언이호.
曰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於偃之室也.
왈유담대멸명자 행불유경 비공사 미상지어언지실야.
자유가 무성의 읍재(邑宰)가 되었는데, 공자께서 “너는 인물을 얻었느냐?”라고 물으시자, 자유가 대답하였다. “담대멸명이라는 자가 있으니, 다닐 적에 지름길로 다니지 않으며 공적인 일[公事]이 아니면 일찍이 저의 집에 이른 적이 없습니다.”
○ 武城(무성)은 노(魯)나라 하읍(下邑)이다. 澹臺(담대)는 성이고 滅明(멸명)은 이름이니 자(字)는 자우(子羽)이다. 徑(경)은 길이 작으면서 빠른 것이다. 公事(공사)는 향음주(鄕飮酒), 향사예(鄕射禮)와 독법(讀法) 따위 같은 것이다. 지름길로 다니지 않는다면 모든 행동을 반드시 바르게 해서 작은 것을 보고 빨리 하려고 하는 뜻이 없음을 알 수 있고, 공적인 일이 아닐 경우에는 읍재(邑宰)를 만나보지 않는다면 그 스스로 지킴이 있어 자기를 굽혀 남을 따르는 사사로움이 없음을 볼 수 있다.
○ 양시(楊時)가 말하였다. “정치를 함에는 인물을 얻는 것이 최우선이므로 공자께서 인물을 얻었느냐고 물으신 것이니, 멸명(滅明)과 같은 자는 이 두 가지의 작은 일을 보면 그의 공명정대한 정(情)을 알 수 있다. 후세에는 지름길로 다니지 않는 자가 있으면 사람들이 반드시 우활(迂闊)하다고 할 것이요. 그의 집에 이르지 않으면 사람들이 반드시 거만하다고 할 것이니, 공씨(孔氏)의 문도(門徒)가 아니라면 그 누가 이것을 알아 취했겠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몸가짐을 멸명(滅明)으로 법을 삼는다면 구차하고 천한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요, 사람을 취함을 자유(子遊)로 법을 삼는다면 간사하고 아첨함의 의혹이 없을 것이다.
雍也13章(옹야13장)
子曰 孟之反 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 曰非敢後也 馬不進也.
자왈 맹지반 불벌 분이전 장입문 책기마 왈비감후야 마불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은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패주하면서 후미에 쳐져 있다가 장차 도성 문을 들어오려 할 적에 말을 채찍질하며 ‘내 감히(용감하여) 뒤에 있었던 것이 아니요. 말이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하였다.”
○ 맹지반은 노나라 대부이니, 이름이 측(側)이다. 호씨(胡氏; 胡寅)는 “반(反)은 곧 장주(莊周)가 말한 맹자반이라는 자가 그이다.”하였다. 伐(벌)은 공로를 자랑함이요, 奔(분)은 패주함이다. 군대의 후미를 殿(전)이라 한다. 策(책)은 채찍질이다. 싸움에 패해 돌아올 때에는 군대의 후미에 있는 것을 공(功)으로 여기니, 반(反)이 패주하면서 뒤에 있었으므로 이 말로써 스스로 자신의 공(功)을 은폐한 것이다. 이 사실이 춘추좌전(春秋左傳) 애공(哀公) 11년조(年條)에 있다.
○ 사양좌(謝良佐)가 말하였다. “사람이 남보다 위가 되려고 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다면 인욕(人慾)이 날로 사라지고 천리(天理)가 날로 밝아져서 자신을 자랑하고 남에게 뽐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굳이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배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남보다 위가 되려는 마음을 한시도 잊지 못하니, 맹지반과 같은 이는 법으로 삼을 만하다.”
雍也14章(옹야14장)
子曰 不有祝鮀之佞 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자왈 불유축타지녕 이유송조지미 난호면어금지세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축관(祝官)인 타(鮀)의 말재주와 송(宋)나라의 조(朝)와 같은 미모를 갖고 있지 않으면 지금 세상에 환난을 면하기 어렵다.”
○ 祝(축)은 종묘(宗廟)의 관원이다. 鮀(타)는 위(魏)나라 대부(大夫)이니, 자(字)가 자어(子魚)로 말재주가 있었다. 朝(조)는 송(宋)나라 공자(公子)이니, 미모가 있었다. 이는 쇠미한 세상에서는 아첨을 좋아하고 미모를 좋아하여 이것이 아니면 환난을 면하기 어려움을 말씀한 것이니, 세상을 서글퍼 하신 것이다.
雍也15章(옹야15장)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
자왈 수능출불유호 하막유사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밖을 나갈 적에 문을 경유하지 않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이 도를 따르는 이가 없는가.”
○ 사람이 밖에 나갈 적에 문(門)을 경유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마침내 이 도(道)를 따르지 않는가 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괴이하게 여겨 탄식하신 말씀이다.
○ 홍흥조(洪興祖)가 말하였다. “사람이 나갈 적에 반드시 문을 경유해야 할 줄은 알면서도 행동할 적에 반드시 도를 따라야 함은 알지 못하니, 도가 사람을 멀리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도를 멀리 할 뿐이다.”
雍也16章(옹야16장)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君子.
자왈 질승문칙야 문승질칙사 문질빈빈연후군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질(質; 본바탕)이 문(文; 아름다운 외관)을 이기면 촌스럽고 문(文)이 질(質)을 이기면 사(史; 겉치례만 잘함)하니, 문(文)과 질(質)이 적절히 배합된 뒤에야 군자이다.”
○ 野(야)는 야인(野人; 촌사람)이니 비루하고 소략함을 말하고, 史(사)는 문서를 맡은 자이니 견문이 많고 일에 익숙하나 성실성이 혹 부족한 것이다. 彬彬(빈빈)은 班班(반반)과 같으니, 물건이 서로 섞여 적당한 모양이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유여(有餘)한 것을 덜어내고 부족한 것을 보충해야 함을 말씀한 것이니, 덕을 이룸에 이른다면 그렇게 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이다.
○ 양시(楊時)가 말하였다. “문(文)과 질(質)은 서로 이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질(質)이 문(文)을 이김은 단맛이 조미(調味)를 받을 수 있고 흰색이 채색(采色)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지만, 문(文)이 이겨 질(質)을 없앰에 이른다면 그 근본이 없는 것이니, 비록 文이 있은들 장차 어디에 베풀겠는가? 그렇다면 사(史)하기 보다는 차라리 촌스러움이 나은 것이다. ”
雍也17章(옹야17장)
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 幸而免.
자왈 인지생야직 망지생야 행이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사는 이치는 정직하니, 정직하지 않으면서 사는 것은 (죽음을) 요행히 면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생리(生理)는 본래 정직하니, 망(罔)은 정직하지 않은 것인데 그러면서도 사는 것은 요행히 면한 것일 뿐이다.”
雍也18章(옹야18장)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자왈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를)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
○ 윤돈(尹焞)이 말하였다. “안다는 것은 이 도(道)가 있음을 아는 것이요, 좋아한다는 것은 좋아하되 아직 얻지 못한 것이요, 즐거워 한다는 것은 얻음이 있어 즐거워하는 것이다.”
○ 장경부(張敬夫)가 말하였다. “오곡(五穀)에 비유하면 아는 자는 그것이 먹을 수 있음을 아는 자이고, 좋아하는 자는 먹고서 좋아하는 자이고, 즐거워하는 자는 좋아하며 배불리 먹은 자이다. 알기만 하고 좋아하지 못하면 이는 앎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요, 좋아하기만 하고 즐거워함에 미치지 못하면 이는 좋아함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니, 이는 옛날 배우는 자들이 스스로 힘써 쉬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雍也19章(옹야19장)
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자왈 중인이상 가이어상야 중인이하 불가이어상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인(中人) 이상은 높은 것을 말해줄 수 있으나, 중인(中人) 이하는 높은 것을 말해줄 수 없다.”
○ 語(어)는 말해주는 것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마땅히 상대방의 높고 낮음에 따라 말해 주어야 하니, 이렇게 하면 그 말이 들어가기가 쉬워 등급을 뛰어 넘는 폐단이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 장경부(張敬夫)가 말하였다. “성인의 도(道)는 정(情)과 조(粗; 거침, 대강)가 비록 두 이치가 없으나 다만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반드시 그 재질에 따라 돈독히 한다. 중인(中人) 이하의 자질은 갑자기 너무 높은 것을 말해주면 그 말이 제대로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장차 망년된 뜻으로 등급을 뛰어넘어 자기 몸에 절실하지 못한 폐단이 있어서 또한 하등(下等)에 그치고 말 뿐이다. 그러므로 미칠 수 있는 바에 나아가 말해주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여 점차 높고 먼 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雍也20章(옹야20장)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번지문지 자왈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問仁 曰仁者 先難而後獲 可謂仁矣.
문인 왈인자 선난이후획 가위인의.
번지(樊遲)가 지(智)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 지(智)라 말할 수 있다.” 다시 인(仁)에 대하여 묻자, 또 말씀하셨다. “인자(仁者)는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니, 이렇게 한다면 인(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民(민) 또한 사람이다. 獲(획)은 얻음을 이른다. 인도(人道)의 마땅한 바에 오로지 힘을 쓰고 귀신의 알 수 없는 것에 혹하지 않는 것은 지자(智者)의 일이요, 일의 어려운 것을 먼저 하고 그 효과의 얻음을 뒤에 함은 인자(仁者)의 마음이니, 이는 반드시 번지(樊遲)의 결함에 따라 말씀해주신 것일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사람들이 귀신을 많이 믿으니 이는 미혹된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또 공경하지 않으니 능히 공경하되 멀리할 수 있다면 지(智)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말씀하였다. “어려운 일을 먼저 함은 극기(克己)의 일이니,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얻음을 헤아리지 않음은 인(仁)이다.”
○ 여대림(呂大臨)이 말하였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급하게 여기고 알기 어려운 것(귀신)을 구하지 않으며, 아는 바를 힘써 행하고 하기 어려운 바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雍也21章(옹야21장)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자왈 지자낙수 인자낙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낙 인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자(智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니, 지자(智者)는 동적(動的)이고 인자(仁者)는 정적(靜的)이며, 지자(智者)는 낙천적이고 인자(仁者)는 장수(長壽)한다.”
○ 樂(요)는 기뻐하고 좋아함이다. 지자(智者)는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유통하고 막힘이 없어서 물과 비슷함이 있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重厚)하고 옮기지 않아서 산과 비슷함이 있으므로 산을 좋아하는 것이다. 동(動)과 정(靜)은 체(體; 형체)로 말하였고 낙(樂)과 수(壽)는 효과로 말하였다. 동(動)하여 맺히지(막히지) 않으므로 즐거워하고, 정(靜)하여 일정함이 있으므로 장수하는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인(仁)과 지(智)를 체득하기를 깊이한 자가 아니면 이처럼 형용하지 못한다.”
雍也22章(옹야22장)
子曰 齊一變 至於魯 魯一變 至於道.
자왈 제일변 지어로 노일변 지어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齊)나라가 한 번 변화하면 노(魯)나라에 이르고, 노(魯)나라가 한 번 변화하면 선왕(先王)의 도(道)에 이를 것이다.”
○ 공자 당시에 제(齊)나라의 풍속은 공리(功利)를 급히(우선으로) 여기고 과장과 속임을 좋아했으니, 바로 패도정치[霸政]의 남은 습속이요. 노(魯)나라는 예교(禮敎)를 중히 여기고 신의(信義)를 숭상하여 아직도 선왕(先王)의 유풍(遺風)이 남아 있었다. 다만 어진 사람이 죽고 훌륭한 정치가 그쳐 폐지됨과 실추됨이 없지 못하였다. 도(道)는 선왕의 도(道)이다. 두 나라의 정치는 풍속에 아름답고 나쁜 차이가 있으므로 변화하여 선왕의 도(道)로 감에 어려움과 쉬움이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부자 당시에 제(齊)나라는 강하고 노(魯)나라는 약했으니, 누군들 제(齊)나라가 노(魯)나라 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노(魯)나라는 아직도 주공(周公)의 법제(法制)가 남아 있었고, 제(齊)나라는 환공(桓公)의 패도(覇道)로 말미암아 간략함을 따르고 공(功)을 숭상하는 정치를 하여 태공(太公)의 유법(遺法)이 모두 변해 버렸다. 그러므로 한 번 변화하여야 노(魯)나라에 이를 수 있고, 노(魯)나라는 폐지되고 실추된 것만 거행할 뿐이니, 한 번 변화하면 선왕(先王)의 도(道)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 내가 생각하건대, 두 나라의 풍속은 오직 부자만이 변화시킬 수 있었는데, 시험해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말씀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시행함에 있어 완급(緩急)의 순서를 또한 대략 볼 수 있다.
雍也23章(옹야23장)
子曰 觚不觚 觚哉觚哉.
자왈 고불고 고재고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난 술그릇(觚)이 모나지 않으면 모난 술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모난 술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觚(고)는 모난 물건이니, 혹자는 술그릇이라 하고 혹자는 목간(木簡)이라 하니, 모두 기물에 모가 있는 것이다. 모나지 않은 것은 당시에 그 제도를 잃어 모가 나지 않은 것이다. 고재고재(觚哉觚哉)는 모난 술그릇이 될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모난 그릇이 그 모양의 제도를 잃으면 모난 그릇이 아니니, 한 기물을 듦에 천하의 만물이 그렇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으로서 임금의 도리를 잃으면 임금답지 않음이 되고, 신하로서 신하의 직분을 잃으면 빈자리가 되는 것이다.”
○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사람으로서 인(仁)하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요, 나라로서 다스려지지 않으면 나라가 아닌 것이다.”
雍也24章(옹야24장)
宰我問曰 仁者 雖告之曰 井有仁焉 其從之也.
재아문왈인자 수고지왈 정유인언 기종지야.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 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자왈 하위기연야 군자 가서야 불가함야 가기야 불가망야.
재아(宰我)가 물었다. “인자(仁者)는 비록 (어떤 사람이) 그에게 우물에 사람이 빠졌다고 말해 주어더라도 (우물에 빠진 사람을 구제하고자 하여) 따라서 우물에 들어가겠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그렇게 하겠는가. 군자는 (딴 사람이 그 군자를 우물까지) 가게 할 수는 있으나 빠지게 할 수는 없으며, (이치가 있는 말로) 속일[欺] 수는 있으나 (터무니 없는 말로) 속일[罔] 수는 없는 것이다.”
○ 유면지(劉勉之)가 말하기를 “유인(有仁)의 인(仁)은 마땅히 인자(人字)가 되어야 한다.”하였으니, 지금 그것을 따른다. 종(從)은 우물에 따라 들어가 구제함을 말한다. 재아(宰我)는 도(道)를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여, 인(仁)을 행하다가 해(害)에 빠질까 근심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물음이 있었던 것이다. 서(逝)는 가서 구제함을 이르고, 함(陷)은 우물에 빠짐을 이른다. 기(欺)는 이치가 있는 것으로 속임을 이르고, 망(罔)은 이치가 없는 것으로 속임을 이른다. 몸이 우물가에 있어야 우물 안에 빠진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니, 만일 함께 우물로 따라 들어간다면 다시는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이치가 매우 명백하여 사람이 깨닫기 쉬우니, 인자(仁者)가 비록 사람을 구제함에 간절하여 자기 몸을 돌보지 않으나 응당 이와 같이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雍也25章(옹야25장)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자왈 군자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문(文)에 널리 배우고 예(禮)로써 요약(約)한다면 또한(道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 約(약)은 요약함이요, 畔(반)은 위배됨이다. 군자는 배움에 널리 하고자 하므로 문(文)에 있어 고찰하지 않음이 없고, 지킴을 요약하고자 하므로 그 행동을 반드시 예(禮)로써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도(道)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널리 문(文)을 배우고 예(禮)로 요약하지 않으면 반드시 한만(汗漫)함에 이를 것이니, 널리 배우고 또 능히 예(禮)를 지켜 규구(規矩; 법도)를 따르면 또한 도(道)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
雍也26章(옹야26장)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자견남자 자로불설 부자시지왈 여소부자 천염지 천염지.
공자께서 남자를 만나 보시자, 자로가 기뻐하지 않으니, 부자께서 맹세하여 말씀하셨다. “내 맹세코 잘못된 짓을 하였다면 하늘이 나를 싫어하시리라. 하늘이 나를 싫어하시리라.”
○ 남자(南子)는 위(魏)나라 영공(靈公)의 부인(夫人)이니 음란한 행실이 있었다. 공자께서 위(魏)나라에 이르자, 남자가 만나기를 청하니 공자께서 사절하시다가 부득이 만나신 것이다. 옛날에는 그 나라에 벼슬하면 그 소군(小君; 임금의 부인)을 뵙는 예(禮)가 있었는데, 자로는 부자께서 이 음란한 사람을 만나보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기뻐하지 않은 것이다. 矢(시)는 맹세요 所(소)는 맹세하는 말이니, 예컨대 “맹세코 최(崔), 경(慶)과는 함께하지 않겠다(所不與崔慶者)”고 말한 따위와 같은 것이다. 否(부)는 예(禮)에 합당하지 않고 도리를 따르지 않음을 이른다. 厭(염)은 버리고 끊는 것이다.
○ 성인(聖人)은 도(道)가 크고 덕(德)이 온전하여 가(可)함도 없고 불가(不可)함도 없으니, 약한 사람을 만나볼 적에 진실로 생각하기를 ‘나에게 있어 만나볼 만한 예(禮)가 있다면 저 사람의 악행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라고 여기신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자로(子路)가 헤아릴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거듭 말씀하고 맹세하신 것이니, 그가 우선 이것을 믿고 깊이 생각하여 터득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雍也27章(옹야27장)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자왈 중용지위덕야 기지의호 민선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의 덕이 지극하구나. 사람들이 (이 덕을) 소유한 이가 적은 지 오래이다.”
○ 中(중)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의 명칭이요. 庸(용)은 평상(平常)이다. 至(지)는 극진함이요 鮮(선)은 적음이니, 사람들이 이 덕을 소유한 이가 적은 지 지금 이미 오래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치우치지 않음을 중(中)이라 하고 변치 않음을 용(庸)이라 하니. 중(中)은 천하의 바른 도(道)이고 용(庸)은 천하의 정해진 리(理)이다. 세상의 가르침이 쇠퇴한 후부터 사람들이 중용의 도를 행하는데 흥기하지 않아서 이 덕을 간직한 이가 적은 지 오래된 것이다.”
雍也28章(옹야28장)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자공왈 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하여 가위인호.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 其猶病諸.
자왈 하사어인 필야성호 요순 기유병제.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만일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어[博施]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면[濟衆] 어떻겠습니까? 인(仁)하다고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仁)을 일삼는 데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인일 것이다. 요순(堯舜)도 오히려 이것을 부족하게 여기셨을 것이다.
○ 博(박)은 넓음이다. 仁(인)은 이치로 말하였으니 위(聖人)와 아래(賢人)에 통하고, 聖(성)은 지위로 말하였으니 그 극에 도달한 것의 명칭이다. 乎(호)는 의심하여 정하지 않는 말이다. 病(병)은 마음에 부족하게 여기는 바가 있음이다.
○ 공자께서 ‘이는 어찌 인(仁)에만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인이라야 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요순의 성인이라도 그 마음에 오히려 이에 대해 부족하게 여기는 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仁)을 구한다면 더욱 어렵고 더욱 멀어질 것이다.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부인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인자(仁者)는 자신이 서고자 함에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통달하고자 함에 남도 통달하게 하는 것이다.
○ 자기로써 남에게 미침은 인자(仁者)의 마음이니, 여기에서 살펴본다면 천리(天理)가 두루 흘러서 간격이 없음을 볼 수 있다. 인(仁)의 본체를 형상(형용)함이 이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다.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가까운 데에서 취해 비유할 수 있다면 인(仁)을 하는 방법이라고 이를 만하다.
○ 譬(비)는 비유이고, 方(방)은 방법이다. 가까이 자신에게서 취하여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가지고 타인에게 비유하면 그가 하고자 하는 것도 나와 같음을 알 것이니, 그런 뒤에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미루어 남에게 미친다면 이는 서(恕)의 일로 인(仁)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힘쓴다면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을 이겨내어 천리(天理)의 공정함을 온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의서(醫書)에 손발이 마비된 것을 불인(不仁)이라 하니, 이 말이 인(仁)을 가장 잘 형용하였다. 인자(仁者)는 천지의 만물을 한 몸으로 여기니, 자기 아닌 것이 없다. 만물이 모두 자기가 됨을 인식한다면 어찌 지극하지 못함이 있겠는가? 만약 자신에게 소속되지 않으면 자연 자기와 상관이 없게 되니, 마치 손발의 불인(不仁; 마비)함이 기(氣)가 이미 관통하지 않아 모두 자신에게 소속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널리 은혜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바로 성인의 공용(功用)인 것이다. 인(仁)은 지극히 말하기 어려우므로 다만 말씀하기를 ‘자기가 서고자 함에 남도 서게 하며 자기가 통달하고자 함에 남도 통달하게 하니, 능히 가까운 데에서 취해 비유하면 인(仁)을 하는 방법이라고 이를 만하다.’라고 하신 것이니 이는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이와 같이 인(仁)을 관찰하여 인(仁)의 본체를 터득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 정자(程子)가 또 말씀하였다. “논어(論語)에 ‘요순(堯舜)도 부족하게 여기셨다.’고 말씀한 곳이 두 군데이니, 널리 베풂이 어찌 성인께서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반드시 50세가 되어야 비단 옷을 입고 70세가 되어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성인의 마음에 젊은 자 역시 비단 옷을 입고 고기를 먹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다만 기름에 부족한 바가 있기 때문이니, 이는 그 베풂이 넓지 못함을 부족하게 여기신 것이다.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어찌 성인께서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다스림이 九州를 지나치지 못하였으니, 성인께서 사해(四海) 밖까지 함께 구제하고자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다만 다스림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니, 이는 구제함이 많지 못함을 부족하게 여기신 것이다. 이것을 미루어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찾아보면 부족함이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나의 다스림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곧 성인이 아니다.”
○ 여대림(呂大臨)이 말하였다. “자공(子貢)은 인(仁)에 뜻을 두었으나 한갓 고원(高遠)한 것을 일삼아 그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자신에게서 취하는 것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니, 행여 가까워서 들어갈 수 있을까 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仁)을 하는 방법이니, 비록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라도 또한 이로부터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