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목사님 아들 동인, 동신 순교 한 뒤 했던 설교
(1948년 12월 초)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 벧전 4:7-11
이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각 지방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한 말씀이다. 주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의 최대의 소망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보고자 원함인데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경고한 이 말씀은 베드로의 간절한 희구(希求:바랄 희, 구할 구)인 동시에 최고의 신앙이었다.
초대 교회에서는 서로 인사할 때 “마라나타”라고 했다. 그 뜻은 “주님은 오십니다.” 혹은 “주여 오시옵소서”이다. 얼마나 아름답고도 간절한 심정이 표현되었는가? 저들은 만날 때나 헤어질 때 “마라나타”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마라나타” 길을 가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마라나타”였다. 그들은 이 만큼이나 주님의 재림을 고대했었다.
그러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 맞을 준비를 보다 더 완전하게 권면하고자 하는 것이 베드로가 본문을 기록하게 된 동기였다.
1. 정신을 차리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첫째,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때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성경 66권 중 창세기는 천지 만물의 시작을 쓴 책이요, 요한계시록은 천지 만물의 종말이다. 우리에게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지나간 창세기의 사실이 아니요, 앞으로 올 계시록의 일이다. 시작되는 천지 창조 후에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은 인간 비극이 시작되었으나 만물의 종말이 되는 예수의 재림 후에는 인생에게 영생 복락의 세계가 시작될 것이니 만물의 마지막이 되는 예수의 재림은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이 소망의 때가 접근하니 정신 아니 차릴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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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께서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경고하신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 죄악의 밤은 깊어 예수님 재림하실 광명의 새 아침이 임박했으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하고 방탕하지 말며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정신 차려 주를 신봉하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2. 근신하여 기도하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둘째, 그리스도인은 근신하여 기도해야 한다.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노선지자가 있었다. 백여 세의 고령이나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밤낮을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 그의 생활이더니 아기 예수를 맞이하여 기쁨에 동참할 수가 있었다. 그의 생애는 금식과 기도뿐 구주 예수의 초림을 맞을만한 완전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우리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의 태도도 이러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교회가 죄로 정하는 것은 계명의 준수 여하에 둔다. 안식일을 성수하지 못하는 자에게 견책하며, 우상 섬기는 자를 책벌하고 부모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에게 권면하며, 7계명 범하는 자를 엄벌한다. 그러나 아무도 기도 아니하는 신자를 책망하는 자 없다. 사무엘 선지는 이스라엘 백성을 앞에 놓고 왕을 구하는 그들을 엄히 책망하면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겠다.“(삼상 12:23)고 약속하였다.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아니하는 것은 호흡 끊어진 생물과 같다. 이미 자신의 생명이 끊어짐은 물론 나아가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생명을 소홀히 하여 상실한 죄를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사로 생각하는 기도하지 않는 것은 대죄에 속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러나 기도하되 ”근신함으로 기도하라“고 하셨다. 정신 차리고 기도하라 하셨다.
주님 가신지 2천 년 오늘도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염원은 주님 재림이요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다. ”주여 언제 오시렵니까?“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기다리며 기도하다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밟은 전죄를 다시 되풀이 하게 될까 두렵다.
현대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는 교만에 찼다. 지식에 부자되어 신령한 지식을 거부하고 물질에 부요하여 하늘나라의 기업을 무시한다. 부족한 것 없이 가득 차 있는 심령에게 간절한 기원과 진실한 기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실상은 곤고하고 가난하며 눈 멀고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고 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으랴. 주의 재림을 맞이해야 할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부요한 자로 자처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찾아 나와 무릎 꿇는 자 적음이 슬픈 일이다. 주의 재림은 임박했다. 정신 차릴 때이다. 넉넉한 기도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자!
3.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할 것을 세 번째 명하셨으나, 제일 요긴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것이니 먼저 두었고,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대인(對人) 문제이니 다음에 두었다. 대인 문제 중 제일 긴요한 것이 곧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 최귀(最貴)한 사랑이 식어짐은 어찜인고? 기도 없이 심령이 고갈되고 강퍅한 마음에 사랑의 샘은 솟아나지 않는다. 기도는 주님 재림 준비의 마지막 요소인 동시에 사랑을 격발시키는 사랑의 샘을 솟아나게 하는 촉진제요 캄플 주사가 되기도 한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의 숨은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나오는 그 사랑,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죄인 위하여 몸 버리신 그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대상은 먼저 우리 구주 예수이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신 것을 내가 그의 본을 받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것 나도 사랑하고 예수께서 명령하시는 것 순종하고 예수께서 가신 곳에 그가 지신 십자가 지고 따라가는 것이 이것이 그를 최대한 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가 미워하시는 것 내가 미워하고 그가 싫어하신 것 나도 부인하여 그의 뜻을 좇는 방법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좋아하시고 사랑하신 것이 무엇이며 예수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우리들 죄인을 제일 사랑하셨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사랑하시되 그의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였으며 보내심 받은 인자 되신 예수께서는 그 몸을 버리시기까지 우리 인생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죄 그 자체는 미워하셨다. 음행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용서해 주시되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 명하신 것을 기억하라!
거년 여순 반란 사건 중에 일어난 아름다운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붉은 포도들이 여수 순천 온 거리를 아비규환의 거리로 만들고 광란할 때 한 국군 장교가 첩보의 사명을 띠고 평복 입고 잠입했다. 2, 3일후 저녁 때 목적을 달하고 귀대하려던 찰라 ”저 반동분자 잡아라“ 하는 고함과 함께 7, 8 폭도가 뒤쫓는 것이 아닌가. 다급해진 이 군인은 거리 모퉁이에서 서성거리는 붉은 완장 단 여인에게 ”숨겨 달라“ 애원했다. 이 여인은 두말 않고 자기의 치마 속에 군인을 감추고 집 추녀에 의지해 서니 폭도가 군인의 행방을 묻는다. 다행히도 폭도들은 여인의 가리키는 대로 어두운 골목으로 뛰어가고 군인은 무사히 귀대했다.
반란은 진압되고 이 국군이 거리를 지날 때 한 여인이 공산당에 협력한 혐의를 받아 경찰에 연행되어 가는 것을 보았다. 혹시나? 하고 보니 어둠 중에라도 눈 익혀 보았던 자기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서로 돕고 위기 중에서도 사랑으로 서로 구해주었다는 미담이다.
형제를 사랑하고자 할 때 내 마음 먼저 기쁘고 미워하는 마음 생길 때는 내 마음이 먼저 괴로워진다. 사랑은 남을 위해 유익하기 전에 내게 먼저 유익한 것이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2-13)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이 사실이다. 바울 사도께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이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고전 13:5)
사람들은 남의 허물 보기를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허물을 찾아내어 매장하기를 열심히 한다. 그러나 사랑이 있을 때 잘못, 허물, 실수 모든 것을 덮을 수 있고, 용서하게 되고 다시는 전죄를 밟지 않도록 간절한 권면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죄함을 받고 구원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허다한 죄를 덮어주고 가리워줌으로가 아닌가.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시 85:2)
4. 은혜를 맡은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또 한 가지 일이 남았음을 제시해 준다. ”각각 은사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주님 앞에서 받은 은사는 말할 수 없이 크고 또 깊다. 받은 은사대로 있는 재주와 물질 드려 주님의 교회를 봉사하고 성실하게 섬겨 주님 다시 오셔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 하시는 칭찬을 듣도록 하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 주님의 재림은 모든 것이 임박함을 증거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정신 차릴 때가 아닌가. 기도하고 열심히 서로 사랑할 때가 아닌가. 아직 남은 기회에 재능 다하여 부지런히 봉사하사이다.
(산돌 손양원 목사 자료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