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발레리 브리우소프의 소설 <불의 천사> 대본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초연 1954년 파리, 콘서트 버전 / 1955년 베네치아, 오페라 버전 배경 16세기 독일, 종교재판에 의한 마녀 사냥이 자행되던 시절
<2021 빈극장 / 124분 / 한글자막> 빈 라디오 심포니 & 아르놀트 쇤베르크 합창단 연주 / 콘스탄틴 트링크스 지휘 / 안드레아 브레터 연출 레나타...........아우스리네 스툰디테(드라마틱 소프라노) 루프레히트.....보 스코부스(바리톤) 야콥 글로크.....앤드류 오웬스 아그리파.....니콜라이 슈코프 수녀원장.....나타샤 페트린스키 ---------------------------------------------------------------------------------------------------------------------- === 프로덕션 노트 === 프로코피에프: 오페라 <불의 천사>, 2021년 테아터 안 데어 빈 실황
마녀로 몰린 불행한 중세 여인의 이야기를 정신병동 배경으로 재해석하다
프로코피에프는 6년에 걸쳐 <불의 천사>(1927)를 작곡했지만 공연할 수 없었다. 천사를 사랑하는 환상에 사로잡힌 한 여인이 수녀가 되었다가 종교재판에서 화형 선고를 받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바티칸이 불편해했고, 프로코피에프는 별 수 없이 악상을 교향곡 3번에 전용했다. 작곡가 사후에야 초연되어 지금은 그의 가장 악마적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본 공연은 팬데믹 시기에 오히려 가장 많은 영상물을 제작 중인 테아트로 안 데어 빈 실황인데 독일의 여류연출가 안드레아 브레트는 중세 이야기를 차가운 정신병원 배경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재해석을 넘어 비범한 재창조 수준이다. 리투아니아 소프라노 아우스리네 스툰디테는 광기에 휩싸인 여인 그 자체이고, 덴마크 바리톤 보 스코부스도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했다.
프로코피에프의 초기 오페라 <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이 동화적 오페라의 걸작이라면 <불의 천사>는 어두운 악마적 걸작이다. 프로코피에프는 이 오페라가 바티칸에서도, 크렘린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보고 주요 악상을 취해 교향곡 3번(1928)을 만들었다. 지금은 교향곡보다 오페라 쪽이 한층 높이 평가된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쾰른의 처녀 레나타는 어릴 적부터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불의 천사 마디엘과 사랑하는 사이이며 그와 육체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랑기사 루프레히트가 그녀를 사랑하여 보호자를 자처하지만 레나타는 하인리히 폰 오터하임이라는 백작이 인간으로 나타난 마디엘이라며 찾아다닌다. 레나타는 루프레히트의 도움으로 드디어 하인리히를 만나지만 그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절망한다. 이에 루프레히트가 결투를 신청하는데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큰 상처를 입는다. 그런데도 레나타는 루프레히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수녀원에 들어간다. 수녀원에서도 레나타 때문에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나자 종교재판관이 온다. 종교재판관은 퇴마 의식으로 레나타의 환상을 고치려하지만 실패하자 그녀를 마녀로 규정하고 화형에 처하도록 판결한다.
원래 대본의 배경, 캐릭터를 완전히 재해석해 마치 새로운 드라마처럼 만드는 연출을 '레지테아터'라고 한다. 연극 강국 독일에서는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으며 오페라에서는 연극 연출자가 맡았을 때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안드레아 브레트의 해석은 원작의 중세를 근대로, 독일 각지로 이동하는 이야기를 정신병동이라는 제한된 공간으로 바꾸었지만 오히려 원작의 상황을 증폭시켜 관객은 물론 출연자들에게도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보기 드문 명연출이다.
프로코피에프의 <불의 천사 The Fiery Angel Op.37> 글 신중완(성모한의원장, 자유기고가)
프로코피에프(1891∼1953)는 희극 오페라 <3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을 완성한 1919년 말, 상징주의 작가 브뤼소프의 소설 <불의 천사>를 읽고 영감을 받아 즉시 대본을 작성했다. 그러나 작곡(1919∼1927)은 순조롭지 못했다. 1922년 12월까지 전 5막의 피아노 총보를 완성했지만, 그 후 오케스트레이션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28년 6월 14일 파리에서 지휘자 쿠세비츠키가 <불의 천사>의 제2막을 발췌하여 연주회 형식으로 공연했다. 그리고 1954년 11월 25일 샤를 글뤼크가 지휘하는 파리의 방송 교향악단과 레네 아리크스 합창단이 연주회 형식의 전곡 공연을 올렸다. 오페라에 의한 초연은 1955년 베네치아에서 이루어졌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작곡부터 초연까지 난임과 난산의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 중에 작곡가는 사망했다.
1928년 프로코피에프는 이 작품의 오페라 공연의 전망이 서지 않자, 이 작품을 소재로 모음곡을 만들다가, 작품 속 테마가 소나타 형식의 주제에 알맞다고 생각하여 교향곡 제3번 c단조 Op.44를 작곡하였다. 레나타의 환각의 테마와 마디에르에 대한 사랑의 테마, 기사 루프레히트의 테마와 루프레히트의 사랑의 테마, 그리고 제3막의 막간은 ▲제1악장에, 제5막의 서두와 파우스트의 테마는 ▲제2악장에, 제2막의 강신술 장면과 제3막 제2장의 일부는 ▲제3악장에, 제3막 막간의 아그리파의 테마와 제2막 서두는 ▲제4악장에 주로 채용되었다. 프로코피에프는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교향곡 제3번은 나에게 있어 최상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불의 천사’ 교향곡이라고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주된 주제의 소재는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교향곡 제3번이 순수한 교향곡으로 인식되어지기를 바란다.” 실제로 교향곡 제3번은 최상의 교향곡이다. 하지만 오페라 <불의 천사> 또한 최상의 오페라이다.
오페라 <불의 천사>는 <3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과 무척 대조적인 성격의 작품이다. 마술, 점성술, 아그리파, 메피스토펠레스 등과 같은 난센스의 유머가 비슷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몹시 중압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오페라의 무대는 16세기의 독일, 종교재판관에 의해 마녀 사냥이 펼쳐지던 시대 상황 속이다. ‘불의 천사’ 마디에르의 환각에 사로잡힌 ▲레나타(드라마틱 소프라노), 마디에르의 화신으로 생각되는 ▲하인리히 백작(묵역黙役), 그리고 레나타를 사랑하는 기사 ▲루프레히트(바리톤)의 삼각 관계와 심리 갈등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그런데 단순한 삼각 관계만은 결코 아니다. 레나타의 신비 세계와 그녀를 둘러싼 현실 세계가 성(聖)과 속(俗), 명(明)과 암(暗), 선(善)과 악(惡), 천사와 악마의 대결로 갈등 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은 성과 속, 명과 암, 선과 악, 천사와 악마 그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원화된 세계가 구획설계된 것은 아닐까. <불의 천사>의 선율은 폭넓은 음역에 걸쳐 풍부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지도동기와 그 전개방식은 극적 긴장과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
이 오페라의 주요곡은 다음과 같다. ▶제1막, 레나타의 긴 모놀로그 <내가 여덟 살 때에 천사 마디에르가 나타났어요>: 레나타가 천사 마디에르와 하인리히 백작을 만나게 된 경위를 길게 이야기하는 대목. 서정적이고 색채적인 표현이 환각처럼 스며든다. ▶제3막 제1장, 레나타의 아리오소 <나를 용서하세요, 마디에르>: ‘불의 천사’ 마디에르와 하인리히 백작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을 느끼며 부르는 노래. ▶제3막 제2장, 레나타의 아리아 <당신은 사랑의 힘으로 죽음과 맞섰어요>: 빈사 상태의 루프레히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데 갑작스레 관능의 향기마저 느껴진다. 추천 DVD는 발레리 게르기예프(1953∼)가 지휘하는 199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키로프 오페라 공연 실황 판(SPECTRUM DVD, 한글자막)을 권한다. 환각과 욕망에 사로잡힌 여주인공 레나타 역에는 갈리나 고르차코바(1962∼)가, 헌신과 열정으로 레나타를 사랑하는 루프레히트 역에는 세르게이 라이페르쿠스(1946∼)가 절창하고 열연하였다. 데이빗 프리만의 연출과 데이빗 로저의 미술과 마린스키 기예단(Marinsky Acrobatic Troupe)의 곡예는 레나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각 세계를 표현하고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동일한 연주가 CD로도 나왔는데, 가능하면 DVD로 감상할 것을 권한다. 훨씬 더 생생한 감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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