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련꽃 그늘 아래서
한 창 훈
“아이구흐흐 허리야.”
음암댁은 매듭지어 놓은 머릿수건을 풀며 허리를 펐다. 불과 오 분 전에 훔쳐냈건만 그새 이마와 목덜미에 땀이 도랑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 여름도 아닌디 웬 더위여.”
목덜미를 밀던 수건을 축축해진 젖가슴 속으로 집어넣으며 두 이랑 너머에 있는 지은네를 바라보았다. 코를 박고 고춧모를 심고 있던 지은네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뽑아 올린다.
“예편네가 뭔 눔의 물이 그리 많어.”
하며 씨익 웃는다. 웃는 폼이 쉬고 싶다는 눈치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오전 내내 두 마지기* 마늘밭 매고* 점심 먹은 뒤 지금까지 고춧모를 심고 있으니 어지간한 일꾼도 나가떨어질 판이었다. 젖가슴 응달 부분이 한층 젖었건만 음암댁은 시원하게 닦질 못하고(가려줄 나무가 변변찮아 동서남북 환하게 틔어 있는 곳이라) 가슴 초입에서 뭉그적거리다 만다. 그러면셔 해 지기 전에 해야 할 오늘의 일감, 남은 일곱 이랑의 고추밭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갈아 엎어놓은 연갈색 흙이 사람의 수고로움을 기다리고 있고 고랑마다 막걸리병을 잘라 만든 배양 화분의 어린 고춧잎들은 축 늘어져 있다.
게으른 학동들 책장만 넘기듯 그녀도 온종일 남은 밭이랑만 헤아린다. 천성 이 게으르지 않건만 유난히 더위 타는 체질인 데다 초여름 따스한 햇살이 몸을 노혼하게 만들어 근력*이 달렸다. 그럴수록 지은네의 존재가 새롭다.
지은네는 음암댁의 집에서 세를 산다. 품삯을 받는 일꾼이 아니라는 소리다. 주인집 일 도와주는 셋방살이꾼치고 내 일처럼 열심히 하는 이 없지만 지은네는 달랐다. 기골이 장대하고 기운이 실한 장정 못지않은 데다 겁내는 일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사람이 넉넉해 성격이 화통하고 말이 풍성했다. 초봄 거름 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못자리, 모내기에 마늘 옥수수 깻잎 생강 고추 밭일 등 그녀는 사시장철 동원되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싫다고 몸을 아낀 적이 없었다.
된통 고된 일을 하고 난 날이면 요즘 놉*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고 있는 음암댁이 안 받을 걸 뻔히 짐작하면서 만 원짜리 두장을 건네기도 한다.
“됐네.”
“그래도. 지은네가 받어야 또 시키지.”
“그럼 쌀로 줘.”
마늘걷이 하면 마늘이 노임*이요 옥수수걷이 하면 옥수수가 일당이었다. 오늘처럼 맨밭일이면 삼겹살에 밥 한 그릇이 하루 노동의 대가로 오를 일이다. 지은네는 호미를 밭고랑에 푹 찔러 넣고 다가온다.
“어이구, 그리 깔작깔작 닦덜 말고 벅벅 문질러. 그리 닦어놔야 서방이 밤마다 으리번쩍 내 물건 봐라. 광난다, 오매 좋은 거, 하지.”
“이렇게?”
음암댁은 셔츠의 목구멍을 잡아당겨 생겨난 구멍 깊숙이 수건을집어넣고 힘주어 문지르며 깔깔 웃는다. 사실 그녀는 그런 푼수를 떨 줄 몰랐다. 사철 수건 뒤집어쓰고 일할 줄만 알았지 사람 웃길 줄도 모르고 농담도 서툴렀다. 그런데 지은네하고만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남이 훔쳐보기 좋을 만한 행동이 서슴없이 나오곤 했다. 용기가난다고 할까, 아니면 사춘기 시절 앞뒤로 까진 친구들 따라 극장에 갔을 때의 감칠맛 같다고 할까. 아무튼 생각해보면 스스로 지켜온 품위가 무너지는 듯해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무너지는 속도가 순식간이
라 그 순간에는 느끼지를 못하는 거였다.
“그람, 지은네도 광냈어?”
“나야 광내봤자 써먹을 때가 있어야지.”
“올 때가 거진 됐잖남.”
“쳇, 그깐 인종.”
지은네가 짜증나는 얼굴을 한다. 지은 아빠는 분당 신도시 공사판에 있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오는데 다녀간 지가 거진 달을 채워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땀을 닦고 나서도 밭이랑에 몸을 구부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춧모는 데친 시금치 모양 보기에도 영 말이 아니다. 바람 한 점 없다.
아침저녁으론 아직 시원한 기운이 돌지만 한낮은 낮잠 자기 좋을 만치 후텁지근해 한여름 뺨치는 날씨이다. 얇은 구름이 산꼭대기에 걸쳐 있고 아직 남아 있는 황사 기운으로 하늘이 뿌옇다.
논과 밭 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들판 너머 서해안 시대의 주역으로 발돋움한다는, 그러나 아직 변변한 백화점 하나 없어 나가봤자인, 그래서 나다니기만 성가신 도시가 가늘게 누워 있고 그곳에서 튕겨져 나온 자동차들이 국도를 따라 반대편 쪽으로 줄을 이었다.
멀리 산 아래 아파트 단지까지 널려 있는 밭은 푸름이 더해가고 있고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논은 긴 휴식에서 깨어나 일 년의 노동을 준비하고 있다.
두 사람은 밭가에 있는 감나무 아래에 앉았다. 제법 물이 오른 감나무 잎이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하유, 벌써부터 더우니 어떻게 살까이.”
“참말로 벌써 여름 같네.”
“저것들 언제 물 대주고 약 하고 할까. 모내기도 날 잡았고.”
논과 밭을 바라보는 음암댁의 얼굴에 잔주름이 잡힌다. 끝없이 생겨나는 일이란 뒤집어 보면 그래도 땅이 있고 농사가 있어 벌이가 된다는 소리이다. 시집와 귀밑머리 풀고부터 지금까지 해오는 게 그놈의 논일 밭일인데 새삼 푸념을 내뱉는 것은 지은네 들으라는 뜻이다. 음암댁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존재인 지은네가 일전에 보험 회사 운운했기 때문이었다. 달포* 전이었다.
“지은 아빠 벌이야 뻔하고…… 날도 풀리고 희은이도 컸으니께 싸묵싸묵 돌아댕겨 봐야지. 집구석에만 있으면 돈이 생기겄나 밥이 생기겄나.”
“돌아댕긴다고 돈이 금방 벌어지남.” '
텃밭에서 돋아난 상추를 솎아내며 별생각 없이 대꾸했다.
“저기, 우리 집 자주 댕기는 이 있잖어. 나보다 나이 어린 이모 말여. 그이가 보험회사를 댕기는데 몇 건만 물어도 기본 월급하고 해서 사오십 만 원은 한댜.”
음암댁은 속이 뜨끔했다. 지은네가 나다니면 누구보다 나은 실적을 올릴 거였다. 고향은 남쪽 어디지마는 이곳에서 정착한 지가 거진 십 년이어서 아는 이도 솔찮고* 시장에서 리어카 커피 장사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배짱이 있는 데다 끈기가 고래 힘줄이라 누구든 손아귀에 걸려들면 얼을 쏙 뻬놓든지 지레 질리게 만드는 여자였다. 큰애와 근 십 년 터울의 둘째딸을 낳고 키우느라고 한 이 년 착실히 들어앉았던 거였다
‘아, 밥이야 일하면 내가 쌀 대줄 테고 반찬이야 줄줄이 널린 푸성귀 닥치는 대로 뽑아다 데쳐 먹구 무쳐 먹구 하면 될 텐데, 뭐라 힘들게 나다닐라구 그랴 …….’
그러나 음암댁은 그런 말을 못 했다. 하고 싶어도 차마 못 한다. 속 보이는 게 싫고 한 번 마음먹으면 끝을 보고야 마는 지은네의 활동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걱정이 되었다. 동사무소 나가는 남편이 조석으로 농사일을 거둘지만 지은네가 없으면 너른 들판 일은 결국 그녀 차지인 것이다.
물러터질 대로 터진 남편은 이곳에서 농고를 나왔다. 세상의 재미란 오직 농사였다. 학교 다닐 때 해마다 가족 사항, 재산 정도(냉장고가 있느냐 전축은 없느냐 따위의), 집안 식구 중에 누가 죽고 누가 살아 있는가, 취미 특기는 뭔가 따위를 조사하는 서류가 있다. 남편은 중학교 삼 년, 농고 삼 년 도합 육 년을 한 번도 안 뻬먹고 취미와 특기란에 꼬박꼬박 농사라고 썼다 한다. 친구들이 소풍 가는 궁리할 때면 집안 거름 내는 일 걱정하고, 우르르 변소로 담배 피우러 몰려가면 밭에서 담뱃잎 뜯어 말릴 일 걱정했다던 위인이었다. 심지어 모내기나 바심* 철에는 아예 학교를 빼먹거나 조퇴를 했을 정도로 이리 봐도 농사, 저리 봐도 농사, 타고난 농군이었다.
그런 남편이 9급 행정직 공무원이 되어 동사무소씩이나 다니게 된 것은 오로지 음암댁의 베개송사* 덕분이었다. 몇 해 전 농어민 후계자들에게 9급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물론 기회야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있지만 특별 채용으로 기본적인 시험만 치르게 했었던)가 생겼었다. 남편은 벌써부터 벌벌 떨었다. 나이 먹어 공부도 공부려니와 넥타이 매고 하는 일은 꿈도 꿔보지 못했노라고 발뺌을 했다. 앞뒤로 꽉 막혀 기가 더욱 막히는 발언들을 음암댁은 묵살하고 나라의 녹을 먹게 되는데 못 할 일이 뭐 있느냐고 따지고 대들고 눈물로 하소연하고 끝내는 잠자리에서 저고리 끈을 풀지 않으며 투쟁하여 남편을 공무원으로 올려놓았다.
일 자체야 어려운 게 없었는지 남편은 그런대로 동사무소 직원일을 착실히 해나갔다. 위인이 워낙 순해빠져 나고 자란 이곳 떠나기를 무척 꺼려하여 간혹 출장이다, 교육이다 해서 타지로 가야 할 때면 전날부터 공연스레 불안하여 잠을 설치곤 했지만.
흙투성이 속에서 자라난 남편을 어엿한 공무원 만들고 나니 음암댁은 배포 든든한 데다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바깥양반 뭐 하시냐는, 아이들 학교에 가 선생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농사져유’와 ‘공무원 하시네요’ 대답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우선 아이들 기를 살려주어 부모로서 역할을 다한 듯하고 스스로의 격을 확인해보는 삼삼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50cc짜리 오토바이를 몰고 부우웅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소 먹이는 것부터 해서 온갖 논일, 밭일이 태산처럼 쌓여 조용히 그녀의 처분만을 기다렸다. 물론 퇴근하기가 무섭게 달려온 남편은 곧 바로 작업복 갈아입고 덤벼들지만 하루 종일 혼자서 일을 할 때면 부아도 나고 짜증도 일었다.
그런 사정이기에 그녀는 더욱 지은네를 기웃거렸다. 지은네를 구슬려 일올 하면 우선 심심하지가 않고 또 워낙 일을 잘해 덕을 보고 더군다나 따로 돈을 주는 것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털 뽑아 이불 만들고 등지 털어 불 때는 격이다. 그런 지은네가 회사를 나다닌다고 생각하자 일순 앞이 캄캄해지는 거였다.
이래저래 앞이 암담한 음암댁은 연달아 앓는 소리를 내뱉는다.
“도시에서 허연 얼굴 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맘 모를 겨.”
“아, 니미. 이 넓은 땅에 저 좋은 집에 뭐가 부족해서 그래?”
지은네가 같잖다는 표정을 한다.
“그래두 흙 파고 사는 신세가 벨수 있남.”
“웃기네. 저 땅 돈이 월만디. 우리같이 세 사는 사람도 있는디, 너무 그러면 못써.”
지은네의 얼굴에 강한 기운이 실린다. 음암댁은 입을 다문다. 지은네를 무조건 좋아하지만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런 것이다. 말을 하다 보면 당신은 집과 땅이 있는 주인이고 나는 세 사는 신세임을 강조하곤 한다. ‘누가 저 못나서 세 살랬나’ 고까움이 마음속으로 일지만 그런 말은 친정 식구들에게나 할 것이었다. 있는 이들은 걱정을 해도 즐거운 법. 그런 기분이라 굳이 이기려 하지 않는다.
“아니, 지은 아빠 올 때가 아직 안 됐남?”
음암댁은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묻는다. 흔히 물어보는 말이지만은 오늘은 좀 달랐다. 지은 아빠를 거듭 강조해서 자꾸 밖으로 나가려는 지은네의 마음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일전에 지은 아빠가 내려왔을 때 그들 부부는 그 문제로 대판 싸움을 했다. 음암댁이 소여물 핑계를 대고 우사* 곁에서 슬쩍 들어보니
“당신 벌이 늘 뻔한데 이래 갖고 언제 집 한 채 장만하겄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애 딸린 예편네가 뭐 하러 나돌아댕겨.”
싸움은 진작 시작됐는지 울타리를(음암댁네가 원래 살던 집을 세주고 울 밖에 새로 집을 지었으므로) 넘어오는 목소리가 제법 컸다.
“애도 다 컸잖아. 돌 지난 지가 언젠데.”
“지랄하네. 인자 돌 지난 애보고 다 컸다고?”
“아, 애야 내가 업고 다니면 될 거 아니야.”
“니기미. 나돌아 댕기는 여자들 뻔한 거야 너도 싸돌아댕기면 뻔해, 알어?”
“어디서 바람난 년들만 구경 했나. 자기가 싸돌아댕기면서 그런 년들하고만 어울린께 엉뚱한 지 마누라도 그렇게 보이는구만. 아따 잘한다. 그런 년 놔두고 왜 나보고 지랄이야.”
“뭐 어째? 지랄이라니, 지랄이라니 .”
한 푼이라도 더 벌어 가계 보태겠다는 일념과 못 벌어도 좋으니 알뜰한 가정을 가꾸자는 마음, 어누 한쪽도 버릴 의견 아니요 철든 심사이건만 왜 싸움은 엉뚱한 쪽으로 발전하는지.
“당신 벌이 몇 푼이나 된다고 위세야. 쥐뿔이나, 그것도 번 거라고 저 술 먹고 싶으면 술 사 먹고, 아, 놀고 싶으면 놀고 하는 주제에.”
“뭐 주제? 한 달 동안 좆 빠지게 일하고 온 남편보고 뭐, 말 다 했어?”
고함은 도를 넘고 애는 앙앙 울어댔지만 음암댁은 말리지 않았다. 부부 싸움 칼 들기 전에는 말리는 법 아니라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해서라도 지은네가 집에 붙어 있어주기를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은 아빠는 다음 날 터미널로 가면서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하여간 보험회산가 뭔가 한다고 나돌아 다니기만 해봐. 그 자리로 내 짐 싸가지고 내려와 버릴 텡께.”
“아이구, 우리 지은 아빠 마누라 생각하는 것 점 봐. 하여간 끔찍햐. 우리 신랑도 점 보고 배워야 하는디.”
마침 현관을 나온 음암댁은 웃음을 흘리며 응원을 보냈다.
“얼른 가기나 해.”
등을 미는데도
“한 이 년 착실히 붙어 있는갑다 했더니 또 발병이 도져 싸돌아댕길라고…….”
끝까지 자물쇠를 채웠다.
그렇게 간 지가 근 한 달. 실제 지은네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남편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남편이 일 안 하고 내려와 버린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들이 둘째 희은이를 갖기 전, 그러니까 두 해 전 지은네가 시장골목에서 리어카 커피 장사를 할 때였다. 한 달여 남편 몰래 장사를 다녔는데 결국 들통이 났다. 천안에서 일을 하던 남편이 쫓아와 당장 그만두라고 윽박질렀다. 지은네는 지은네대로 한 달 동안 고생고생해서 안면 트고 단골 잡아놔 이제는 벌이가 솔찮다고 버티었다. 결국 지은 아빠는 현장을 작파하고* 내려와 방구들을 지고 누워 손가락 하나 꿈쩍 않는 시위를 벌였고 보름을 버티다가 지은네가 항복을 한 전례가 있었다.
배추흰나비가 팔랑팔랑 하늘에 포물선을 그어 댄다.
그대에 가슴에 얼구흐르를 묻꼬 나는 울고 시펴어라……
지은네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하다가도, 빨래나 청소를 하다가도, 심지어는 희은이 젖을 먹일 때도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도 풍부한 데다 힘줄 곳엔 힘을 주고 처지는 곳은 처지는 대로 넘어갈 줄을 알아 제법 구성지다는 평을 들었다.
“참, 나 노래 점 알려줘.”
음암댁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비 내리는 호남썬 완행 여얼차예에 흔들리느은 차짱 너머로……
어느새 하나를 끝내고 못 들은 척 다음 노래로 넘어가고 있었다.
“지은네, 전국노래자랑에 한번 나가볼텨? 우리가 지은이 엄마 화이팅 플랭카드 써가지고 갈 테니께.”
“만날 쑨 없어도 잊지는 말아요오. 아, 일없어. 당신을 싸랑했어요.”
귀찮다는 대답. 지은네가 노래할 때는 보통 그런 태도이다. 그럴 때마다 음암댁은 조용히 듣든지 흥얼흥얼 따라 부르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사실 자존심도 상한다. 음암댁은 여고 시절 교내 합창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3학년 5반 출신이다. 물론 그녀도 당당히 소프라노로 참가했었다. 무슨 노래를 해도 부르기 좋고 듣기 좋았던 시절. 그녀는 시집온 지 십육 년이 됐지만 아직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인근 음암면에서 나고 자라 중학교를 마치고 이십 리 유학 왔던 서산여고 시절. 꽃만 보면 꺾어 책갈피에 꽂았으며 구르는 나뭇잎만 봐도 웃는다는 나이답게 자질구레한 것 가지고도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리던 때였다. 삼 년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는 졸업과 동시에 말짱 까먹어 버렸지만 총각 선생 누구와 1반 여시 같은 누구가 서로 짝짜꿍이라는 둥, ‘낙엽 지던 그 숲 속에’를 외우다가도 이수만 새 노래는 어떻다는 둥을 따지던 그때 그 시절. 그리고 개근상 말고는 유일하게 받아본 교내 합창 대회 최우수상.
「목련꽃 그늘 아래」를 불렀었지. 그것 말고도 「청산에 살으리라」도 있었고 「동심초」 「보리수」 「기다리는 마음」도 있었고…… 열린음악회 같은 데서 가곡 부르는 이가 나오면 귀가 솔깃해지지만 듣고 있노라면 뭔가 허전하고 섭섭해졌다. 대한민국에서 점잖은 노래라면 내로라하는 이들인데도 마음에 꽉 들어차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는 그것이 시집와서 아들 둘 낳고 시어머니, 남편 봉양하고 지천으로 널린 일하며 청춘을 보내버린 탓이라고 생각했다. 여고 졸업하고 한 해를 집에서 신부 수업 하다가 당숙모 친구의 친구를 매파*로 선을 보았었다. 똑같은 촌구석이긴 하지만 남자 착실하고 논밭 합해 열 마지기 자작농이라 주위에서 적극 권했었다.
“늬 남편은 아들 형제지만 대대로 손이 귀한 집이란 겨. 그저 눈 딱 감구 아들만 쑥쑥 놔주면 니 신세 풀린 겨이.”
친정엄마의 간곡한 바람대로 그녀는 시집오던 해로 불쑥 큰아들 일호를 낳았고 오 년 터울로 둘째아들 이호를 낳았다. 아울러 시아버지에게 지극 정성을 쏟았다. 평소 며느리에 대해 흡족하게 생각해오던 시아버지는 세상 버리기 직전 평생을 한량으로 살아온 성깔대로 땅을 며느리 명의로 이전해주었다. 음암댁은 아무 소리 않고 그것을 받았다. 시동생 결혼할 때도 그녀는 손을 아꼈다. 그러니 시어머니와 사이가 나뿔 수밖에 없었으나 남편 성품의 내림이 모친 계보라 순한 시어머니는 대놓고 까탈 부리지를 않았다.
생각해보면 땅 파는 수고쯤이야 젊은 나이에 땅문서와 고방* 열쇠를 차지하고 앉은 그녀 입장에서는 감당할 만한 거였다. 그래도 가끔 청춘을 돌이켜보는 버릇은 나이 탓만은 아닐 거였다. 그렇다면 그런 가곡을 들으면 더 쓸쓸하거나 우울해지거나 해야 하는데 왜 그런 감정도 들지 않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여고생의 목소리.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맑고 순수한 목소리. 사랑하는 내용도 추측이요 이별하는 장면도 짐작이건만 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면 자신이 노랫말 속의 주인공인 것처럼 가슴이 벌렁거리기도 하고 축축해지기도 했었다. 노래 하나로 온갖 감정을 느꼈던 그 시절은 어디로 갔는가.
가곡을 좋아했던 그녀로서는 언제나 노래에 대해서 한 수 접힐 수밖에 없는 뽕짝 전공의 지은네에게 일종의 질투심이 있었다.
신토부리이 신토부리이 신토부우리야, 너는 누구냐아……
지은네는 숫제 메들리로 넘어가고 있었다. 음암댁은 조용히 듣고만 있다. 따라 부르기에는 이미 늦었다.
살아가기 위한 노동 다음으로 가까운 게 노래 아니겠는가. 사람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 끝없이 맞닥뜨리는 고난과 무수한 고비고비마다 소리가 있고 노래가 있다. 사는 이들은 숨을 쉰다. 일이 힘들면 숨이 차고 슬픈 일이 있으면 끙끙 앓는다. 기쁘거나 신나거나 괴롭거나 우울하면 호흡이 제각각 변하는데 거기에 감정이 실리면 바로 박자가 되고 소리가, 노래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즐거움을 배로 늘려주고 슬픔은 어루만져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거워라 노래를 부르고 슬프면 슬프다고 아이고 데고 소리를 한다. 고된 일을 할 때면 밀방아* 길쌈*에 육신이 다 해졌노라고 사설을 한다.
고초당초 맵다 한들 시집보다 더할쏜가 떠나간다 간다간다 서방님 따라 나는 간다……
평생 들놀이* 한 번 따라가 보지 못한 친정어머니의 시집살이 노래를 음암댁은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서슬 푸른 시집살이를 참았다고 했다. 사람 마음이란 요사스러워 겉으로 내뱉으면 화도 풀리고 서러움도 잦아드는 법. 맛있는 음식도 자꾸 먹으면 질리고 정든 남정도 귀찮을 때가 있는데 노래는 같은 것을 평생 부르고 들어도 싫지가 않은 게 그런 이유 아니겠는가.
그런데 음암댁은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 노래가 잘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분위기도 잡을 줄 알고 음정 박자도 다른 이에 비해서 처지지도 않았다. 허나 막상 사람들 앞에 서기만 하면 우선 첫 음정 잡기가 힘들었다. 설사 간신히 음정을 잡았다 해도 도무지 다음 가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길 때문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혼자 노래 부른다는 게, 더군다나 말똥말똥 앉아 관찰하듯 바라보는 좌중들의 눈길을 멀거니 쳐다보며 노래를 부른다는 게 한여름 파리 빠진 육개장 그릇처럼 영 개운치가 않았다. 나는 합창 체질인가 벼. 그런 생각도 했었다. 눈을 감고 부르면 그런대로 하겠는데 그렬 때면 사람들이 그냥 두지 않았다.
이야, 폼 좋고. 김수희 쌍뺨 치네.
운다 울어. 목살 떨리는 것 봐.
탓에 눈감고 끝까지 불러본 적이 없었다. 아니, 반에 반도 불러보지 못했다. 부끄러워 까르르 웃으며 도중에 손을 내저은 게 다였다. 그래서 혼자 부르는 게 좋았다. 목욕탕이나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의 자전거 위가 그녀의 무대였다. 아무도 없는 마을 길을 자전거 타고 올 때면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그러니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수밖에 .
당연히 집안의 가수는 지은네였다. 음암댁은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주욱 뽑아 올릴 때 그저 듣고만 있어야 되는 노릇에 은근히 밸이 꼴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새삼 고민이다. 오늘은 동사무소 직원들이 찾아오는 날이지 않은가. 담근 술 넉넉하고 아침 일찍 장을 보아 이것저것 해놨으니 손님맞이가 바쁜 게 아니었다. 심심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직원들은 꼭 노래를 시키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고민인 것이다.
“뭐혀, 고춧모 심어?”
그때 신작로 과수원 탱자나무 길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예에, 워디 가유?”
“교회 성가대 가.”
지나가는 여자는 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데다 중국제 향나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이구, 팔자 한번 좋다. 우리는 원제쯤 저런 포즈로 시내 나댕길 까이.”
노래를 도중에 끊은 지은네가 눈길을 준다.
“지은 엄마도 전국노래자랑 한번 나가보라니께. 본선만 나가면 텔레비전 나오고 하잖남. 더도 말고 인기상이라도 하나 타면.”
“싫어.”
한복 입은 여자가 멀리 과수원 넘어가는 장면을 멍하게 바라보던 음암댁이 갑자기 웃음보를 터뜨렸다.
“왜 웃어?”
깔깔깔. 음암댁은 우스워죽겠다는 표정이다.
“얼라, 예편네 창시*에 바람 들었나.”
“작년에 바심하고 나서 부녀회에서 부곡을 갔다 왔잖남.”
“그래서?”
“저이 저렇게 옷맵시 좋고 교회에서는 무슨 집산가 해서 좀 점잔을 빼여? 날마다 쫙 다린 옷에 성 경 책만 보듬고 댕기잖여.”
“그런데?”
“그런디 관광차가 출발해서 서산을 막 빠져나가자마자 기사님, 디스코 타임, 하더니 하이구 그런 여자가 따로 옰어. 쫙 빼입은 양장을 훌훌 벗고 청바지로 갈아입더란 말여. 그리고서는 갑자기 스타킹을 벗어 머리에 이렇게 쓰고, 꼭 영화에서 강도들처럼 말여. 이렇게 쓰고는 춤을…… 깔깔, 우리는 흉내도 못 내여.”
“원래 관광차에는 그런 사람 하나 꼭 있는 법이여. 동네마다 바보 하나씩은 꼭 있듯이.”
가르치듯 한다.
“그래도 그렇지. 향나무 부채 든 폼 좀 봐. 누가 그런 사람인 줄 알겄어? 관광차만 타면 완전히 딴사람 된댜.”
음암댁이 한복을 트집 잡아 설레발을 치는 것은 지은네의 입을 막자는 심보였다. 타는 속을 나 몰라라 하고 노래만 뽐아 올리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지은네의 기분에 끌려 다니는 것 같고 고추밭 일은 자꾸만 눈에서 멀어지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속이 꽉 찬 나암자 구십구쩜구 사랑도 구십구쩌엄구우.
들은 척 만 척 지은네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음암댁은 밭이랑을 바라본다. 고춧모는 아예 햇볕에 바싹 타들어 가고 있다.
저걸 빨리 심어야 허는디, 하면서도 얼른 몸이 일어나지지가 않는다. 아니 지은네가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한복이 사라진 고갯마루에 자전거가 나타났다.
“큰아들 오시네.”
지은네의 말에 음암댁은 몸을 일으켰다.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자전거를 몰고 오는 아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순간 아침에 잔뜩 구겨진 인상을 한 채 학교로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시험 잘 봤늬?”
그녀는 길을 향해 걸어가며 외쳤다. 설 듯 설 듯 하던 일호가 망쳤어, 일갈하고는* 그대로 지나쳐 간다.
“다?”
“아니.”
“무슨 과목.”
“수학.”
“부엌에 피자 만들어놨으니까 먹어이.”
“알았어.”
“냉장고에 우유랑 아이스크림도 있어 이.”
이번에는 대답이 없다. 밭고랑 사이로 까까머리는 멀어진다. 멀리 대나무 숲 너머 그녀의 집이 보인다. 일호가 집 안까지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서야 자리로 돌아온다. 다시 고춧모를 바라본다. 지은네의 눈치를 살핀다.
“어째 쟈이는 수학을 못할까이. 요즘 애덜은 산수가 노래 제목이든디.”
“무슨 소리랴?”
“아, 좀 전에 부른 뭐, 구십구쩜구? 그것두 그렇고…….”
며칠 전 제사가 있었다. 작은집 식구들이 제사를 지내러 왔었다. 두 며느리는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고 남정들은 밭에 나가 있었다. 둘째인 이호가 또래인 사촌들을 만나 요즘 유행하는 만화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굳어져 있는 동서의 얼굴을 훔쳐보며 오늘 제사를 치른 뒤 이들이 이번에는 무슨 이유로 손을 벌려올까 궁리 같은 고민에, 작은아들 역성들* 게 뻔한 시어머니를 어떻게 따돌릴까 고민 같은 궁리를 하고 있던 음암댁이 순간 유리컵을 떨어뜨렸다. 속생각이 들통 난 것 같아 화들짝 놀라는데 쨍그랑 소리가 나자마자 거실의 아이들이 동시에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거였다.
둘이 되어버린 날 잊은 것 같은 너의 모습에 하나일 때보다 더 외롭고 허 전해.
“……하는데 지지배는 그냥 옆구리 체조까지 하드라니깐.”
“일과 이분의 일이라는 노래여 그게.”
“그러니께 말이여. 산수가 노래 되는 세상인디.”
그래놓고 일호가 피자를 먹었는지 우유를 마셨는지 걱정이다. 아무것도 안 먹고 또 이불 싸고 드러누운 것은 아닌지.
일호는 공부를 잘했다. 반년마다 우등상을 꼭 챙겨 오는 아이였다. 그런데 수학이 약했다. 다 잘하는 놈은 웂는 법이다, 가 부부의 위안이기는 했지만 정작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안된다고 큰아들은 노상 신경질이었다. 팔자에 우등상 한 번 점지 받아본 적이 없는 부부는 일호가 늘 대견했으나 아들은 그게 아니었으니 여느 집과는 딴판인 셈이었다. 국민학교 5학년인 이호가 일호와 달리 부모를 좇아 해마다 개근상만 착실히 따 오는 것에 비하면 일호는 밭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긴 난 모양이었다. 생각이 일호에게 잡히자 며칠 전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일호 담임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일호는 우등생이라 대전이나 천안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는 게 좋겠으니 집에서도 그렇게 마음을 먹고 아이 뒷바라지를 해달라는 요지였다. 일호는 중학교 3학년이다. 퇴근해서 풀밭에 묶어놓은 소를 끌고 오는 남편에게 말을 전했다. 물끄러미 듣고 있던 남편의 눈에 순간 이슬이 맺혔다.
“……어차피 대학교 가면 서로 떨어져 살 건디, 뭐 고등학교 때부터 꼭 우리랑 떨어져서 공부를 해야 하남…….”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음암댁은 속으로 가슴을 쳤다. 어른이 되어서도 대처* 나가기를 꺼려하는 남정. 아들이랑 헤어져 사는 게 마음에 걸려 벌써부터 눈시울을 붉히는 남정. 세상에 이런 남자가 어디 또 있을까 싶어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당신처럼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쓰남유.”
사실 대처 나다녀 보지 못하기는 음암댁으로서도 마찬가지며 아들과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남편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눈물부터 비쳐오는 남편을 보며, 너른 들판으로 아들을 내보내는 일이 자신의 임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
“넓은 디서 공부를 해야 겁도 웂고.”
남편을 겨냥했다. 남편은 이랴, 소를 몰며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구, 고놈의 날씨 참말로 사람 몸뚱이를 나긋나긋하게 하네이.”
뽕짝을 메들리로 엮던 지은네가 부스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옳다구나 싶어 얼른 음암댁도 몸을 일으킨다. 햇볕에 모가지가 늘어질대로 늘어진 고춧모들의 모가지가 숫제 땅에 닿을 듯하다.
흐유.
그녀가 호미를 들고 밭고랑을 타자
끄응.
화답을 하며 지은네가 뒤를 따랐다. 한동안 쨍쨍 기세를 떨치던 해는 슬그머니 꼬리를 늘어뜨리고 서쪽 산을 향하여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서편으로 지는 노을은 갖가지 현란한 색깔을 만들어내며 농염*의 몸살을 앓고 있다. 멀리 천수만 바닷물이 통째로 반사되는지 하늘 저편은 붉다 못해 떼 지어 일어난 노랗고 검붉은 기운들이 서로 살을 뒤섞으며 불을 지르고 있다. 그쪽 천수만은 죽어버린 바다이건만 노을은 마지막 몸부림인 듯 더욱 무성한 빛깔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밭이랑마다 뿌리를 내린 작물들은 푸른빛을 더하며 해가 져도 나름의 성장을 계속할 일이었다. 겨울과 초봄 동안 빼빼 마른 참새들은 성급한 부리질로 하루를 보내고 대숲을 찾아들어 짹짹짹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들어댄다.
음암댁이 오늘 준비하는 자리는 이른바 직장 계이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의기투합하여 계를 하는데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한 달마다 품앗이*로 술과 음식을 내고 먹는 즐거움을 나누는 모임이었다. 오늘은 음암댁 차례. 설사 차례가 아니라 할지라도 술 한잔은 내야 한다. 바로 모내기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모내기철이 되면 남편은 그동안 미뤄놓은 휴가를 자주 낸다. 정식 타먹는 것이기는 하지만 숫자 뻔한 동사무소 사정이라 어느 정도 인사치레는 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계산이다.
하루 종일 마늘밭, 고추밭에서 품을 거든 지은네에게 고생했네, 지은네 없으면 어떡한댜, 말로 한 상 차린 다음에 씻고 얼른 오라고 이른다. 시어머니는 제사 때 작은아들네를 따라갔다. 일한 날은 으레 희은이 안고 큰딸 지은이 데리고 와서 밥을 먹었으므로 새삼스러울 게 없으나 오늘은 더 일찍 오라고 서둔다. 음식 준비를 같이 하자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다할 지은네가 아니었는데 약간 뜸을 들이다가 온다. 얼굴이 편치 않다.
“왜 그랴?”
“그새 전화를 닦아 돌린 모양이여.”
짐작이 갔다. 자주 있는 일이다. 낮에 전화를 했으나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니 자신의 엄포를 무시하고 시내를 나갔으려니 짐작한 게 뻔했다.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안 봐도 저절로 상상이 됐다.
“하여간 지은 아빠의 사랑은 알아줘야 햐.”
지은 아빠는 의처증이야, 의 다른 표현이다. 그것은 또한 평생 동안 애정 표현 한 번 할 줄 모르는 자신의 남편에 대한 불만이기도 했다.
“그새 많이도 사다 날랐네?”
남편의 닦달이나 음암댁의 말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연스레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지은네가 이것저것을 만져본다. 음암댁은 밥을 안치고 나서 주꾸미를 끓는 물에 데치고 지은네는 아직도 집게발을 꼬무락거리고 있는 꽃게를 닦달했다. 등짝을 벗겨내자 게는 파르르 발을 떤다. 등짝만 따로 두고 누런 살이 까 발라진 게를 탕탕, 칼로 토막 낸다. 푸르르르. 마지막 떨림이 발끝에 남는다. 벌건 양념장이 발라진다.
새까만 교자상*에 당근 쪼가리로 색깔을 낸 주꾸미와 꽃게 무친 것, 아나고*회와 상추가 놓이고 찌개와 삼겹살이 놓일 곳을 제외한 빈자리에 각종 반찬이 들어찬다. 부르릉 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남편이 쪼르르 달려왔다.
“저기 동장님 두 같이 오셨구만.”
“아니, 뭐 먹는다고 높은 양반이 왔는가요.”
지은네가 톡 쏘고 동시에 음암댁이 손을 내저어 말리며 쫓아 나간다. 일행 이 들이닥친다. 여직원들도 보인다.
“안녕하세요? 허허.”
동장이 느긋하게 들어서며 인사를 차리고
“하이고 사모님. 그새 준비를 많이도 했네유. 사모님 음식 솜씨가 워낙 유명 해 이번에는 동장님두 모시고 왔슈.”
젊은 직원 하나가 뒤를 받쳐준다. 예예, 잘하셨어요. 그러셔야죠. 어서 오세요. 사투리를 죽여 살갑게 인사를 하며 음암댁은 서둘러 텔레비전에 푹 빠져 있는 이호와 잠들어 있는 일호를 깨워 인사를 시킨다. 마당에는 엑셀 프린스 무쏘가 나란히 들어차 있고 오토바이 서너 대가 양념처럼 끼어있다.
먹자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어른들은 안방에서 먹고 마시고 두 집 아이들과 여자들은 부엌 차지였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소리가 안방에서 연달아 터져 나온다. 동사무소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여직원 시집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 사람이 꺼내고 저 사람이 받고 하더니 국정 전반과 지방자치 선거건은 동장 혼자 떠들고 이야기의 꼬리가 옆으로 흘러 올해 대학 1학년인 동장 자식 자랑이 나오자 듣다 못한 직원 하나가 슬쩍 끼어들어 박 계장님 동생도 그 대학 다니죠? 동장 말꼬리를 잡아채는 순간 기회다, 다시 왁자지껄 말판이 일어났다. 술이 여러 순배* 돌고 고기를 새로 굽고 찌개를 데우고 하더니 다시 말이 돌고 돌아 일호 고등학교 진학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음암댁을 찾았다:
“사모님 이리 오슈.”
“부족한 게 많아서 워떡 헌디우. 웂어도 많이들 드세요.”
발뺌을 했으나
“배불리 잔뜩 먹 었슈. 얼른 그냥 오유.”
결국 지은네를 대동하고 방문을 연다.
“아니, 일호 어머니. 자식들 공부 잘하고 남편 착실하고 좀 좋으세요?”
동장이 직접 술을 따라주며 말을 꺼낸다.
“아이구, 동장님이 직접.”
어렵게 술을 받으며
“남편 착실해봤자 소용없슈. 딸기밭 한번 안 데리고 가는디유.”
음암댁은 어느새 사투리로 돌아와 있다.
“저놈의 딸기밭 타령은 또 나오네.”
남편은 그저 허허 웃는데 대신 지은네가 타박을 준다.
“시집오던 해 봄에 딸기밭 한번 데려가 준다고 하더니 자식이 중3인디 여적 못 갔슈.”
공개적으로 남편을 공격한다. 그만큼 섭섭하기도 했지만 지은네 타박에 대한 대꾸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깔깔 호호, 에이 한번 모시고 가시지 하는데 남편은 여전히 허허 한다.
“그깐 딸기밭 가면 뭐 해. 아저씨 착실하시지, 아들 잘 놔놨지, 너른 논밭 있지 나 같으면 가자 해도 싫겄다.”
“아닌 게 아니라 모내기해야 할 때라 걱정이유. 아무리 기계모 심는다고 해두 농사일이란 게 끝이 웂어서…….”
지은네의 강짜*를 피하며 두루 자신의 처지를 피력하며 얼른 문을 열고 나왔다. 접시에 과일을 내오는데 술들이 어지간한지 드디어 노래하자는 말이 나온다. 음암댁은 속이 뜨끔한데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가 일순 정비되며 만장일치로 음암댁을 들고 나섰다. 앉지도 못하고
“에이, 좋은 노래방 놔두고 왜 집에서 헌데유.”
발을 뺀다. 처음부터 자신을 시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가슴이 덜컹거린다.
“일호 어머니 노래 한번 들어보고 잘하시면 제가 노래방으로 모실테니 께 한번 불러보세요.”
동장이 직접 나서서 거들었다. 젊은 직원 하나가
“박수.”
하자 동시에 짝짝짝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이호와 희은이를 업은 지은이가 나타났고 얼른 들어와라, 너희 엄마 노래한다, 사람들이 불러들였다. 지은네는 희은이를 받아 안고 이호는 실실 웃으며 엄마를 바라본다.
“지는 뭇허유. 여기 지은이 엄마가 가수유.”
음암댁은 손을 내저었다. 창졸간*의 일이라 준비도 안 되었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아니, 자기를 시켰는데 왜 나를 걸고 넘어져? 얼른 해봐. 여고 시절 합창 대회 나가 상도 받았다며?”
지은네는 음암댁을 밀어붙인다. 사람들은 와, 놀라며 다시 한 번 박수를 친다. 호기심 어린 눈초리가 한순간에 모인다. 음암댁은 침을 꼴깍 삼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앞이 깜깜하다. 그러나 남편 체면이 있으니 못 하겠다고 더 이상 발뺌도 못 할 일이었다. 순간 고추밭에서 지은네가 불렀던 노래를 급히 떠올려 보는데 그 숱하던 노래 중에 어느 하나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은근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지은네를 슬쩍 내려보고는 얼떨결에 입을 열었다.
모옥련꽃 그느을 아래에서……
공교로울* 것까진 없겠으나 사람이 긴장을 하다 보면 바보 되는 게 순식간의 일이었다. 여고 때 자주 불렀고 열린음악회에서 십심찮게 들었건만 다음 가사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생각나지 않던 가사도 부르다 보면 저절로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건 먹통처럼 깜깜했다. 심장이 발딱발딱 뛰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사람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한데.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모옥련꽃 그느을 아래에서……
또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고 맞은편 장롱의 봉황 그림만 가물거린다. 그다음 가사가 뭘까, 뭐였을까, 뭔데 이렇게 생각이 안 날까. 재빨리 속으로 다시 한 번 가사를 떠올려 본다. 그래도 아래서 다음에는 진척 이 없다. 뭘까. 뭔가 어려운 단어였기는 했는데…… 그러기에 노래방에 가서 해야 하는데. 쿵짝쿵짝. 사람들은 무릎에 박자를 주어 박수를 쳐준다. 흐음.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며 다시 시도했다. 에라 모르겠다.
모옥련꽃 그늘 아래에서……·쿵짝, 쿵짝.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찰나적으로 가사 하나가 떠올랐다
……쿵짝, 마주앉은 다앙신은 언젠가 어디서언가 보온 듯한 얼굴인데 쿵짝…… 고햐앙을 물어보오고……
어떻게 끝났는지 하무튼 노래를 끝냈다. 킬킬 웃은 이들도 있고 얌전히 듣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부랴부랴 방을 빠져나오는데 이호가 따라 나오며
“엄마 그 노래가 원래 그래?”
눈치 없이 묻는다. 응 그려. 대답하고서 내일부터 지은네에게 노래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음매. 소가 운다. 그제서야 음암댁은 소 저녁 여물 안 준 게 생각난다.
『실천문학』 37호(1995년 봄):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솔 1996)
한창훈(韓昌勳)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여천군 거문도와 여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한남대 지역개발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닻」 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걸쭉하고 능청스러운 입담과 경쾌한 해학으로 발전과 풍요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따스한 훈기와 인간적 유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