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우리집은 이사를 와서 충청도 음성에서 살고 있었고 아버지는 전까지 살던 경기도 광주의 부대로 출퇴근을 하셨다.
직업군인으로 근무가 얼마 남아 있지 않으셨다.
서울가는 시외버스로 2시간 넘게 걸리다 보니 새벽 가셨다가 밤늦게 오셨는데 대통령이 시해되고 이후 신군부 쿠테타가 나자 비상이 걸려 집에 못오고 어쩌다 집에 오셨는데 단독군장(배낭을 하지 않고 총을 휴대하지 않은 상태)에 철모를 쓰고 오셨다.
조용한 시골 면소재지에 얼룩무늬 예비군 아저씨나 방위병(당시 지서에 근무하는 병력들)도 아니고 민무늬 작업복(전투복을 그렇게 불렀다.)을 입은 나이 많은 군인(지금이면 젊은 축이지만 당시 연세가 40대 중후반이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젊은 얼굴이 아니셨다.)이 단독군장으로 다니니 안 그래도 불안한 시국인데 좁은 동네엔 소문이 빨랐다.
가끔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을 보면 신고를 하던 시기였다.
어쩌다 팀스피리트 훈련이나 특전사요원들의 훈련으로 군인들이 보이지만 그건 잠깐 길을 지나가는 것이고 동네에서 군대 코스프레도 아니고 지금도 그렇지만 단독군장을 한 군인의 모습을 보는 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추운 겨울 새벽부터 일어나 면소재지의 작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승객이 별로 없으면 그냥 지나 가기에 놓치면 큰일)경기도 광주터미널에 내려 또 거기서 완행이나 트럭을 타고 부대에 도착 출퇴근을 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보며 거의 일년 동안을 그렇게 다니 시다가 군생활을 마치셨다.
특히 말년에 박대통령 시해와 신군부 쿠테타로 인해 비상상황이라 영내 대기가 많았을 시기 아버지는 먼길(약 200여리 80km)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셨다.
나라가 시끄러우면 다 힘들겠지만 군인과 경찰 그리고 소방관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은 더 힘들지 않은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