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
+ 본 문 : 누가복음 5장 1절 - 11절 (신약 96쪽)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아멘!
예수님께로 무리 -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셨고,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배에 오르십니다.
그 배는 시몬의 배입니다.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말씀 듣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 - 곧 무리를 가르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물을 정리하느라 자기 배에 타고 있던 어부 시몬과 그의 동업자 야고보와 요한은,
그 시대의 전형적인 착한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고기 잡는,
기술을 물려받아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기잡이를 해오면서 어부로서,
갖추어야할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고기잡이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기들의 생리는 물론, 갈릴리 바다의 자연적 특성에 대해서도 거의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들은 고기가 비교적 잘 잡히는 때를 맞추어서,
바다에 나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날이 밝자 그들의 경험으로 더 이상 그물을 던지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물을 거두어 피곤하고 허탈한 감정으로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돌아와 배에서 그물을 내려 씻고 있을 때 일단의 무리가 어떤 분을 앞세우고,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앞선 분이 시몬의 배로 다가와서 배에 오르더니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게 하고, 지금까지 그들이 어부 생활하면서 들어보지 못했던,
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의 말씀으로 무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진지하게 그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가르침이 다 끝난 후, 무리들은 무엇인가 아쉬운 듯 하면서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각각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어부였던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밤새 고기잡이에 허탕을 친 시몬은, 그 시간 이후로 다음 고기떼가 몰려드는,
시간까지는 피곤한 몸을 쉬겠다고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고 하는 시간은 어부인 시몬에게는,
체념의 시간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간다는 것은,
수십 년 고기잡이 경험에서 볼 때, 도무지 이치에 맞지도 않는 일입니다.
시몬으로서는 고기잡이 자체를 그만두고 싶은 심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누가 그에게 와서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을 말해줘도 받아드릴 수 없는,
피곤한 순간입니다. "당신들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없어. 나는 다 해보았소.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말아요." 라는 말밖에 없는 순간입니다.
시몬이 경험한 유일한 세계는 오랜 세월동안 잔뼈가 굵어오면서 알게 된,
고기잡이에 관한 지식의 세계가 전부 다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그 세계를 넘어서,
다른 어떤 영역의 세계를 알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경험 세계를,
넘어서 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는 소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시몬에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명령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그 어떤 필연성을 경험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알 수 없는 깊은 신뢰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시몬은 자기 앞에 선 그분에게,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다." 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배를 가지고 예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순종하였을 때 의외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너무 많은 고기가,
잡혀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까지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자신만의 경험으로 밤이 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시몬이 예수님의 명령에,
따랐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 시몬은 평생 손에 쥐어보지 못한 목돈을 본 것이 아닙니다.
평생 손에 쥐어보지 못한 목돈과는, 전혀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시몬은 자기에게 명령한 그 분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몬은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순간 시몬에게는 그가 예측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비전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그 비전은 장차 하나님 나라의 어부로서 사람을 취하는 될 것이라는 비전이었습니다.
한편 시몬에게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그의 자아 중심의 삶에 종말이 왔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삶으로 시작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생존을 위한 기술과 삶의 방식을,
나름대로 익혀갑니다. 거기에 경험적 지식이라는 것이 하나 더 첨가됩니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였을 경우,
자만과 자기 의가 형성됩니다. 나중에는 그런 것들이 거의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안정이, 더 이상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익힌 기술과 경험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공허와 허탈이 우리를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몬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호숫가로 돌아와 그물을 씻는“ -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적 위기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의 사고와 삶의 태도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그 누구의 말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상태에서 주로 하는 말은,
"나도 다 해봤어, 안 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잘난 체 하지마, 체, 안 돼." 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영적 체념의 해안에 정박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 너의 자아중심적인 삶을 떠나서 새로운 중심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자아 중심적인 삶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면 갈수록,
거기에서 경험되는 것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다른 깊은 곳을 가리키면서 저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 우리가 그 음성을 거부하면, 우리의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고 순종하면, 그 순간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는 명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주시는 새로운 영적 차원의 비전입니다.
이 비전의 세계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대로 하겠나이다." 라고 순종할 때,
열리게 됩니다. 그 때 우리 앞에는 우리 자신의 비참성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전에 그렇게 확신 가운데서 고수했던 것들, 그것들에 의존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오스월드 샌더스는,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의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고,
고백하게 하지만, 언제나 유익한 것을 가져온다.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시는데,
목적이 있으신 것이 아니다. '자아의 종말이 하나님의 시작이므로' 그것이,
우리 자신에 대한 끝을 가져 온다해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받은 이 비전은 개인적으로,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하는 촉매제인 동시에, 더 많은 곳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그 영역을 확대하게 한다." 고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다 그 나름대로 독특성이 있습니다.
지성적인 사람은 심리학, 철학, 사회학, 경제학, 법학과 같은 사회 과학 체계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밤이 새도록 수고하며, 무엇을 얻으려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종교적인 사람은 자기 의에 기초한 경건의 생활에 몰두해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윤리 의식이 강한 사람은 철저히 윤리적인 삶을 통해 자기를 실현해갈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돈 버는 일로, 밤이 새도록 수고하며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에게 기대를 걸고, 밤이 새도록 수고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게 하므로 먹고사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데, 자꾸 희망이 없어집니다.
막탈감과 허탈감만 더 많이 생깁니다. 무엇인가 생명적인 열매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심판과 저주가 아닌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비전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지금 있는 삶의 자리,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지 말고 "깊은 곳으로 지금 가서 그물을 내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아멘하고, 믿음으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새로운 삶의 세계에서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은 매일 매일 자기실현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전에 경험하지 못한 평화가 있고,
범사에 감사가 있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해주는,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철학, 자신의 인생관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더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곧 순종하여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주님 중심의 새 삶을 살아가는 사명자들이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