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보는 이마다 주 생각하리
현대인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 속에 살아가면서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적다고 아우성친다는 점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람 냄새 풍기는 이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정작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사람 냄새를 풍기려는 몸부림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곧 사람 냄새와 사람다운 삶에는 고통과 희생이라는 댓가를 지불해야 하기에 타인에게는 요청하지만,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시된다 하겠습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려고 몸부림치거나 그리스도의 편지다운 삶을 살아가려 하면 멀리서는 박수치고 환영하지만, 정작 자기 주변인이 그러한 모습을 보이면 부담스러워 하는 이중성과 모순이 죄성을 지닌 인간의 모습이지 않나 싶습니다.
몇 해 전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려고 기다리는데 먼저 하시는 분이 거울을 보며 이발사분과 대화를 한 내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얼굴에서 작고하신 아버지 모습이 나오는 게 신기합니다.”일컬어 유전자의 신비라 하겠습니다.
혈연 공동체에 속하면 별도의 노력 없이도 부모의 모습이나 성격, 기질이 잔흔 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형상을 드러내야 하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향기를 풍기기를 원한다면 전제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한 구체적 조건을 찬송가 420장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2절 너 성결키 위해 네 머리 숙여/ 저 은밀히 계신 네 주께 빌라
주 사귀어 살면 주 닯으리니/ 널 보는이 마다 주 생각하리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은 행함이 아닌 관계임을 알려주는 찬송입니다.
주님과의 깊은 사귐과 교제가 있는 이라면 그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덕스러운 말이라면 자신의 이웃에게서“당신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당신 때문에 교회 나가고 싶어졌습니다.”일 것입니다.
미국 와싱턴 사귐의 교회를 섬기시는 김영봉 목사의 저서인“설교자의 일주일”에 보면 감동적인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교회로부터 집회 초청을 받았습니다.
집회가 시작되기 한 달 전 즈음에 그 교회에서 어떤 분이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40년 동안 떨어져 있다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그 친구 부부와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물었습니다.
“그때 우리 반에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뭉쳐 다녔는데, 자넨 거기 없었잖아? 언제부터 믿기 시작한 거야?”
그 친구는 교회 다닌 지 10년 정도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호기심이 생겨서 믿게 된 경위를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국 회사의 미국 지사 주재원으로 왔다가 사표를 내고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imf 외환위기로 인해 우리나라가 힘들었을 때 국내에서 사업을 하던 절친한 친구 하나가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두고 볼 수 없는 사이인지라 그는 급거 귀국하여 수습하는 일을 도와 주었습니다.
친구 부부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 그 친구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점이 있었습니다.
파산의 상황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친구에 비해 그의 아내는 너무도 평안하고 담대하게 문제들을 대면하고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 친구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전에도 많이 만났는데 그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모든 삶의 터전이 무너진 상황에서 친구의 아내가 보여준 태도가 놀라왔습니다.
그것이 무얼까 궁금해서 관찰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미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보. 우리 교회 나갑시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남편의 제안에 아내가 대답합니다.“사실 주변 친구들이 교회 가자고 하는데 나만 갈 수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
당신에게 이야기해 봐야 씨도 안 먹힐 것 같아서 말도 못하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그러면 잘 됐어. 같이 나가자.“
그렇게 하여 미국에 돌아오는 그 주일부터 두 사람이 제 발로 교회를 찾아 나가게 되었습니다.>(설교자의 일주일 103쪽에서, 김영봉 지음, 복있는 사람)
최악의 상황에서도 너희 염려를 주께 맡겼던 한 여인의 특수한 믿음이 한 가정을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아둘람굴 목사 사모의 수술비를 위해
총 4분이 83만원을 모아 주셔서 24일(토)
국토정중앙교회 명의로 송금했습니다.
귀한 물질로, 마음으로 협력해 주신 모든분들께
머리숙여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