伏見御製衆經論序 照古騰今
(복견어제중경론서 조고등금)
엎드려 太宗(태종)이 御製(어제)하신 衆經論序(중경논서)를 보건데 옛날에 거슬러 올라가고 또
지금을 論述(논술)하여 이르지 않은 바가 없고,
理含金石之聲 文抱風雲之潤
(리함금석지성 문포풍운지윤)
그 道理(도리)에는 金石(금석)의 音響(음향)이 있으며 문채에는 풍운과 같은 윤기가 있다.
治輒以輕塵足岳 墜露添流 略擧大綱 以爲斯記
(치첩이경진족악 추로첨류 략거대강 이위사기)
즉, 高宗自身(고종자신)이 기록한 같은 그에 비하면 輕塵(경진)을 큰 山에 보태고 이슬의 방울을
河川(하천)의 흐르는 물에 보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에 그 大略(대략)을 들어 이 글을 쓴 것이다.
治素無才學 性不聰敏 內典諸文 殊未觀攬
(치소무재학 성불총민 내전제문 수미관람)
자기는 才學(재학)도 없고 또 天性(천성)도 聰明(총명)치 못하다. 특히 佛典(불전)은 아직 읽어본 일이 없으므로,
所作論序 鄙拙尤繁 忽見來書 褒揚讚述 撫躬自省 慙悚交幷 勞師等遠臻 深以爲愧
(소작론서 비졸우번 홀견래서 포양찬술 무궁자성 참송교병 로사등원진 심이위괴)
이에 관하여 논술한 것도 심히 繁蕪(번무)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書面(서면)에 접하여 본바
도리어 크게 褒讚(포찬)하였으니 스스로 반성하여 부끄럽기 한이 없다. 여기에 師等(사등)이 일부러
遠來(원래)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貞觀卄二年八月三日內
(정관 이십이년 팔월 삼일 내)
晨種夕梵 交二音於鷲峰 慧日法流 轉雙輪於鹿菀
(신종석법 교이음어취봉 혜일법류 전쌍륜어록원)
아침의 종소리와 저녁의 讀經(독경)소리는 靈鷲山(령취산)에 메아리치니
태양과 같은 부처의 智慧(지혜)와 川流(천류)와 같은 불법은 雙輪(쌍륜)과 같이 鹿野苑(록야원)에 전하고
排空寶蓋 接翔雲而共飛 莊野春林 與天花而合彩
(배공보개 접상운이공비 장야춘림 여천화이합채)
하늘에 높이 솟은 寶蓋(보개)는 나는 구름과 같이 날고 들은 裝飾(장식)한
春林(춘림)이 天花(천화)와 色彩(색채)를 합친 것과 같은 형상이다.
伏惟 皇帝陛下 上玄資福 垂拱而治八荒
(복유 황제폐하 상현자복 수공이치팔황)
엎드려 생각건대 皇帝陛下(황제폐하)께서는 天帝(천제)의 도움이 있어 팔장을 끼고
가만히 계셔도 遠方(원방)의 나라까지도 잘 다스려지고
德被黔黎 斂袵而朝萬國
(덕피검려 렴임이조만국)
만민은 덕을 입어서 편하고 萬國(만국)의 사람들도 옷깃을 여미고 來朝(래조)하게 되었다
恩加朽骨 石室歸貝葉之文 澤及昆蟲 金匭流梵說之偈 遂使阿耨達水
(은가후골 석실귀패엽지문 택급곤충 금궤류범설지게 수사아누달수)
또 陛下(폐하)의 은혜는 지하의 骸骨(해골)에까지 미쳐서 石棺(석관) 속에 具葉(구엽)의
經文(경문)을 바치게 하고 恩澤(은택)은 昆蟲(곤충)에까지 미쳐서 金箱(금상)에 불교의 경문을
거두고 드디어 인도에 있다는 阿耨達(아누달) 또는 無熱惱池(무열뇌지)라 부르는 못의 물로 하여금
通神甸之八川 耆闍崛山 接嵩華之翠嶺
(통신전지팔천 기도굴산 접숭화지취령)
중국의 八川에 통하게 하고 또 인도의 耆闍堀山(기도굴산)을 중국의 嵩山(숭산)과 華山(화))등에
산들과 접근시킴과 같이 인도의 불교를 중국 땅에 이끌어 들였다.
竊以 法性凝寂 靡歸心而不通
(절이법성응적미귀심이불통)
곰곰이 생각하여 보건데 法性(법성)은 본래부터 凝然(응연)하여 靜寂(정적)한 것이기는 하지만
信仰(신앙)하여 歸命(귀명)하면 通會(통회)치 못함이 없고
智地玄奧 感懇誠而遂顯
(지지현오 감간성이수현)
부처의 지혜는 심오하기는 하나 지성을 다하면 드디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豈謂重昏之夜 燭慧炬之光 火宅之朝 降法雨之澤
(기위중혼지야 촉혜거지광 화택지조 항법우지택)
이와 같은 것은 暗黑(암흑)의 밤에 無明(무명)의 어둠을 지혜의 炬火(거화)로서 비치고
火宅(화택)의 아침에 甘露(감로)의 法雨(법우)를 내려 이를 적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於是百川異流 同會於海 万區分義 摠成乎實
(어시백천이류 동회어해 만구분의 총성호실)
즉 百川(백천)은 흐름을 달리하나 드디어 바다에 이르러 하나로 모이고 萬國(만국)에 모두
각각의 道德(도덕)이나 敎義(교의)가 있으나 귀결하는 곳은 同一(동일)한 誠實(성실)과 眞理(진리)밖에는 없는 것이다.
豈與湯武校其優劣 堯舜比其聖德者哉 (기여상무교기우렬 요순비기성덕자재)
그런 점으로 말한다면 佛陀(불타)는 이를 중국의 湯王(탕왕)이나 武王(무왕)과 비교하여도
우열이 없고 堯舜(요순)과 같은 聖帝(성제)에 비교하여도 결코 손색이 없는 것이다.
玄奘法師者 夙懷聰令 立志夷簡 神淸齠齔之年
(현장법사자 숙회총령 립지이간 신청초츤지년)
현장법사라는 자가 있으니 이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있어 그 성품은 夷曠簡約(이광간약)하여
육, 칠세의 때로부터 이미 그의 정신은 맑고 높았으며
體拔浮華之世 凝情定室 匿跡幽巖 栖息三禪
(체발부화지세 응정정실 익적유암 서식삼선)
年少하여 浮華(부화)한 俗世(속세)에서 떠나서 出家(출가)가 되어 定室(정실)에서 情思(정사)를
凝想(응상)하고 蹟(적)을 幽巖(유암)에 감추고서 마음을 三禪(삼선)에 栖息(서식)케 하고
巡遊十地 超六塵之境 獨步迦維 會一乘之旨 隨機化物
(순유십지 초육진지경 독보가유 회일승지지 수기화물)
十地(십지)의 修業旨(수업지)를 理解(이해)하고 상대자의 機根(기근)에 應(응)하여 이를
濟度(제도)하고 敎化(교화) 하였다.
以中華之無質 尋印度之眞文 (이중화지무질 심인도지진문)
현장은 旣述(기술)한 바와 같이 중국 국내에서 佛典(불전)을 연구하고 佛道(불도)를 수업하였으나
아직도 疑問(의문)이 많았고, 이를 해답 할 수 있는 經文(경문)이 없었으므로 다시 인도에 가서
梵語(범어)의 불전을 연구하고자 하는 것을 세워,
遠涉恒河 終期滿字 頻登雪嶺 更獲半珠
(원섭항하 종기만자 빈등설령 경획반주)
멀리 恒河(항하)를 건너 인도의 각지에 高德(고덕)을 찾아 釋尊(석존)이 過去(과거)의 세상에서
雪山(설산)에서 苦行(고행)한 것과 같이 難業苦行(난업고행)하여
問道往還 十有七載 備通釋典 利物爲心
(문도왕환 십유칠재 비통석전 리물위심)
佛道(불도)를 물어 구하고 小乘(소승)外(외)에도 大乘(대승)의 교리에도 정통케 되었으니
遊歷(유력: 여러 고장을 두루 다님)한지 十七年만에 모든 佛典(불전)의 奧義(오의)에 정통할 수가
있어서 귀국한바 그의 마음은 오로지 衆生(중생)을 濟度(제도)함을 목적으로 하였던 것이다.
而貞觀十九年二月六日 奉勅於弘福寺 翻譯聖敎要文 凡六百五十七部竭
(이정관십구년이월육일 봉칙어홍복사 번역성교요문 범육백오십칠부갈)
현장은貞觀(정관) 十九年二月六日에 勅令(칙령)을 받들어 弘福寺(홍복사)에서 佛典(불전) 중에서
緊要(긴요)한 것 약 六百五十七部를 飜譯(번역) 하였다.
引大海之法流 洗塵勞而不 傳智燈之長燄 皎幽闇而恒明
(인대해지법류 세진로이불갈 전지등지장염 교유암이항명)
이 偉業(위업)이야말로 마치 大海(대해)의 물을 끌어들여서 먼지를 씻는 것과 같고 또 밝은
등불로 無明(무명)의 어둠을 비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自非久植勝緣 何以顯揚斯旨 所謂法相常住 齊三光之明 我皇福臻 同二儀之固
(자비구식승연 하이현양사지 소위법상상주 제삼광지명 아황복진 동이의지고)
이런 일은 오랫동안 佛緣(불연)에 의하여서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 이로써 法相(법상)은
恒常(항상) 安住(안주)하여 日月星의 三光(삼광)과 더불어 光明(광명)을 같이한 것이라 하겠으니
皇運(황운)도 또한 天地(천지)와 더불어 無窮(무궁)히 堅固(견고)할 것이다.
般若波羅蜜多心經(반야바라밀다심경) 沙門 玄奘奉 詔譯(사문 현장봉 조역)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파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다섯 가지 쌓임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너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불이여, 현실(현상, 물질)이 진리와 다르지 않고 진리가 현실(현상,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현실(현상, 물질)이 곧 진리요 진리가 곧 현실(현상,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이
의식도 또한 그러하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사리불이여 모든 법의 실상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無意識界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무의식계)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는 현실(현상,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음과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무명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以無所得故 菩提薩陀依 般若波羅密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이무소득고 보리살타의 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無有空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
두려움이 없어서 잘못된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密多故 得阿縟多羅三漠三菩提 故知
(밀다고 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고지)
위없는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느니라.
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아무 것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能除 一切苦 眞實不虛
(능제 일체고 진실불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느니라.
故說 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노니 주문은 곧 이러하니라.
揭諦揭諦 般羅揭諦 般羅僧揭諦 苦提莎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행하고 또 행하며 번뇌와 속박을 떠나 반야바라밀다주(대신주요, 대명주요,
무상주요,무등등주로서)께 善說(선설)하옵니다.
般若多心經 (반야다심경)
太子太傳⦁尙書左僕射〮⦁燕國公⦁于志寧 中書令⦁南開國男⦁來濟 禮部尙書⦁
高陽縣開國男⦁許敬宗 守黃門侍郞⦁兼左庶子⦁薛元超 守中書侍郞⦁兼右庶子⦁
李義奉勅潤色 咸享三年十二月八日 京域法侶建立 文林郞⦁諸葛神力勒右 武騎尉⦁朱靜藏鐫字
(태자태전⦁상서좌복사⦁연국공⦁우지녕⦁중서령⦁남개국남⦁래제 례부상서⦁
고양현개국남⦁허경종 수황문시랑⦁겸좌서자⦁폐원초⦁수중서시랑⦁겸우서자⦁
리의봉칙윤색 함형삼년십이월팔일 경역법려건립 문립랑⦁제갈신력륵우 무기위⦁
주정장전자)
般若多心經(반야다심경)을 태자태부⦁상서좌복사⦁연국공(공작)⦁우지녕과 중서령⦁남개국남(남작)⦁래제와 례부상서⦁고양현 개국남⦁허경종과 수황문시랑⦁겸좌서자⦁설원초와 수중서시랑⦁겸우서자 이의부 등은 조칙을 받들어 윤색하게 하고 함형(당나라 고종의 일곱 번째 년호) 삼년(A⦁D672년) 십이월 팔일 경성의 법려들이 이비를 세우니 문립랑⦁제갈신력은 비석을 가다듬고 무기위⦁주정장은 글자를 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