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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1)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강렬한 회심과 대대적인 삶의 전환 그 배경에는 끊임없는 기도와 주님 말씀에 대한 진지한 경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신앙 여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산전수전이었습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의 부모는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았습니다.
바오로 사도 친히 밝힌 것처럼 그는 소아시아 지역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튀르키에 중남부에 있으며, 지중해에 인접한 천연적 항구 도시로서 오래전부터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부모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바오로는 어린 시절부터 유다인으로서의 탄탄한 가정 교육과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부라고 할수 있는 예루살렘에서 자랐습니다.
뿐만아니라 바오로는 엘리트 교육을 받기 위해 당시 대스승이었던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들어갑니다. 기록에 따르면 가말리엘은 유다 최고 법정인 산 헤드린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고 당대 율법교사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습니다. 그로 인해 최초로 ‘라반’ 영예로운 칭호까지 얻었습니다.
이런 조기교육과 엘리트 교육을 차근차근 이수한 바오로였기에, 그는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충실했으며, 온몸과 마음으로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겼습니다.
이런 바오로에세 한 가지 심기 불편한 소식이 전해집니다. 당시 정통 유다인 입장에서 보면 이단이요 사이비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출몰과 확산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유다인들이 그리로 건너가니, 바오로 입장에서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로 분노했습니다.
정의감과 종교심으로 충만했던 바오로, 촉망받던 미래 지도자 청년이었던 바오로는 즉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유다 최고 의회에 체포영장까지 발급받아 그리스도인들의 척결을 위한 선봉장이 됩니다.
이 시점에서 바오로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생긴 낙마 사건입니다. 그날도 다마스쿠스에 그리스도인들이 집결해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바오로는 즉시 그리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마스쿠스에 거의 도달했을 무렵 바오로는 갑자기 엄청난 광채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동시에 그는 말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강렬한 빛으로 인해 그의 눈은 멀어버렸습니다.
그 특별한 상황 앞에서 바오로가 보여준 태도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 난감한 상황 속에서 바오로는 주님께 거듭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꼬박꼬박 응답해주십니다.
그 순간 제가 바오로였다면 엄청난 두려움에 까무라쳤을 것입니다. 아니면 잽싸게 줄행랑을 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주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서도 바오로 사도의 질문에 명료하게 답하십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오늘 우리에게도 바오로 사도가 온몸으로 체험했던 절절한 회심, 대대적인 삶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강렬한 회심과 대대적인 삶의 전환 그 배경에는 끊임없는 기도와 주님 말씀에 대한 진지한 경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바오로 사도처럼 끊임없이 주님께 질문을 던져야 하겠습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전삼용 요셉 신부님
마르코 16,15-18
간절히 기도하면 하느님 뜻을 알 수 있나요?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2』에 빌과 애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마을 촌장이 물을 공급해주는 사람과 계약을 원한다는 공고를 냈습니다.
딱 2명 하고만. 에드가 먼저 땄고, 신이 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며 두 개의 양동이로 호수에서 물을 날랐습니다.
빌은 한동안 마을을 떠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에드는 경쟁자가 없어서 더욱 신나게 양동이로 물을 나르며 돈을 벌었습니다.
여러 달이 지난 후 빌은 양동이 두 개 대신 사업 계획을 짜고, 투자가 네 명을 모으고, 일을 할 사장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또 여러 달이 지나고 건설 팀과 함께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일 년 동안 빌의 팀은 아주 두꺼운 강철 송수관을 건설해서 마을과 호수를 연결했습니다.
빌은 일을 하건 안 하건 매일 많은 돈을 얻었습니다.
에드는 평생 일만 했습니다.
이야기 끝. 열심히 산다고 다 좋은 걸까요? 더 큰 뜻 안에 머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하면서 하느님 뜻을 굳건히 따르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십니다.
그는 왜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박해하고 있었을까요?
하느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끈질기게 기도하면 알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었을까요? 성경을 읽으면 하느님 뜻을 알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바오로가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이었을까요?
어떤 이들은 마음의 평화가 하느님 뜻을 따르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도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확신으로 그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확실히 하느님 뜻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뜻 안에 머물라고 남겨놓은 흔적들입니다.
해리포터는 학대하는 이모, 삼촌, 사촌 더즐리 가족과 함께 사는 평범한 소년으로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마법적 유산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열한 번째 생일에 해리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사냥터지기인 루베우스 해그리드로부터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해그리드는 해리에게 능숙하고 존경받는 마법사였던 그의 부모, 릴리와 제임스 포터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들은 해리가 아직 아기였을 때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해리는 이마에 번개 모양의 흉터만 남기고 이 공격에서 살아남았는데, 이는 그를 마법사 세계에서 유명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호그와트에서 해리는 호그와트에서 수년 동안 부모를 죽인 볼드모트의 도전과 위험에
직면합니다.
이때 그를 돕는 이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모두 해리 포터의 부모를 사랑하는 이들이었습니다.
특별히 해리를 싫어하는 듯한 세베루스라는 인물도 있습니다.
사실 그는 해리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볼드모트의 하수인이기는 했지만, 그 사랑이 너무 커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또 그녀 대신 그녀의 아들인 해피 포터를 지켜주는 이중 첩자였습니다.
그는 볼드모트에게 죽임을 당하면서도 해리 포터를 위하는 따듯함을 보여줍니다.
해리포터는 이들의 희생으로 결국 볼드모트를 물리칩니다.
만약 아이가 늑대와 살면서 열심히 살면 어떻게 될까요? 훌륭한 늑대가 됩니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속해있느냐입니다.
공동체에 내가 살아갈 올바른 뜻이 녹아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남겨놓은 당신 뜻을 알게 만드신 유물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순교하라고 해서 순교하면 하느님 뜻입니다.
교회에서 순교하지 말라고 해서 순교하지 않으면 그것도 하느님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박해함으로써 하느님 뜻에서 멀어졌던 것입니다.
교회가 곧 그리스도이고 교회 안에 있으면 하느님 뜻 안에 있습니다.
교회 밖에 있으면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느님 뜻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해리포터의 부모가 남겨놓은 유산들, 곧 부모의 친구들과 부모를 사랑했던 이들, 그리고 그 부모를 따르는 이들 속에 있으며 결국 부모의 뜻을 실현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서는 책도 믿을 수 없고 친구도 믿을 수 없고 행복도 믿을 수 없습니다.
바로 자기 부모를 사랑하는 이들의 공동체만이 그의 길을 밝혀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박해하는 바오로 사도에게 왜 당신을 박해하느냐고 했던 것을 기억합시다.
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복음: 마르 16,15-18: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바오로 사도는 철저한 유다인이었고 율법학자였다. 처음에 그는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하느님을 잘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지만,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뵙고 예수님이야말로 살아 계신 하느님이시고 당신의 교회와 한 몸이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회개한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게 된다.
교회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지내는 것은 그의 회심이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큰 은총이라는 데 이유가 있다. 이 축일은 8세기부터 프랑스 지방에서 먼저 지내오다가 10세기 말에 교회력에 정식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바오로의 회심은 어떤 의미에서 주님의 또 다른 공현이며 그리스도의 현현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메시아의 모습으로 사울에게 나타나셨다. 사도의 회심은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박해자였던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변화시켜준 사건이다. 그의 회심은 하느님 앞에 크나큰 겸손으로 나타난다. 바오로의 회심은 그의 가르침의 많고도 중요한 요소의 기반을 이룬다. 교회의 잔인한 박해자 사울을 사도로 변화시킨 능력에 대한 권능의 주제에 대한 그의 학설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교회는 사도 바오로의 개종 축일을 지낸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오늘 복음의 말씀을 실천한 분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당신의 권한까지 주시면서 복음선포의 사명을 주신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15절). 사도들은 또 다른 그리스도이다. 제자들은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다. 부활을 체험하였다는 것은 살아 계신 주님을 체험하였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 체험을 통하여 살아 계신 주님을 전하였다. 교회가 갖는 선교의 사명 역시 부활하신 예수께로부터 온다. 오늘 복음에서와같이 주님께서는 이 복음선포를 항상 협력해 주시고 계시다.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주님을 알게 된 것은, 특권이라기보다 하나의 의무요 책임이다. 우리가 먼저 하느님을 알고, 신앙 안에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함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하는 일 중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 그리 많지 않듯이, 어렵고 힘들어도 해내야 하듯이, 우리는 세례를 받으며 우리가 받은 우리의 세례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며, 말씀을 우리도 온 세상에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으로 나 자신과 모두가 주님 안에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는
매서운 날씨입니다.
세월이 변하고
세상이 바뀌어도
눈부시게 빛나는 것은
회심의 가치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마음이 회심으로
전달됩니다.
마음을 잃은
우리들에게
마음을 다시 찾는
길을 보여줍니다.
회심의 길은
우리모두가
걸어가야 할
빛의 길입니다.
회심으로
닫힌 눈과 귀가
열려 온전한 그리스도를
만나게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출구는
언제나 회심이었습니다.
회심으로
바오로 사도는
폭력과 거짓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제대로 보게됩니다.
맑고 생생한
삶이 무언지를
깨닫게 됩니다.
평생을
주님 뜻안에서
살게됩니다.
복음안에서
우리 마음을
바꾸는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변함없었던 세상에
사도 바오로의 회심은
우리를 다시 변화시키는
새로운 시도가 됩니다.
계속되어야 할
회심의 시작입니다.
5)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우리말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말은 긍정적인 감정이 더 많을까요? 아니면 부정적인 감정이 더 많을까요? 7:3의 비율로 부정적인 감정어가 더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더군요.
부정적인 감정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 마음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비판은 두고두고 생각나는데, 어떤 이의 칭찬에 대해서는 쉽게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또 나를 향한 화가 난 얼굴은 지워지지 않지만, 나를 향한 미소 짓는 얼굴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액수가 똑같아도 이익의 기쁨보다 손실의 고통을 더 크게 느끼는 우리입니다.
부정적 편향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긍정적 편향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심리 법칙인 ‘4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는 나쁜 일 한 가지의 강한 영향력을 상쇄하려면 좋은 일 4가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와 다투었다면 다정한 대화를 네 번은 해야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입니다.
이 법칙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했으면 몇 번이나 상대에게 용서를 청하고 또 잘해야 할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최하 네 번은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을 갖고서 관계 회복을 아예 포기하면서 거리 두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용서해 주십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늘 최고의 선물을 주려고 하십니다. 거리 두는 관계로는 그 사람하고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관계도 안 좋아집니다. 힘든 삶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처음에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테파노 부제가 순교할 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정적 편향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셔도,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행하셔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직접 나타나셔서 그를 사도로 부르십니다.
이런 체험이 바오로를 변화시켰습니다. 부정적 편향에서 벗어나, 이제 긍정적 편향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있나요? 주님과는 거리 두는 관계가 아니라, 친근하고 밀접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누군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은 없다(조지 산타야나).
6)이병우 루카 신부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1.25)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
'이방인의 사도!'
오늘 복음(마르16,15-18)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16,15-16)
오늘은 '이방인의 사도인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밖인 이방인 지역의 복음을 전하기 전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박해자였습니다.
그는 엄격한 율법 교육을 받은 유다 사람이었고, 하느님을 열성적으로 섬기는 유다교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의 순교 이후 박해가 시작되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이방인 지역으로 피해갔습니다. 박해자 사울(바오로)은 그들을 잡아오려고 시리아 다마스쿠스로 갔다가,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사도22,7.8.10)
바오로는 하느님의 사람인 하나니아스의 도움을 받아, 완전하게 회심하여 '그리스도교 박해자에서' 이방인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도 '회심하는 사도 바오로'가 되어봅시다!
그러려면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
합니다.
이 도움은 '단순한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믿음은 '말씀을 듣는 들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시 시작해 봅시다!
첫댓글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마르 16,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