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6장 11절 – 20절
바벨론의 분봉왕 시드기야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자 사람들의 분위기를 맞추어 주었고 이미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과 그들을 가족으로 둔 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이 듣기를 싫어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달라서 마찰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드기야왕은 사람들의 눈치를 볼 것인가 아니면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들을 것인가로 갈등해야 했는데 시드기야왕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과 아무런 인격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시드기야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밀쳐 두고서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드기야왕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무서워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왕권이 바벨론으로부터 주어졌다고 하는 것과 유다사람들이 바벨론을 싫어한다고 하는 문제사이에서 시드기야왕은 더욱 사람들의 눈치를 살핍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겸비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유다의 파멸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시드기야왕이 정직함으로 회개하고 유다백성들로 참회하게 하였으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 졌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자와 회중들은 겸비함을 잃어버리고 오직 헌금을 드리면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 질 것처럼 여깁니다. 참으로 눈물나는 상황입니다.
시드기야왕은 하나님이 남유다에게 주신 기회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바벨론왕과 맺은 언약을 범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회개하였으니 사람들에게는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고 말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벨론왕에게 역사하시고 기회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방인과 맺은 약속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시드기야의 행위는 결국 퇴로를 막아버리는 어리석은 행위였습니다.
당시 남유다는 총체적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 정직하지 못했고 겸비함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셔도 그들의 귀는 금강석이고 그들의 마음은 돌덩이라 하나님의 심판은 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의 진짜 심각성은 성돗수가 줄어드는 것도 되지만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에 정직함과 겸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져 말씀을 듣고 가면 복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회중들이 말씀을 청종하는지 돌아보지 않습니다. 말씀이 선포되어도 회중들의 굳는 마음에 막히지 못하고 뚝뚝 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심판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하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