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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3장,
유혜영이 나가고 나자 김형우는 아래층을 새롭게 수리를 한다.
어차피 내부를 수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라 아내가 좋아하는 모델로 새로 단장을 하기로 결정을 한다.
김형우는 주방에 딸린 작은 방을 문득 생각해 낸다.
그 방은 어머니의 물건들로 가득 채워진 방이다.
어머니가 쓰시던 가구들과 골동품들을 버리기 아깝고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라 며느리의 손에 닿지 않는 주방에 딸린 방으로 넣고 잠그고 이따금씩 어머니가 생각이 날 때면 열고 혼자서 들여다보던 것들이다.
이제 집안을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서라도 어머니의 물건들은 치워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아내를 데리고 주방에 딸린 방문을 연다.
“이 방에는 우리 어머니의 물건들이 들어 있는 곳이오.
이제 이 물건들을 치워야 하지 않을까 하오.“
”어머?
아직 어머님의 유품들이 있었어요?“
민희는 신기한 것을 발견이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선다.
옛 고가구들이 방안 가득 채워져 있다.
“젊은 아이들이 이런 물건들을 좋아할 리가 있겠소?
그렇다고 함부로 버리기에는 아깝고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 있는 것이라서 이곳에 보관하며 가끔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 싶을 때 혼자 들어와 보곤 했었소.
이젠 당신 손으로 처분을 해도 좋을 듯싶소.“
민희는 가구들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아직도 상태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손을 보면 상당히 좋은 것들이라는 생각이었다.
“상당히 좋은 물건들인 것 같아요.
이것들을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조금만 손을 봐서 내가 쓰면 안 될까요?“
”정말 그래도 괜찮겠소?“
형우의 안색은 환하게 빛이 난다.
“지금 어디 가서 돈을 주고서도 이렇게 좋은 고가구를 구입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 나이에 현대식 가구보다는 이렇게 좋은 고가구를 사용하는 것이 더 품위가 있고 더구나 어머님의 손때가 묻는 물건들이니 더 없이 좋을 것 같아요.“
김형우는 그런 아내의 손을 꼭 잡는다.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기뻐하실지 눈에 보이는 것 같소.
이제야 진정으로 당신의 며느님을 보셨다고 정말 기뻐하실 것 같소.“
두 사람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아직도 가구들은 상한 곳이 없이 보관이 잘 되어 있는 상태였다.
김형우는 가구의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작은 함을 찾아서 꺼낸다.
“이것은 생전에 어머니가 모으시면서 보관하시고 계셨던 것이오.
며느리들이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그때 조금씩 나누어 주려고 했던 것인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이 모두 당신이 간직해 주었으면 하오.“
작은 함 속에는 평생을 모으시고 간직하셨던 어머니의 패물들이다.
주로 황금과 옥과 비취로 된 패물들이다.
“세상에!
이렇게 진귀하고 값진 것들이 들어 있다니요?
이것들을 진즉에 며느리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어요?“
”젊은 애들이 이것을 손에 넣으면 곧 바로 처분을 해 버릴 것인데 함부로 주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직은 내가 더 보관을 하면서 어머니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었소.“
민희는 조심스럽게 패물들을 꺼내어 본다.
함은 이층으로 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옛것이다.
시어머님의 금반지와 목걸이를 비롯해 팔지 그리고 옥과 비취로 된 패물들이었고 아래에 있는 것들은 황금 두더지와 열쇠가 한쌍으로 들어 있다.
돈으로 환산을 한다고 해도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정말 내가 보관을 해도 되겠어요?”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요?
이것은 어머니가 아마 당신의 진정한 며느리를 위해서 마련을 해 놓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민희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리라는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그들은 집안을 새롭게 단장을 한다.
새로운 가구를 들이지 않고 시어머님의 고가구를 새로 손을 본다.
역시 민희의 안목대로 그것은 대단한 고가구라는 평을 받는다.
모두가 진품이고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고가구를 들여놓을 계획으로 집을 단장을 한다.
한옥풍이 풍기게 모든 것을 새롭게 단장을 하며 민희는 가슴에 차오르는 벅찬 행복을 느끼며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서 만지고 또 매만진다.
이제 민희의 다리도 많이 아물어 가고 성형수술을 한 자국도 거의 눈에 띠지 않을 정도로 완쾌를 보이고 있다.
“여보!
참으로 오랜 시간 고생이 많았소.
그리고 이렇게 완쾌가 되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오.“
형우는 아내의 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이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정성과 노력 때문이에요.
그동안 당신이 보여준 온갖 정성과 노력을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고 고맙기만 해요.“
”나 때문에 고생을 한 당신을 생각하면 늘 미안하고 죄스럽소.
이제는 우리 시간을 내서 여행도 다니고 우리가 함께 즐길 일들을 찾아서 즐기며 남은여생을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고마워요.
이 순간들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안정을 찾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유혜영은 밤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심에 휩싸여간다.
생활이라는 것이 너무 혹독하다는 생각을 한다.
두 아들을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수입이라고는 단 한 푼도 없는 생활이다.
집을 구하고 나서 남은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유혜영으로서는 비로소 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한다.
모든 것 하나하나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아이들의 학원비에 공과금과 아파트 관리비 그리고 식비와 모든 것들이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이 아니면 달리 쓸 돈이 없는 것이다.
유혜영은 백방으로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해보지만 아무런 연락이 닿지 않는다.
또한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참으로 비참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유혜영은 이대로 마냥 남편을 기다리며 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하며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지만 막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더 자신이 초라해지고 비참해진다.
사회생활이라고는 전혀 경험이 없는 유혜영이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학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대학을 가기 위해 가정과를 졸업했을 뿐인 유혜영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초조하고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다.
수없이 시아버님을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면서라도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생각을 해 보지만 이제 그 여자의 손으로 모든 것이 다 넘어갔다는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고 찾아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이사를 나오는 날 건네준 봉투를 받은 것이 끝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패악을 저지른 자신에게 더 이상의 경제적 지원을 해 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유혜영이다.
유혜영은 매일 매일이 마음이 지옥속이다.
매일 일을 찾아서 돌아다녀보지만 어디 한 군데도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 없다.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남편인 성일에게 연락이 온다.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는 때였다.
유혜영은 한줄기 빛을 보는 것만 같은 희망의 불빛을 본다.
남편이 지정한 약속장소로 나가면서 큰 시름을 덜어내는 기분이다.
남편과 함께 집으로 오기만 하면 자신의 모든 걱정과 고생은 끝이 난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조차 가볍다.
약속장소엔 이미 성일이 나와 있다.
유혜영은 남편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뛰는 반가움이 앞선다.
“여보!”
그러나 성일은 힐긋 아내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어디서 지내요?”
“.........................”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정말 죽을죄를 지었어요.
이렇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요.“
그러나 성일은 아내의 말에 아무런 대꾸조차 없이 차를 마신다.
남편의 차디찬 모습을 본 유혜영은 또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남편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여보!
이제 당신이 하라는 모든 것을 다 할게요.“
”잘 들어요.
난 아직도 당신을 보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소.
이제 난 멀리 떠날 것이오.“
“떠나다니요?
어디로 떠난다는 말인가요?
여보!
제발, 우리 애들을 버리지 말아요.“
”아이들을 버리겠다는 말은 아니요.
당신이 저지른 패륜은 내가 저지른 것이나 다름이 없소.
부모님께 지은 패륜을 생각하면 얼굴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오.
내 죄를 조금이라도 씻고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 때 돌아오겠소.“
“여보!
제발, 제발 우리 곁에 있어 줘요.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요.
당신만 아이들 곁에 있어줘요.“
”..............................“
성일은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어 아내 앞으로 놓는다.
“자, 이것으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오.
내가 부끄럽지 않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다시 찾겠소.“
성일은 자신의 마음을 다 전달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혜영은 사람들의 눈을 볼 것도 없이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제발, 가지 말아요.
날 미워해도 아이들을 위해서 집으로 가요.“
잠시 그런 아내를 내려다보던 성일은 그대로 찻집을 나선다.
성일은 그 길로 부임지인 남해의 섬으로 떠나는 것이다.
유혜영은 더 이상 남편을 잡을 수 없음을 느끼며 절망을 한다.
이젠 모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렸다는 것을 실감하며 캄캄해지는 것이다.
유혜영은 찻집에서 혼자 한참을 시간을 보낸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수습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갈지 앞이 보이지 않고 머릿속은 텅 비어지는 느낌이다.
아들들은 더욱 말이 없어진다.
무엇을 알고 있는지 엄마를 피하고저 하는 눈치들을 보이는 아들들이다.
아빠를 찾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아빠를 이해한다는 뜻인지 엄마를 미워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유혜영은 그런 아들들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그저 엄마로서 자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주면서 아들들의 마음이 돌아와 주기를 기다리며 남편이 다시 돌아와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긴 어둠의 터널 속을 들어가 있는 기분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찻집을 나선다.
몸이 휘청거리고 머리가 어지럽다.
그러나 자신이 쓰러진다고 해도 아무도 달려와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집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간다.
그대로 자리에 눕고 마는 유혜영이다.
저녁이 되어도 밥을 달라는 아들들의 보챔이 없다.
늦은 저녁이 되도록 유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들들은 각자의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간다.
이미 라면을 끓여서 먹은 흔적이 있다.
설거지가 그대로 개수대에 담겨 있는 것이다.
큰아들의 방문을 열어본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이다.
“용환아!
엄마를 깨우지 라면을 끓여 먹었니?“
”자는 사람을 왜 깨워요?
이제 우리도 라면으로 한 끼 쯤은 견딜 수 있어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대꾸를 한다.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가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야식이라도 준비해 줄게!“
“........................”
말이 없다.
유혜영은 그대로 아들의 방문을 닫고 나와 다시 작은 아들의 방문을 열어본다.
역시 공부를 하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용수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어요.“
역시 뒤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대꾸를 한다.
“그래, 알았다.”
유혜영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아들의 방문을 닫고 돌아선다.
아들들마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등을 돌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이 얼마나 잘못 살아왔던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고 있다.
아들들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더욱 초라하고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참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후회를 해 보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절망감이 온 몸을 휘감아 돈다.
방으로 돌아온 유혜영의 흐느낌은 온 집안으로 새어나가고 있다.
글: 일향 이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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