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국내 언론을 통해 접한 러시아군은 점령지에서 불법을 저지르거나 탈영하고, 우크라아니군에 자진 항복하는 등 '오합지졸'이었다. 이에 맞선 우크라이나군은 조국의 방어를 위해 자진입대한 젊은이들이 정규군을 도와 적(러시아군) 탱크를 파괴하는 등 '영화속 특수부대'로 묘사됐다. 기강이 무너진 러시아군의 행태는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한 것이니, 부분적으로 맞다고 치자. 그렇다면 우크라이나군의 기강과 사기는 아직도 우리에게 알려진 그대로일까?
우크라이나군의 부끄러운 민낯을 러시아 언론을 인용할 경우, 기사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WP)와 같은 '친우크라 반러시아'적인 서방 매체의 평가라면, 아니 우크라이나 자체 매체라면 왠만큼 믿어야 하지 않을까? 우크라이나 매체 역시,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자국 군대를 모욕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불법으로 처벌받는다.
미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한 '쿠폴라'의 페북 사진/사진출처: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군의 내부 문제를 솔직하게 밖으로 드러낸 이는 우크라이나군 제 46공수강습여단(우리 식으로는 공수특전부대) 대대장이다. '쿠폴라'라는 암호명으로 활동하는 아나톨리 코젤 소령(대대장)은 지난 14일 WP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막대한 병력 손실과 훈련이 부족한 신병들로 반격 작전 준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인터뷰로 직위해제되자, 스스로 전역을 선택했고 군 감찰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군 내부 취재에 들어가 '쿠폴라'의 발언 등을 검증한 뒤 24일 이를 기사화했다. 그리고 군부대 장교들과 하사관, 사병들이 '쿠폴라'가 지적한 군 내부 문제들의 존재 자체를 확인해줬다고 전했다. 나아가 현장 지휘관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한 병역법 8271조가 개정된 뒤 최전선으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병사들이 많아졌다고 폭로했다. 그 이유로는 군사 작전상의 문제와 돈을 받고 (대상에서) 빼주는 지휘관들의 불법 행위 등을 들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지난해 전쟁의 초기에는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은 애국심이 넘쳐 자진 입대가 줄을 이었다. 주로 2014~2022년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동부지역 군사 작전'(돈바스 재통합작전 혹은 친러반군에 대한 대테러작전으로 불렸다)에 참전한 예비군 동원 1, 2순위의 즉시 전력감들이었다. 군 경험이 없는 자원 입대자들도 많았다. 이들은 주로 우크라이나 영토방어 부대(TRO, 러시아어로는 подразделения территориальной обороны ВСУ, 우리 식으로는 향토예비군)로 편성됐다. TRO 입대자들은 훈련소를 거치지 않고, 수당(3만 흐리브나)을 받는 조건으로 후방 검문소에 배치됐다.
문제는 2022년 중반 이후 불거지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정규군의 병력 손실로 최전선 병력이 부족해지자 TRO 부대도 전투 현장으로 가야 했다. TRO 부대원들이 최전선 배치를 싫어하는 건 당연하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인터넷에는 전방 배치를 거부하는 영상들이 올라왔다. 훈련도 받지 않고 전선에 배치됐으며, 현장에는 중화기도, 탄약도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자원입대한 것으로 추정되는 우크라이나군. 방탄복을 두개나 껴입고 많은 무기들을 어깨에 매고 터덜터덜 걷고 있다/텔레그램 영상 캡처
TRO 부대원들이 전선 배치를 거부할 경우, 이들을 형사적으로 처벌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최근까지는 없었다. 우크라이나 형법 402조 4항(계엄령 발령시 명령 불복종)에 의해 처벌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고발된 병사는 극히 일부였다. 지휘관들이 이들(전선 배치 거부자)을 대거 군법에 회부하면, 부대원 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소위 '지휘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나.ua 취재에 응한 병사들의 증언은 이렇다.
"우크라이나의 모든 부대에는 평균적으로 약 10~15%의 전투 참가 거부자가 있다. 주둔지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많다. 그러나 지휘관들은 보고하지 않고, 이들을 2선, 혹은 3선 방어선에 배치한다. 거기서 참호를 파고 장작을 자르고 후방 지원 업무를 맡는다. 수당(돈)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 생명(값)이 더 비싸다. 형사 고발을 당하는 병사들은 주로 최전선에서 이탈해 동료 전우들을 어려움에 빠뜨린 자들이다".
중대장 이하 장교들과 하사관들도 최전선 이동 명령을 거부한다. 대대장급 이상은 최전선이 아닌 곳에 설치된 부대 지휘소에서 원격으로 명령을 내리고, 가끔 짧게 전투 현장을 방문한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최전선에 주둔중인 한 지휘관(소령, 대대장급)은 "최전선에서 근무했던 병사들 중 상당수가 복귀를 거부한다. 전쟁 초기에는 많은 동기 부여가 있었고, 신념이 강하고 경험도 풍부한 용감한 전사들이 많았으나, 이젠 많이 없어졌다(죽었다). 새로 동원된 병사들은 전투 의욕은 물론 체력면에서도 이전 병력과 다르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고 배치된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는 "'쿠폴라'가 WP와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이 바로 이 문제"라며 "(스트라나.ua) 인터뷰에 응한 이 지휘관도 '쿠폴라'의 발언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의 전투 지역 이동 모습/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은 지휘관들의 불법 행위다. 스트라나.ua는 "일부 지휘관은 부하를 '추가 돈벌이'로 이용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군법에 회부된 사건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한 부대 지휘관은 부하로부터 12만 흐리브냐를 받고 (안전한) 다른 부대로 전출시켰다. 또 최전선으로 나가고 싶지 않으면, 거부하거나 상관에게 돈을 주고 후방에 남는다.
스트라나.ua가 전한 불법행위를 보면, 휴가에는 1만~1만5,000 흐리브나, 보급창고 관리와 같은 좋은 보직에는 최대 5만 흐리브나가 걸려 있다. 또 술에 취하고 마약을 하다 걸려도 1만~2만 흐리브냐이면 그냥 넘어간다. 후방 어딘가의 경비부대로 전출하려면 1천~2천 달러 달러가 들지만, 3개월이면 그 비용을 뽑는다고 했다. 물론, 모든 부대가 이렇다는 건 아니지만, 후방 부대일수록 비리가 더 많다고 한 고위 하사관이 이 매체에 고발했다.
병력 손실도 심각한 수준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바흐무트 시가지 전투에서 죽고 다친 병사들은 하루 평균 전체 부대원의 5%에 달한다. 열흘간 전투를 치르면, 부대원 절반을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전투가 치열했던 바흐무트와 우글레다르, 아브디프카에서는 전투 중에 부대의 2~3배 병력을 잃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은 보통 10~15일간 최전선에 배치됐다가 교체된다. 한 부대의 부대원 중 15~20%가 최전선에, 나머지는 2선과 3선 방어선에 주둔하는데, 15일 정도 지나면 순환 배치된다. 최전방 부대원들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극도의 피곤함과 옆 동료를 잃은 슬픔과 공포감을 호소한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새로운 부대로 교대하기 어려운 지역도 있다. 최근의 바흐무트가 대표적이다. 바흐무트는 러시아군의 포위로 부상병들의 후방 이송마저 어렵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의 부상병 치료/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러시아군의 화염방사기 시스템 '토스'가 불을 뿜는 모습/영상 캡처
우크라이나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는 러시아군의 화염방사기 시스템 '토스'(TOS, 러시아어로는 TOC)와 항공기가 투하하는 강력한 위력의 'FAB' 폭탄(대표적인 모델이 ФАБ-250М-46)이다. 참호 속에 아무리 깊숙하게 몸을 숨기고 있어도 이 두가지 무기는 피해가기 어렵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의 한 장교는 "'토스'가 불을 뿜으면 생존이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부상자도 없고 모두 죽는다. 러시아 전폭기가 우크라이나군의 방공망과 휴대용 스팅어 미사일을 우려해 자주 출몰하지는 않지만, FAB 폭탄이 한번 한번 떨어지면 아무리 튼튼한 '요새'라도 파괴된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초기에 하급 지휘관도 전장에서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수평적 명령체제'로 러시아군을 제압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경험이 풍부한 하급 지휘관들이 많이 사망하면서 전투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전선에 배치된 대부분의 우크라나군이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바로 옆 부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드론이 바로 이웃의 아군에 의해 격추되는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군이 개조해 사용하는 '민간 드론'에는 식별 장치가 부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사기 저하와 혼란은 극심한 포탄 부족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소모전으로 계속되면 병력과 무기 탄약이 부족한 측이 더 빨리 지치기 마련이다.
◇오늘(24,25일) 주요 뉴스 요약
- 러시아의 민간 용병 부대 '와그너 그룹'에 차출돼 전선에 투입됐던 죄수 용병 5천여 명이 참전 계약 만료 후 사면된 것으로 전해졌다. 와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25일 "현재까지 와그너 그룹과 계약을 마친 뒤 사면 석방된 이들이 5천 명이 넘는다"며 "사면된 이들의 재범률이 0.31%로, 일반 재범률에 비해 10∼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방측은 전투 경험을 지닌 폭력적 범죄자의 사회 유입이 러시아 사회에 불안감과 위험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와그너 그룹'은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 공격 작전의 선봉에 서 있다.
- 푸틴 대통령은 25일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벨라루스는 나토(NATO) 회원국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는 "미국도 수십년간 전술핵무기를 동맹국(독일 등)에 배치해왔다"며 "(벨라루스 핵무기 배치가)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핵무기를 벨라루스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배치하는 것"이라며 "핵무기 통제권을 벨라루스에 넘기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 가능성에 대해 "평화 협상을 벌일 조건이 전혀 조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탱크와 포병, 미국의 다연장로켓시스템 하이마스(HIMARS) 같은 장비가 없이 병사들을 최전방에 보낼 수 없다"며 "아직 (반격을) 시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으로부터 중재 제안이나 회담 요청을 받지 못했다"며 "중국 측에 10개 항목의 우크라이나 평화안에 대한 협력과 정상회담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 우크라이나 전쟁 중 포로로 붙잡힌 상대국 병사 최소 40명이 즉결 처형당했다는 조사 결과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에서 발표됐다. 마틸다 보그너 주우크라 OHCHR 인권감시팀장은 24일 키예프(키이우)에서 기자회견를 갖고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각각 약 200명씩 총 400명 이상의 전쟁 포로를 인터뷰한 뒤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즉결처형된 전쟁포로는 러시아군 25명, 우크라이나군 15명이다. 또 포로들은 대부분 구금 중에 고문과 구타 등의 가혹행위과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실제로 더 많은 전쟁포로가 처형됐거나 극심한 폭력에 노출됐을 수 있다”며 “국제법상 전쟁포로를 살해하고 폭행하는 것은 전쟁범죄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유럽연합(EU)이 역외 국가들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포탄 구매를 시도할 것이라며 그 대상국으로 한국을 거론했다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보도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23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첫날 회의가 끝난 뒤 "우리는 유럽평화기금(EPF)을 이용해 더 많은 탄약을 가진 국가들에서 공동구매를 추진할 계획인데, 유럽에는 그런 나라들이 아주 적다"며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아주 많은 포탄과 로켓탄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우리는 그곳(한국)에서 탄약 구매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EPF는 EU 정규 예산이 아닌 국민총소득(GNI) 비율에 따라 각 회원국의 기여로 마련된 특별기금으로, 2021년 분쟁 방지 등을 목적으로 조성됐다.
-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공격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이 크림반도를 탈환하려는 시도를 포함해 심각한 공세에 나설 경우, 핵무기 사용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게 분명하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은 국가의 존립 체계가 무너질 위협에 처 있을 때로 제한돼 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그러나 "국가의 일부(크림반도)를 떼어내려는 시도는, 국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과 같다"며 "바다 건너 우리의 친구들(미국)도 이런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지역 인근에 비무장 지대를 만들어 70~100km의 중거리와 단거리에서 작동하는 어떤 종류의 무기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무장 지대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영토 더 깊숙히 진출해야 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