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최도선
고뇌가 가득 찬 배, 폭풍의 바다를 마주한다
노를 저어라. 어기어차 더 큰 파도 밀려온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눈물조차 마른 해풍
배를 저어 나아가면 통증이 사라질까?
돛을 올려 바람의 키 바로 잡고 나가볼까
눈앞에 머물지 않고 멀리 보며 젓는 노
--- 시터 동인 제9집(근간)에서
하얀 눈이 더없이 따뜻한 방한복이 되어주고, 참새가 저절로 꼬치구이가 되어준다. 사과나무에서는 젖과 꿀이 쏟아져 나오고, 참나무에서는 도토리묵이 주렁주렁 열린다. 모든 야생의 철새들이 금은보화를 물어다가 주고, 수많은 야생의 짐승들이저절로 불고기가 되어준다. 넓고 비옥한 평야에서는 저절로 오곡백과가 자라나고, 날이면 날마다 먹고 마시며 전 세계를 다 돌아다녀도 피곤한 줄을 모른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고 고통도 모르는 이 세계가 진정한 이상낙원인 것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삶은 고통의 가시밭길이다. 이 고통의 가시밭길을 걸으며 부르는 노래는 시가 되고, 이 고통의 가시밭길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가게 되면 발 아래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는 천국이 되고, 이 천국은 우리 인간들이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삶의 목표가 된다.
이 세상의 삶은 고통이고, 고통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제, 어느 때나 “고뇌가 가득 찬 배”가 “폭풍의 바다를 마주”하고, 노를 저을수록 더 큰 파도가 밀려온다. “살아도 사는 게”아니고 “눈물조차 마른 해풍”이 불어와 “통증”은 사라지지도 않는다. “돛을 올려 바람의 키를 바로 잡고” 나가 보아도 마찬가지이고, “눈앞에 머물지 않고 멀리 보며” 노를 저어 나가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환상통幻想痛이란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었거나 원래부터 없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인데도 그 부위와 관련해서 늘, 항상, 지속적으로 겪게 되는 감각적인 아픔을 말한다. 삶의 목표는 행복(쾌락)이고, 이 행복을 연주하는 방법은 사지가 찢어지거나 절단되는 것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노역일 뿐인 것이다. 일이란 노역이고 고통이며, 일을 하지 않으면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시도 천하제일의 절경이고, 사상도 천하제일의 절경이다. 이 천하제일의 절경도 고통 속의 풍경이고, 모든 시와 사상은 우리 인간들의 고통 속의 울림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문화의 대들보는 고통이고, 모든 문화는 잔인성이 정신화된 것이다. 모든 사원이나 왕궁, 천하제일의 만리장성과 그 옛날의 로마의 경기장을 생각해보면 곧바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모든 문화의 꽃은 수많은 재물과 인간의 노동력과 수많은 생명체들의 희생 없이는 생각할 수 조차도 없는 것이다.
참고, 참고, 또 참고 견디는 아픔----.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다같이 [환상통]의 환자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