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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열등감을 한번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인간은 누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완전한 무력한 상태로 출생합니다.
타인(부모, 어른)에게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이 시기에 본능적으로 무력감과 열등감을 경험합니다.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더 많은 한계와 열등감을 경험할 경우들은 더 많이 생기고 말죠.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소용없습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생활속에서
우리는 나보다 더 나은 많은 이들을 반드시 만나게 되죠,
세상에 남겨진 위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기록되어져 있죠.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라는 명언을 남긴 이주일처럼
그런데 조선시대 머리가 정말 나빠 오히려 더 많은 감동을 준 인물이 있습니다.
벌써 많은 분들이 머리속에 떠올리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바로 김득신이라는 인물인데요. 임진왜란 때 대승을 거둔 김시민 장군의 손자로 태어난 금수저이기도 한데요.
어릴 적 천두창(두창)을 앓아 기억력이 몹시 나빴졌다고 합니다. 글을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1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글을 읽기 시작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한계에 절망하지 않고, 무한반복의 독서로 도전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분이《백이열전》이라는 책을 몇 번 읽었는지 아세요? 이 책을 11만 3천 번 읽었다고 해요. 같은 책을요. 너무 재밌는 분인 게, 이분의 독서 기록장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독서 기록장에는 자기가 만 번 이상 읽은 책만 기록해 놨다는 거예요. 1천번 이상 읽은 책만 36권이나 됩니다.
왜 이렇게 한 책을 여러 번 읽었을까요? 이분은 너무나 아쉽게도 머리가 나빴다고 해요. 한번 책을 읽으면 절대 기억하지 못하고,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도 계속 까먹어서 한 책을 이렇게 11만 3천 번이나 보게 됐다고 합니다. 김득신이라는 분은 가문은 되게 좋았어요. 금수저 출신이었는데 문제는 머리가 나빴다는 거죠. 당시엔 이게 큰 문제였어요. 왜냐하면 양반집에서는 과거 시험을 봐서 거기에 합격해 출세를 해야 집안을 먹여 살릴 수 있는데, 이분은 머리가 너무 나빠서 과거 시험을 못 볼 것 같으니까 집안에 골칫거리가 생긴 거죠. 그래서 문중에서 회의를 열어요. "득신이가 너무 머리가 나쁘니까 우리 양자를 들이자." 한마디로 공부 잘하는 용병을 쓰겠다는 거죠.
그래서 김득신의 아버지가 벗은 발로 달려와서 "제가 어떻게든 책임지고 이 아이를 가르쳐서 과거 시험에 합격하게 만들 테니까 양자 입양은 조금만 미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김득신의 아버지, 김치(성함도 참 재밌죠) 아버님이 김득신의 교육을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굉장히 인자하신 분이어서 다행스럽게도 인내심을 가지고 득신이를 계속 가르치세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가 된 거예요. 아버님이 득신이를 앉혀 놓고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득신아, 넌 이제 공부는 그만하거라. 내가 죽으면 너를 가르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아버지도 하지 못한 일을 다른 누가 인내심을 가지고 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하지만 김득신이라는 분은 아버지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학업에 매진해요. 밥을 먹을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길거리를 걸어가면서도 책을 읽어요. 정말 최선을 다합니다.
당시 과거 제도는 크게 소과와 대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소과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그리고 대과라는 최종 시험에 합격해야 관리가 될 수 있는 거거든요. 김득신이라는 분은 소과에 계속 응시합니다. 계속 떨어지다가 39살에 드디어 소과에 합격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대과에 또 응시하는데, 한 번에 붙으면 김득신이 아니겠죠. 또 보고 또 보다가 20년이 흘러 쉰아홉에 드디어 대과에 합격하십니다. 정말 인간 승리라고 할 수 있죠. 아버님도 "넌 이제 공부를 그만하거라" 유언을 남기셨는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부해서 대과까지 드디어 합격하신 거예요.
어느 날 김득신이 노비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절로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김득신이 '들어본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저 문구가 뭘까?' 하자, 김득신을 모시고 다니는 그 노비가 "나리, 제가 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르지만 저 문구는 저도 압니다. 나리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읽으셨던 그 《백이열전》 첫 장의 첫 문장 아닙니까?"라고 알려 준 거예요. 11만 3천 번을 읽었는데 첫 장의 첫 문장을 기억하지 못해서 옆에 있던 노비가 알려 준 거죠. 그만큼 김득신이 머리가 안 좋았다고 해요.
또 한번은 김득신이 친구들에게 "내가 너무 괜찮은 시를 하나 찾았어. 너무 좋은 시인 것 같아" 하면서 그 시를 읊어 준 거예요. 그런데 친구들이 정색하면서 "지금 장난하나? 이 시는 자네가 저번에 써서 보여 준 시 아닌가?"라고 한 거죠. 본인이 썼던 시도 까먹고 너무 괜찮은 시를 발견했다고 친구들에게 알려 준 거예요. 김득신은 정말 읽고 나서 뒤돌아서면 까먹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천연두를 앓고 나서 그때부터 머리가 조금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좋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또 재밌는 일화가 뭐가 있냐면 김득신이라는 분은 수염이 아얘 없었대요. 그 이유가 하도 기억력이 안 좋으니까 생각이 안 날 때마다 수염을 돌돌 말아 뽑다가 수염이 아예 없어졌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다른 위인들처럼 대단한 책을 남기거나 대단한 업적을 남긴 분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분은 아버지도 포기하셨는데 본인은 포기하지 않고 대과까지 응시해서 쉰아홉에 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나중에 자기 묘비에 들어갈 글을 직접 쓰셨거든요. 그런데 그 묘비의 내용이 되게 감동적이에요.
"나보다 머리 나쁜 사람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는 한 번도 스스로에게 '너는 못해'라고 한계를 정한 적이 없다. 혹시 당신이 살다가 재주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처럼 한 가지 일에 정성을 다해 보아라. 나보다 시를 빨리 쓰는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글을 빨리 배운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시험에 빨리 합격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나와 같이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요약하면
"재능이 모자라다고 스스로 한계짓지 말라.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게으르면 성취하지 못하지만,
둔한 사람이라도 노력을 그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남이랑 비교하면서 "나는 저 사람보다 머리가 나빠", "난 저 사람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어", "나는 뭐가 부족해"라며 본인의 단점만 생각하다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김득신이라는 분은 같은 책을 11만 3천 번을 읽어 가면서도, 그러고 나서도 까먹었는데도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김득신이라는 분의 인간 승리 스토리를 읽으면서 '무언가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100번까지는 시도해 보자. 50번까지라도 시도하자. 내가 11만 번을 시도하진 못하겠지만 최소한 20번, 30번, 50번은 시도해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59세에 관직에 올랐지만, 인조, 효종, 현종 대에 걸쳐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시인으로 칭송받았습니다. 특히 그의 시 〈용호(龍湖)〉는 당대 문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혔습니다.
古木陰何密 고목은 그늘이 어찌 그리 빽빽한가
幽居近龍湖 그윽한 거처는 용호에 가깝도다
初日照高林 아침 햇살은 높은 숲을 비추고
遠山出雲氣 먼 산에서는 구름 기운이 피어오르네
秋雲歸虛閣 가을 구름은 빈 정자로 돌아오고
暮雨過孤舟 저물녘 비는 외로운 배를 지나가네
世事忘來久 세상일 잊은 지 이미 오래이니
靜看水鳥游 가만히 물새 떠도는 것을 바라보노라
효종 임금의 극찬: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이식(李植)과 신익성(申翊聖) 같은 인물들도 김득신의 시를 보고 "이런 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혀를 내둘렀고, 효종 또한 이 시를 접한 뒤 김득신의 시재(詩才)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에도 한계를 딛고 일어선 기적같은 그런 인물이 있습니다.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벌의 한계’를 지독한 실천력과 도전 정신으로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 현대 경제사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소 판 돈을 들고 무작정 가출을 감행했던 흙수저 소년이었습니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지만, 그에게 배움이란 학교 문턱을 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체득하는 것이었습니다.
밑바닥에서 다진 사업적 기틀과 배움
인천 막노동판과 서울의 쌀가게 '복흥상회' 점원으로 시작한 그의 밑바닥 경험은 훗날 현장 중심 경영의 단단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쌀가게 주인의 신임을 얻어 가게를 물려받았으나 일제의 물제 통제로 문을 닫게 되었고, 이후 자동차 정비공장인 '아도서비스'를 차리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광복 후 설립한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현대건설은 오늘날 현대그룹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학벌이나 이론 대신 "현장에 답이 있다"는 철학으로 일류 엔지니어들보다 한발 앞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굵직한 도전들
정주영 회장의 삶은 언제나 "해보기나 했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을 때마다 그는 독창적인 기지와 강력한 추진력으로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고령교 복구 공사와 경부고속도로 개통:6·25 전쟁 직후 겪은 고령교 공사 난항으로 극심한 적자를 보면서도 신용을 지켜냈고, 이는 훗날 한국 경제의 혈맥이 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완수하는 대형 건설사로서의 신뢰가 되었습니다.
조선소 건설과 500원짜리 지폐의 기적:조선업 경험도, 자본도 없던 시절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영국 차관을 도입하고 오렌지색 도면 하나로 유조선 두 척을 수주했습니다. 방어진 바닷가 백사장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해 울산에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를 지어 올린 일화는 전 세계 경영사에 남을 신화입니다.
서해안 간척사업과 정주영 공법:바닷물 살포 속도가 너무 빨라 흙을 메우기 어렵자, 폐유조선을 침몰시켜 물살을 막은 뒤 매립을 성공시킨 일명 '유조선 공법(정주영 공법)'은 그의 대단한 창의성을 보여줍니다.
'끈기'와 '실천'이 만든 거인
정주영 회장의 삶은 가방끈이 짧다는 개인적 한계나 열악한 시대적 환경도 '해보겠다는 의지' 앞에서는 걸림돌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합니다.
그는 학문적 지식에 갇히기보다 현장을 누비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웠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끈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오늘날 정체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전과 실천이 지닌 위대한 힘을 일깨워 줍니다.
사도 베드로(Peter)는 성경 인물 중에서도 자신의 수많은 허물과 한계, 연약함을 딛고 일어서 교회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선구자로 거듭난 대표적인 ‘입체적 도전 인물’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의 평범하고 학식 없는 어부였던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이자 초대 교회의 기둥이 되었는지, 그의 한계와 극복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혈질적이고 한계가 명확했던 '인간적인' 어부
베드로(본명 시몬)는 잘 다듬어진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즉흥적이고 성격이 급했으며, 의욕은 앞서지만 두려움 앞에 쉽게 무너지는 아주 다혈질적이고 인간적인 한계를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감정이 앞서는 언행: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를 보고 무작정 배에서 뛰어내렸으나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여 바다에 빠졌고, 예수가 수난을 당할 것이라 말하자 물리적으로 억제하려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호통을 듣기도 했습니다.
학식의 부재:당시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갈릴리 지방의 글자도 제대로 모르는 평범한 어부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실패: 세 번의 부인과 처절한 절망
베드로 삶의 가장 큰 위기와 한계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 직전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했으나, 막상 예수가 잡혀가자 제사장 뜰에서 한 어린 여종의 질문 앞에서도 두려움에 떨며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심지어 맹세하며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닭 울음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예수가 했던 말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통곡(痛哭)했습니다. 자신이 호언장담했던 신념과 도덕적 의지가 철저히 무너져 내린, 삶의 가장 깊은 절망과 열등감의 순간이었습니다.
회복과 반전: 실패를 넘어선 사명감
하지만 베드로의 진짜 위대함은 이 처절한 실패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뒤 다시 일어섰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랑의 회복:부활한 예수는 시름에 빠져 다시 어부의 삶으로 돌아간 베드로를 찾아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시며 그의 상처받은 마음과 사명을 세 번에 걸쳐 치유해 주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체험과 담대함:성령을 체험한 베드로는 이전의 겁쟁이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군중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며 담대하게 설교를 퍼부었습니다. 그날 하루에만 3천 명, 5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유대인의 한계를 넘어 온 세상으로
베드로는 유대인이라는 전통적 율법과 편견의 한계도 깨부수었습니다. 환상을 통해 이방인인 로마 백부장 고넬료를 찾아가 복음을 전하면서, "유대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이 열려 있음을 선포하는 초대 교회의 범세계적 결정에 핵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그는 로마로 건너가 초대 교회를 이끌었으며, 네로 황제의 박해 당시 십자가형에 처해졌을 때 "주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힐 자격이 없다"며 스스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무엇이 베드로를 다시 일어서게 했습니까?
무엇이 베드로에게 힘과 위로, 용기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우리 주님의 절대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세번 부인한 베드로를 세번이나 치유하시면서 사랑해주신 주님의 자상하고 한결같은 사랑 덕분입니다.
끊을 수 없는 그 사랑을 의지하면 누구든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결같은 주님의 사랑이 끝까지 우리를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인간의 머리의 좋고 나쁨에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주님의 의지하고 신뢰하느냐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
https://youtu.be/M11Gaw7FNRY?list=RDM11Gaw7FNRY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