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토) 역대상 9:35-44 찬송 459장
35.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은 기브온에 거주하였으니 그의 아내의 이름은 마아가라
36. 그의 맏아들은 압돈이요 다음은 술과 기스와 바알과 넬과 나답과
37. 그돌과 아히오와 스가랴와 미글롯이며
38. 미글롯은 시므암을 낳았으니 그들은 그들의 친족들과 더불어 마주하고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더라
39.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
40. 요나단의 아들은 므립바알이라 므립바알은 미가를 낳았고
41. 미가의 아들들은 비돈과 멜렉과 다레아와 아하스이며
42. 아하스는 야라를 낳고 야라는 알레멧과 아스마웻과 시므리를 낳고 시므리는 모사를 낳고
43. 모사는 비느아를 낳았으며 비느아의 아들은 르바야요 그의 아들은 엘르아사요 그의 아들은 아셀이며
44. 아셀이 여섯 아들이 있으니 그들의 이름은 아스리감과 보그루와 이스마엘과 스아랴와 오바댜와
하난이라 아셀의 아들들이 이러하였더라 (개역 개정)
4장 이후부터 12지파의 족보를 소개하고
9장에서 어제 말씀까지 귀환자들의 가계를 소개한 데 이어
오늘 말씀은 사울 가계를 재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의 구성은 사울왕의 조상인 여이엘의 아들(35-38절),
사울 왕의 가족(39절)
요나단의 아들인 므립바알(므비보셋)의 후손(40-44절)으로 되어 있는데
이미 8:29-40에서 언급된 바 있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재기록이 저자의 실수이거나 후대에 필사자가 잘못 옮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보기 보다는 오히려 곧이어 언급된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즉위에 대한 도입부 역할을 하기 위한 배경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10장이후에는 곧이어 사울의 죽음을 기록하고
다윗 왕의 통치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1장에서부터 지루할 정도로 족보가 계속되어 온
역대기의 서론이 마무리되고 이제부터 다윗 가문을 중심한
본론이 시작될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즉 본서의 저자는 본문에 이어 앞으로
불신앙의 모형인 사울의 최후와 신앙의 모형인 다윗의 역사를 기록하므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왕과 같은 신앙을 갖도록
호소하고 새로운 신정 국가를 이룰 수 있도록 교훈하고 있다.
40절) 「요나단의 아들은 므립바알이라 므립바알은 미가를 낳았고」
40-44절을 보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자손들이
대(代)가 끊기는 일이 없이 번영을 누린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이는 다윗이 요나단과 가졌던 우정과 그와 맺었던 언약을
생각하여 그 후손들을 선대하여 준 결과이다.
이러한 일은 고대 세계에 있어서 매우 이례적이다.
당시에 있어서는 한 왕조가 붕괴되고 다른 왕조가 들어서게 되면
그 이전 왕조의 혈육들은 모두 제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비정하고 잔인해 보이는 일이지만
왕권의 안녕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권력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권력 쟁취를 위해서라면 죽음으로 내몰 수 있으며
형제라 할지라도 위협이 될 만하면 가차없이 제거했다.
하물며 그 정적에 대해서는...
하지만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중시하여
자신의 정권을 위협하는 그 후손들을 선대하여 주었다는 것은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진실했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사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나의 유익에 해가 된다면
거리를 두려 하고 안면을 바꾸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그가 죽어 없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다윗은 자기 권력의 안정을 위하여 우정을 배반하지 않았다.
참된 우정이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우정이 아니다.
나(우리)의 참된 친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변치 않는 우정(믿음)을 끝까지 지켜나가야 한다.
그 방법은 그분과의 언약을 지켜 말씀대로 사는 것에 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