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관의 늙은 감나무 아래서
문동만
아버지가 아이일 적에
착하고 가난한 아이이기만 할 적에
새벽 일찍 남의 집 늙은 감나무 아래로
달려가 깨진 홍시를 주워서는
부뚜막에 쭈그려 앉은 홀어머니 손에
먼저 쥐어주곤 했다는
그 단내 나는 어린 손만 남기고
거칠게 아귀를 쥐었던 것들이나
얍삽하게 쥐었던 허망들은
다 내려놓으라 하고
물수제비 같은 맑은 돌들만
가슴팍에 날리는 아이로만
다시 키울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뀌면
핏줄들의 운명이,
나의 운명이 바뀌는 일들을
타관의 늙은 감나무 아래서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그리하여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아버지의 운명을
다시 낳아서 기를 수 있는 거라면
나는 본래 없던 사람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까?
감나무에 올라 잘 놀던 내게
―감나무 가지는 잘 부러진다이
자디잔 가지에 어설피 올라타면 안 돼야…
그러며 학교 앞 점방으로 가 외상술을 자시고
그 희소했던 말들만 다 까먹었을,
그 말이 가장 친절한 말이었던
내내 풋감 껍질 같은 아버지여
다시금 홍시같이 부드러워질 아버지여
문동만
충남 보령 출생. 1994년 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으로 등단.
시집 『나는 작은 행복도 두렵다』 『그네』 『구르는 잠』 『설운 일 덜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