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재는 날(240716)
실로암은 매년 한 번씩 전교생 아이들의 키와 체중을 잰다.
그리고 조금 두꺼운 종이로 카드를 만들어 그 아이와 인도 아이들 평균 데이터를 넣어 학부모에게 보낸다.
우리 학교 아이들 가정환경으로는 가정에 체중계도 없고 키를 잴 수 있는 줄 자도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정에는 체온계, 소독약, 반창고, 붕대....등 기초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얼마 전까지도 길거리에는 체중계를 놓고 체중을 재어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환경이나 문화 수준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병원 갈 때는 체중을 잴 수 있지만 그것도 진료비를 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매년 우리 실로암 학교에서 아이들 데이터를 만들어 학부모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일종의 써비스 차원이기도 하지만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상태를 보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담임 교사가 체중을 재고 기록하면 나는 아이들 키를 재어야 한다.
전에 교사들을 시켜보니 정확성이 떨어져 때론 1Cm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키를 재는 현대식 기계는 없고 눈금이 인쇄된 종이를 벽에 붙여서 사용한다.
그것도 30년 전 여기에 올 때 우리 애들 키를 재려고 가져온 것인데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용으로 만든 두껍고 길다란 종이에 인쇄된 가정용 도구다.
그게 아직까지 남아있는 걸 보니 우리도 물건을 참 아껴 쓰는 모양이다.
아이들을 가까이 대하다 보니 어떤 남자애들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등교한다.
코코넛 기름이다.
머리의 열을 식혀주고 머릿결을 윤택하고 강하게 만들어주고... 하는 전통 민간 요법이다.
그리고 어떤 여자애는 오래 안 씻었는지 몸에 냄새가 나기도 한다.
또 아이들 키를 재려면 아이 머리를 붙들고 벽 쪽에 대야 한다.
계속 머리를 움직이는 꼬맹이들, 키가 줄어드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마구 뒤로 젖히는 애들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히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눈금을 읽어야 하니 30Cm 거리에서 아이들 얼굴을 보게 된다.
가까이서 보니 아이들이 참 예쁘다.
모두 잘 생겼다.
큰 눈, 짙은 속 눈섭, 오똑한 콧날, 티 없이 밝은 애들, 무한정 신뢰하는 애들...
모두 자식 같고 손주 같아 한 번씩 안아주고 싶다.
아이들도 내가 그렇게 가까이 가는 것이 처음이라 좋아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마치고는 Thank you. sir! 라고 한다.
키와 체중을 재어주는 게 고맙다는 소리 같다.
여기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이 100명에게 돈을 주어도 아무도 고맙다는 소리를 안 하는 사회다.
그리고 낮은 계층은 고맙다는 소리를 참 아끼는 사회인데 우리 아이들은 작은 일에 고마움을 표시한다.
내가 여기에 안 왔다면 지금쯤 이런 애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예쁘고 착한 아이들을 어떻게 가까이 할 수 있었을까?
여기가 참 좋고 이 일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