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마치고 보니 딱 두 시간이 걸렸다.
간편한 예식보다는 기독교식으로 정중하게 하고 싶다는 새신랑의 요청으로
정통 기독교 결혼예식을 진행하다 보니 걸린 시간이다.
부모 얼굴은 안 보이고 여기서만도 이틀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행사 준비하며 설치느라
혹 식장에서 쓰러질까 봐 결혼식 전날 밤 11시에는 제발 집에 가서 쉬라고 쫓아 보내기까지 했는데
우려와 달리 불상사나 문제가 없이 축복 속에 마친 정말 멋진 결혼식이다.
마침 여기가 어제는 정부 공휴일이라
결혼식 하는 새신랑 새신부는 우리 실로암 ㄱ회와 마당 전체를 식장으로 리셉션 장소로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결혼식 소식을 들은 우리 실로암 아이들이 마당에 몰려든다.
신랑 신부와 아무 상관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몇 녀석은 맨발에, 다 헤어진 옷으로 결혼식장에 와서는 기대가 크다.
초대받았으면 이 모습으로 안 되고 신발을 신고 옷도 깨끗한 옷으로 입고와야 된다고 한 소리 했더니
네 명 모두가 집으로 달려가더니 조금 후에 남자 형제는 그 모습 그대로에 신발만 신고 왔는데
그 녀석들 누나와 여동생은 빨간 드레스를 입고 왔다.
그 애들을 보니 예전에 동네잔치가 있으면 무조건 달려가던 우리 모습이 기억난다.
궁하고 어렵게 살던 옛날 기억이다.
결혼식을 10시에 시작한다고 광고가 나가니 그 시간에 실로암 식구들 중에 올 사람은 다 왔다.
실로암은 학교 행사건, ㅇ배나 ㄱ회 행사건 예고된 시간에 정확히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가 부모님과 가족은 한 시간 전부터 나와서 대기하고 있고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직 친척, 지인들이 오지 않아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실로암 시스템에서 자란 신랑은
미안한지 10시에 바로 시작하자고 한다.
결국 15분을 기다리고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자리다 다 차버린다.
결혼식 주례는 정부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잘 아는 타밀 ㅁ사를 불렀는데
그 때문에 대부분 순서가 타밀과 여기 카나다주 혼합 방식이 되어버렸다.
신랑이 앞에 나오기 전에 사회자인 우리 사테파 ㅁ사가 식장 입구에 서 있는 신랑에게 가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고 돌아온다.
신랑 입장 후에 결혼 ㅇ배를 시작한다고 선언하고 기도를 하더니
또 문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신부에게 가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새신랑에게 장인어른에게서 신부를 인계받을 때는 목례나 어느 정도의 예를 갖춘 후에 신부를 인계받으라고 했는데
신부 입장 시간에는 아이들 꽃동이 8명이 신부 앞에서 걸어 나온다.
유치부부터 3학년까지, 남자애 네 명, 여자애 네 명이... 모두 예쁘게 차려 입고서...
그렇게 신부 아빠는 멋있는 행진을 하며 딸을 앞으로 데려갔는데 사위 될 새신랑과 악수도 못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 아이들 때문에 사위와 거리가 멀어서 인사고 예의 차리고 할 거리도 분위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여기는 무슨 순서가 그리 많은지...
예식을 한참 진행하다가 신랑이 신부에게 목걸이를 걸어주는 시간에 사회자가 우리 두 사람을 앞으로 부른다.
그리고는 우리 포함 모두 네 명이 목걸이의 그 작은 금붙이에 손을 대고 같이 기도하자고 한다,
사회자그 목걸이 건으로 기도할 동안...
여기서는 그게 중요한 모양이다.
중요하고 이상한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반지 교환 시간에는 내게 결혼반지가 든 상자 두 개를 주고는 그걸 들고 기도하라고 한다.
탁자에 놓고 손을 대도 안 되고 손에 들고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
비싼 목걸이보다 반지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
전통 같은데 구ㄱ회적이고 요소도 있는데 얼떨결에 불러내니 안 할 수도 없다.
결혼식 도중 혼인 서약 시간에는 서로의 결혼 서약 대답을 들은 후에
주례가 이 결혼이 성사되었다는 공포를 하고 나서는 당사자만 아니라 몇몇 증인들을 앞에 불러
그 자리에서 바로 정부에 제출할 혼인 관계 서류 몇 장에 싸인을 한다.
10분쯤 걸리는 그 시간에 아내 포함 우리 실로암 다섯 명 젊은 여자분들이 옆에서 특송을 부른다.
또 주례의 서약문을 따라하는 시간에는 신부는 타밀어 ㅁ사의 서약문 대여섯 몇 문장을 한 문장씩 무리 없이 따라 하는데
안드라주 출신 신랑은 타밀어가 익숙치 않아 이 주 언어로 통역을 하기도 했다.
지역마다 결혼식 방법이나 순서가 다르지만 타밀 목회자를 주례로 세웠더니 이색적이고 더 정통적인 결혼식이 된 것 같다.
어제 결혼한 신랑은 간편한 약식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순서가 있고 정통성이 있어보이는 이런 결혼예식을 원한 것이다.
많은 순서 후에 메인 메시지를 전할 때는 내가 영어로 ㅅ교를 하면
영어를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어 현지어로 통역을 해야 한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인도식 영어인데 신기하게 주변에서는 다 알아듣는다.
그게 또 거의 30분이 되었지만 그 시간에 자리를 뜨거나 움직인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니
두 시간 내내 형식적인 결혼식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한 결혼식이 되었다.
아니 저 높이 계신 분을 모시고 결혼예식을 했으니 정통성이 있는 결혼식이 된 것 같다.
여기서 다녀 본 인도 결혼식은...
정확히는 결혼식이 아니고 리셉션이다.
힌두교도는 새벽에 가족끼리 힌두 템플에 가서 승려의 주관으로 간단한 예식을 하기에
가족이 아니면 대부분 그 시간에 참석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광으로 인도에 와서 인도 결혼식에 참석했다고 하는 사람들 이야기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도 결혼식에 갔다는 소리는 정확히는 리셉션이다.
그리고 인도 결혼식이 멋있고 무엇을 보고 왔네 하는 소리도 대부분 저녁에 리셉션 장소에 가서 행사를 보거나,
선물을 주고 사진을 찍거나, 식사를 하거나 선물을 받고 오는 것도 리셉션 행사중의 하나다.
물론 엄청난 돈을 들여서 3일간, 또는 5일간 크게 하는 결혼식 행사도 그 범주다.
아무튼 여기서 다녀 본 결혼식은 대부분 광고된 시간보다 두 시간이 지나서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옆에 있던 라쟌과 사테파 ㅁ사는
지난번 어느 결혼식에 갔는데 무려 네 시간이나 늦게 시작하더라고 한다.
그러니 한 시간 늦게 시작하는 결혼식은 아주 모범 결혼식이고
15분 늦게 시작한 어제 실로암 결혼식은 신문에 날 만한 뉴스거리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랑은 실로암 4학년부터니 18년간, 신부는 25년간, 태어나자마자 나랑 연결된 인연이다.
둘 다 내 눈앞에서 자랐고 내 눈앞에서 함께 공부했고 또 내 눈앞에서 사랑에 빠져 결혼한 아이들이다.
역시 둘 다 모든 ㄱ회 시간에 함께 있었고 우리를 너무 잘 아는 애들이다.
자식 같은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을 어찌 품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위에 계신 분도 이들의 앞날에 은혜와 복으로 채워주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