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념 선물로 결혼식 아침에 V.L. 에게 메모리 스틱을 하나 줬다.
한국에 있을 때 두 아이의 사진을 같이 준비했는데 저장할 때 잘못되었는지 리타 사진이 든 파일은 빠져있다.
리타 사진은 더 어릴 때부터 있어 더 좋아할텐데... 다음에 줘야겠다.
새신랑에게 준 USB 안에는 380장이 넘는 사진이 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실로암 ㄱ회에서 활동한 사진들이다.
모든 사진에 찍은 연도까지 있다.
그걸 받은 그 녀석은 예상을 못했는지 연신 감사의 표시를 한다.
몇일 전에 예고했어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나 보다.
새신부는 잠시 시간을 내어 파일을 열어본 새신랑이 그 사진들을 보고는 흥분하더라고 한다.
자기 집에 하나도 없는 사진들이다.
카메라 없고 휴대폰 없던 시절 여기 대부분 가정이 스스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집 벽에 걸려있는 사진은 한 30년 전 부모님 결혼식 때 사진관에 가서 찍은 사진이 전부다.
또 다른 사진, 그 집에 걸려있는 큰 가족사진 액자 두 개도 예전 CDP 때 만들어 준 것이다.
파일로 사진을 줬으니 사진을 크게 작게, 또 한 사진에 수십 개의 사진도 편집해 붙여 넣을 수도 있으니
이미 종이로 인쇄된 사진보다 더 가치가 있는 선물이다.
그 사진들은 사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사진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지난날 추억만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또 갑자기 생긴 그 선물로 인해 희미해진 지난날 기억을 다시금 회복시키고
또 자신이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도 챙겨주지 못했던 사진들이고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지난 역사의 흔적과 증거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역 중에 역사 기록을 남기기 위해 틈틈이 사진들을 찍었는데 그게 이렇게도 사용될 줄이야...
그 많은 사진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것 같다.
자랑같지만... 결혼식 때 많은 선물이 오지만 그 어느 것보다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저녁에 리셉션 하기 전에 마당에서 사진들을 대형 스크린에 띄운다.
새신랑이 리셉션 시간에 쓰려고 마당에 대형 스크린을 주문했는데 가로 8피트, 세로 6피트 대형 화면이다.
2층 ㄱ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리셉션 장면을 마당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해주기 위해서다.
그 화면 뒤에 가서 보니 모니터 15개를 연결해서 한 화면을 만들었는데 화질이 TV 급이다.
리셉션을 시작하기 전에 둘이서 찍은 2-30장 사진이 나오더니 그 후부터는 내가 준 사진들이 계속 나온다
신년 ㅇ배, 가족 성가 경연대회, ㄱ회 소풍, 부활절, 여름 ㅅ경학교, 캠프. 운동회, 추수감사절,
성탄 캐롤링, 성탄 ㅇ배, 성탄 행사, 송구영신 ㅇ배...
뿐만 아니라 주일학교에서 각종 대회, ㄱ회 행사 사회, 기타연주 시연...
이런 사진과 역사가 매년 반복되니 그간 실로암에서 자라면서 활동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그 녀석의 역사만 아니라 우리 실로암의 역사도 있다.
V.L. 이 있었던 지난 실로암 역사, 아는 얼굴들, 또 우리를 스쳐간 얼굴까지 마구 나타난다.
매 3초 마다 사진이 바뀔 때 여기저기 테이블에서 저건 누구고 저건 언제고...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또 저 사진이 어떻게 해서 나온 거냐며... 쟤가 걔가?... 라며...
그걸 보는 아이들, 청년들, 어른들이 놀란다, 부러워 한다.
옆에서 함께 보던 주교 아이들이 또 조잘거린다, ‘Sir 의 젊었을 때는 저렇게 * 생겼네‘라고...
아이들이 거기에 담겨 있는 오래전 내 사진 몇 장도 본 모양이다.
그리고 계속 이리저리 묻길래 그들에게 한 마디 던졌다.
‘너희들도 실로암에서 자라고, 저 새신랑처럼 실로암에서 활동하면,
그리고 실로암에서 결혼하면 너희들도 그런 사진 모아서 줄게...’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