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말하기의 폐단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우리 사회는 위아래를 따지는 서열주의가 비교적 강하게 작용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할 말이 있어도 참으며 서운함을 쌓아두는 편이다. 이전에는 우리 사회에 유달리 속병이나 화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런 사회 분위기가 심했기 때문이었지 싶다.
이런 풍토 아래 서양 문물이 유입되면서 사람들은 자기표현(self-assertive)에 열광하였다. 특히 자기개발서가 붐을 일으키며, 말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분명하게 말하도록 강조하였다.
자기표현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는데 상담도 한몫했다고 본다. 상담 및 정신치료에서는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즉 억압이 심했던 연유로 증상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자기표현을 하도록 상담자는 공감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누군가가 자기 속내를 알아주면, 더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서 자꾸 표현하고자 한다고 해서다.
나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내담자에게 그때그때 자신의 감정이나 사고를 솔직하게 표현하도록 촉구했다. 그렇게 표현해야 이쪽의 속이 풀리고, 상대방도 이쪽에 대해 알게 되어 일방적인 태도를 자제하게 된다고 말했다. 즉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기본이 표현에서부터 출발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뭐든지 과하면 부작용이 따른다고, 자기표현이라는 것 또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근래에 하게 되었다. 상대가 또박또박 말하면 오히려 짜증스러워 더 어깃장을 놓는 사태가 심심찮게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게 상담을 받는 어느 부인은 어려서부터 많이 참아왔던 사람으로 유달리 억울한 게 많았다. 나는 그녀에게 사회의 기준이나 말하는 요령을 일러주었고, 꾸준히 상담을 받은 결과 그녀는 어느덧 주위에서 현명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거 같았다. 전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신중하면서도 깊이 있게 말하기 때문에 그런 칭송을 듣게 된 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였는지 그녀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상담을 이어가며 성장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차 안에서 남편과 다투는 일이 있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사는 그녀의 남편은 운전대를 잡으면 거칠어지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런 것에 그녀는 질색했다. 엊그제 그 남편은 아내를 태우고 가다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곳에서 과감히 핸들을 틀었고, 이에 대해 부인은 뭐 하는 거냐고 남편에게 쓴소리했다. 그러자 남편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어깃장을 놓듯 더 거칠게 운전하였고, 이런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큰소리를 쳤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썰렁하게 지낸다고 그녀는 말하며, 다음에 남편이 또 그런 식으로 운전할 때 어떻게 대차게 나가야 하냐고 내게 물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운전이기 때문에 남편이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도중에 차에서 내려야겠다는 단호함을 밝혔다.
야속하게도 나는 그녀의 속 터지는 심정보다 그 남편의 짜증스러움에 대해 더 먼지 이해되는 심정이 들었다. 즉, 아내가 또박또박 말하는 것에 짜증이 올라와 그렇게 어깃장을 놓았던 게 아닐까 하고 이해되었다. 그 남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이 법규를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가 바른말을 하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렇게 상대가 옳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하면, 왜 그러느냐는 식의 사인만 주고 넘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면 싫증이 나거나 정나미만 떨어지지, 좀처럼 개선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옳고 그름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태도를 보이느냐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직장의 사람들이 이기적이거나 엉성하게 처신하는 데 비해, 그 여성은 일을 딱 부러지게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상사가 이 여성을 믿거라 하는 차원에서 지적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서운했던 그녀는 수그러들기보다 상사를 찾아가 조곤조곤 따지듯 말했다. 그 이후 상사는 피곤함을 느꼈는지 그녀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이런 것을 견디기 어려웠던 그녀는 내게 와 넋두리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는 그녀가 상사의 말에 물러서지 않고 그렇게 속상해하는 태도가 썩 좋게 보이지 않았다. 설령 상사가 좀 과하게 말했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좀 넘기는 게 아랫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가 아닐까 한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에게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 위치에 따라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윗사람이 말하면 수더분하게 듣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아무리 타당한 말이라도 일일이 언급하거나 따지면 피곤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렇다. 너무 참으면 속병이 나거나 관계상의 균형이 깨어지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생각한 바를 또박또박 다 말하는 사람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합당한 말일지라도 싫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 주는 사람이 좋다고 본다.
이제 우리 사회도 많이 변해 사람들이 예전처럼 참고 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말이 많고 따지는 시대가 아닌가 한다. 즉, 이제는 참아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너무 표현을 다 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듯하다.
이렇게 수더분하게 참아주는 사람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나도 이제 늙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자기주장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서양 문물의 가치를 너무 신봉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반성이다.
만약 서양 문물을 신봉한 나머지 자기표현 너무 강조했다면, 상담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도록 하는 것 못지않게 증폭하는 데도 심심찮게 기여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만약 그랬다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균형이라고 본다.
첫댓글
'합당한 말일지라도 싫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 주는 사람이 좋다고 본다."
오늘도 좋은 상담사례
감사해요,
다음 사례도 기다립니다...
즐거운 날 ..
건강한 날 되세요...
저도 나이 들어갈수록 수더분한 사람이 좋지,
자기 할 소리를 다하는 똘방진 사람은 부담스러워집니다.
별 말 없음이 지닌 가치를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자기가 생각한 바를 또박또박 다 말하는 사람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독한 입술...
소름공포의 입술...
요즈음엔 '명석한 파악', ' 상대를 배려하는 따듯함', '호소력 있는 말 솜씨'
이렇게 세 개가 잘 어우러져야 제대로 기능한다는 것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