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았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 것인가……. 호수 위를 지나다니는 물새들이 그렇게 신이 나게 웃을 수가 없다. 커텐 사이로 보이는 나선 풍경…….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가 지내온 곳하고는 아주 다르다.
"처량하군."
정말 해에 비친 호수는 아름다웠다. 이슬이 호수에 떨어져 맑게 퍼질때 기분나쁜 기분만 느껴지고 있었다. 제르가디스는 긴 은색 머리를 잡아내며 창문에 머리를 댔다.
"젠장, 이러다간 진짜 미치겠어."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안된다고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는 것들은 이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길래 죽으려는 나를 이렇게 멈추게 하는 걸까……. 호수는 맑았다. 눈물이 뚝 떨어 질 정도로 기분이 나쁘다.
서럽다.
"미련이 없었다면."
죄없이 고개를 흔들어 본다. 기분만이 나빠진다. 미칠 정도로 머리가 아프다.
"젠장…… 이딴 세상 살기 싫어……."
생각해 보면 눈물밖에 없었다. 제르가디스에겐 웃음 따윈 없었고, 어렷을 때 부터 버려진 세상을 살았고, 부모의 애정, 사랑따윈 배운 적 없었다. 이런 답답한 성질도 어쩔수 없는 것이었다. 기분나쁜 이야기로만 가득 담아두었던 이 머리, 너무 뛰어나 생각하지 못했던 직위 까지 올라온 이 몸뚱아리. 하지만 진정한 마음은 없었다. 감정… 어디선가 들은 얘기지 진짜로 존재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절대로 그런 것을 믿을 제르가디스가 아니다. 쓴 웃음으로 은 청색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날 버린자와 같은 머리결……."
미련하다. 이런 것을 생각해 내다니 너무 감수성이 풍부해 진게… 이렇게 싫은 적은 없었다. 괜시리 이런 호숫가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더러워 진다. 어쩔수 없는 신세에 제르가디스는 긴 은발을 흔들거렸다.
"마치 미친 자 같군."
기분나쁜 웃음. 자신이 지을수 있는 최대한의 웃음이다.
-툭- 방 밖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 제르가디스는 당황해서는 문을 벌컥 열었다. 보이는 것은 조용히 숨죽여 있는 아멜리아였다.
"아…… 아, 아침 드시라구요……."
부어있다, 두 보랏빛과 검정빛이 교묘히 섞인 그 눈동자 밑에 있는 살덩이가 빨갛게 부어있다. 울었다는 흔적. 제르가디스는 그대로 굳어 있을수 밖에 없었다. 아멜리아는 빨리 얼굴을 손으로 움치며 부엌으로 걸어갔다.
-휙- 잡아 끄는 제르가디스.
"너 울었어?"
"아… 아니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드는 아멜리아. 그에 제르가디스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남의 이야기를 엿들으면 안돼."
약간 타이르는 투가 썩여 있었다.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 있던 눈물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제르가디스는 `내가 그렇게 불쌍하게 보였나?`하는 생각에 한숨을 지긋이 쉴 수밖에 없었다. 아멜리아는 토스트하고 잼하고 계란 정도를 꺼내오며
"아침은 이걸로 떼워요."
하고 말했다. 제르가디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토스트에 버터를 발라서 한입에 물어버렸다.
"오늘 밖에 나가 볼래요?"
"밖에?"
제르가디스는 신문을 한장 넘기면서 고개를 살짝 들어 물었다. 아멜리아는 싱긋 웃으면서
"여기 온지 2일이나 지났잖아요. 근데 오빠 옷 +한벌도 없구. 직접 가서 사봐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제르가디스는 낭패라는 듯이
"나는 밖에 나가면 안되는 사람인거 알잖아."
하고 말했다. 그러나 아멜리아는 달랐다. 자신의 방에서 칼, 드라이기, 화장품, 등등등 을 챙겨서 나온 후 제르가디스를 거울 앞에 턱 하니 앉혔다.
"뭐… 뭐하려구!"
제르가디스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멜리아는 들은 척 만척 제르가디스의 머리를 가위로 긴 머리결을 확 짤라 버렸다.
"아, 아멜리아……!"
"너무 안 어울리잖아요! 그런 얼굴에 긴 은색 머리라니-_-"
아멜리아는 고개를 흔들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구. 잘 잘라줘."
약간 붉어진 얼굴을 겨우 감추며 `잘 잘라줘'라는 말만을 했다. 아멜리아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찰칵 찰칵) 시원하게 잘려나가는 제르가디스의 머리.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많이 해봤나봐?"
"네? 아…… 그냥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아서……."
금새 빨게진 얼굴. 제르가디스는 귀엽다는 듯이 `쿡`하고 웃었다. 아멜리아는 무스로 머리를 삐죽하게 세운후 얼굴에 하얀 가루(...)를 바른 다음에 선글라스를 하나 씌여두었다.
"'머… 멋져요!!"
제르가디스는 보며 눈물을 흘리는 아멜리아. 제르가디스는 어색한 투로 거울을 부비적 거리며 고개를 돌려본다.
"나… 같지가 않은 걸……."
하지만 마음에 안 든 다는 말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아멜리아는 싱글벙글한 모습이다. 그리고는 아침을 먹었던 모습을 깨끗이 치운 후에야 밖으로 나갈수 있었다.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쁜듯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엇을 하기에 바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관여 하지 않고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드레스가 먼저 눈에 띄였다. 아멜리아는 바짝 다가가 드레스를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아름답구나."
제르가디스의 말에 아멜리아는 뾰로통한 말투로
"더 감성적이게 말하면 안돼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제르가디스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게 노닥 거릴 시간 없어. 가자."
"치.."
"그렇게 부어 있으면 너 버리고 갈거다."
"엣, 같이가요!"
사이좋다. 누구든 그들을 보면 연인사이, 라고 밖에 설명안될 것이다. 사실 아멜리아는 그것이 좋았다. 즐기고 있을지도. 제르가디스도 아멜리아가 그렇게 싫지 않았다. 싫지 않았다가 아닐텐데, 제르가디스…. 일단 작가의 잡담은 내치고, 그들은 한 옷가게를 도착했다. 남성 브렌드가 잔뜩이었다. 역시 옷은 아멜리아가 골랐다. 제르가디스는 아쉽게도 옷에 대한 센스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을 정도로 무뚝뚝하고 무드가 없기 때문이다.
"으음… 오빠 이거 어때요?"
카키색 캐쥬얼 스타일 정장을 골라주었다. 제르가디스도 썩 마음에 드는 눈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멜리아는 옷을 제르가디스에게 건내주고 또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거 입어봐요."
계속 옷을 들고 서있는 제르가디스에게 약간의 핀잔을 던져주는 아멜리아.
`정말 이럴때 보면 어리벙벙해.`
아멜리아는 꾸역꾸역, 나올 말을 목구멍 밑으로 보내 버리고 옷고르는데 신경을 썼다. [달칵] 조금 딴것을 고르고 있자니 제르가디스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있었다.
"어때?"
쑥스러운 듯, 아멜리아에게 물었다. 아멜리아는 제르가디스를 한번 훌터 보고는
"멋져요^-^"
이렇게 웃었다. 제르가디스의 얼굴은 돌아졌다. 빨개진 것을 감추기 위함인가?
"오빠…?"
"아, 더 골랐어?"
화재를 금세 바꾸어 버리는 제르가디스. 아멜리아는 기달렸다는 듯이 옷을 잔뜩 손에 들었다.
"이건 약간 수수히 보이는 스타일 이지만 오빠한테는 센스있게 보이는 것이구요, 이 옷은 부드러운 스판 소재에다가 검정색이라서 날씬하게 보이는 데는 정말 좋아요, 오빠가 마른 편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이건……"
"끝이없겠다. 생각할 것도 없이 다 사버리고 그냥 가자."
제르가디스는 간단했다. 카드를 내놓더니 결제를 하고 아멜리아와 옷가게를 나왔다.
"오… 오빠, 더사요ㅡ!"
"안돼…."
불안하다는 듯 아멜리아의 팔을 붙잡고 나왔다. 굉장히 급한듯.
"오… 오빠!"
말이 없었다. 제르가디스의 얼굴은 상기되 있었다. 그러니 아멜리아는 순순히 따라갈수 밖에 없었다. 골목길에 접어 들었다. 제르가디스는 일단 아멜리아는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오빠, 왜그래요?"
"여기 있어."
단호히 말을 잘라버린 제르가디스. 아멜리아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그냥 그자리에 고개숙여 있었다.
"절대 나오지 마. 알았지?"
"…네……."
흐린 끝말, 하지만 제르가디스는 신경쓰지 않고 나갔다. 골목길에 혼자남은 아멜리아. 제르가디스는 불안한 기분을 떨쳐 버리고 골목길 옆에 더 어둑한 곳으로 다가갔다. 골목길과는 거리 있는 곳.
"…제로스, 나와."
아무 떨림도 없이 어둑어둑한 골목길 귀퉁이를 보며 말하는 제르가디스, 그 소리에 소리없이 순순히 나와주는 보랏빛 머리결의 귀여운 얼굴을 한 청년. 그러나 살기 어린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지고 있었다.
"왜 온거지?"
"몰라서 물어요? 제르가디스님이 갑자기 조직을 나가 버리니깐 저까지 혼나잖아요."
"…그래서 온거냐?"
"아니요…. 저는 그저 심심해서 돌아다니는 것 뿐이예요."
"시끄러, 심심하다면서 나랑 그 여자애 뒤를 따라다니냐?"
제로스의 말을 그대로 끝어버리고 받아쳐 버리는 제르가디스의 반박에 제로스는 할수 없이 한쪽눈을 슬금뜨면서 말을 이었다.
"…저도 조직을 배반했다구요."
"뭐…?"
"그런 쓰레기 조직에 있을 만큼 제가 멍청하지 않다는 것은 알죠?"
사실이었다. 제로스는 제르가디스와 비슷한 머리와, 제르가디스를 능가하는 살인 솜씨로 Keep over에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그런 그가 배반했다는 것은 제르가디스에게는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상하군… 너는 그 조직에서 최우수 병기로 최급 대우를 받고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나왔지?"
"그건… 비밀입니다♥"